행안부 자연재해대책법으로 설치 강조하나
입주민 공동주택법 근거로 “집값 떨어져”
대전 21개 공동주택 중 3곳만 작업 진행 중
입주민 동의 얻어도 차수판 확보 경쟁 치열

▲ 장마가 본격화된 26일 대전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배수판 외에는 침수피해를 막기 위한 시설물이 없다.

지난해 전국적인 피해를 불러일으킨 제11호 태풍 힌남노로 인한 사상자가 여럿 발생하면서 공동주택 지하주차장의 침수를 방지할 수 있는 물막이판(차수판)의 중요성이 커졌지만 설치는 진척을 보이지 못하는 실정이다. 행정안전부가 자연재해대책법을 통해 침수우려지역으로 지정된 공동주택에 차수판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는 의견인데 입주민은 공동주택관리법을 근거로 이를 반대하고 있다. 침수우려지역이란 낙인으로 집값이 떨어질 수 있단 우려 때문이다.

26일 대전시와 자치구 등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발생한 힌남노가 한반도를 할퀴고 간 상흔은 참혹했다. 힌남노로 인해 경북 포항의 한 공동주택 지하주차장은 급작스럽게 불어난 빗물에 침수돼 현장을 벗어나지 못한 7명이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일상에서 많은 이들이 이용하는 지하주차장이었던 만큼 충격은 컸다. 포항에서의 사태 이후 전국적으로 공동주택 지하주차장 침수를 막기 위해 차수판 설치가 전국적으로 추진됐다.

행안부가 차수판 설치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섰는데 올 초 공동주택 지하주차장 침수방지시설 설치 및 유지·관리 미이행에 대한 과태료 부과 조항 등을 자치단체가 조례로 위임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자연재해대책법을 개정했다. 이를 통해 차수판 설치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곳은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이에 시는 지역 내 지하주차장이 설치된 동구 6개, 중구 3개, 서구 7개, 유성구 3개, 대덕구 2개 등 총 21개 공동주택의 70개 단지를 대상으로 시비와 구비 4억 9300만 원을 투입, 차수판 설치를 지원하기로 했다. 설치 대상은 지난 2~3월 5개 자치구에서 수방기준, 과거 침수피해 발생 여부, 하천 인접성, 침수흔적도에 포함된 지역 등을 고려해 선정됐다.

대전의 한 아파트 경비근로자가 혹시모를 침수에 대비해 마대자루를 모아뒀다.
대전의 한 아파트 경비근로자가 혹시모를 침수에 대비해 마대자루를 모아뒀다.

그러나 공동주택 입주민 중 일부는 차수판 설치에 반대하는 중이다. 공동주택관리법상 공동주택에 특정 시설이 들어서려면 반드시 일정 비율 이상의 입주민 동의가 필요한데 차수판이 설치되면 침수가 자주 발생하는 공동주택이란 낙인이 찍혀 집값 하락이 발생할 수 있단 이유에서다.

여기에 자연재해대책법에도 침수방지시설 설치를 규정하지만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부과되는 과태료는 하위 법령인 조례에 담길 예정이어서 공동주택법을 근거로 반대하는 입주민을 설득하기엔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차수판이 설치돼야 하는 21개 공동주택중 단 3개 공동주택에서만 관련 작업을 위한 입주민 투표 등이 진행되고 있으나 이마저도 지지부진한 상태고 1개 공동주택은 아예 차수판 설치를 안 하기로 해 다른 공동주택이 대상으로 오른 상태다.

물막이판 설치 관련 절차가 진행 중인 한 공동주택 경비근로자는 “지난해 자루에 흙을 퍼담고 벽을 쌓아 물이 흐르는 것을 막았었는데 올해는 침수방지시설 설치를 해준다고 해 입주민들을 대상으로 투표가 진행 중이다. 그러나 아직 제대로 결정된 건 없다. 비가 올 것이란 소식에 자루를 계속해서 모으고 있다”라고 말했다.

입주민 동의 없이 강제적으로 설치할 수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인 데다 차수판 설치가 속도를 낸다 하더라도 물량 확보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전국 자치단체가 장마 예보에 차수판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서서다.

시 관계자는 “안전 문제가 직결된 사안인 만큼 계속해서 소통하고 있다. 여기에 차수판을 확보하는 작업도 함께 진행 중인데 최대한 물량을 확보해 설치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글·사진=김지현 기자 kjh0110@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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