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대 교수

잠시 몇 년 전 이야기를 먼저 해보자.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의 두 번째 정상회담이 열렸다. 2차 정상회담을 앞두고 김 위원장이 베트남으로 향하던 중, 중국 남부 난닝역에서 담배 피우는 모습이 전 세계 언론에 노출되며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김 위원장이 흡연하는 모습이야 최근에도 자주 매스컴에 나오지만, 그때는 조금 특별한 장면이 보였다. 김 위원장 옆에 재떨이를 들고 서 있는 여동생 김여정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여정이 재떨이를 들고 있었던 이유는 담배꽁초 때문일까? 당연히 아니다. 이는 단순 의전을 넘어 자칫 김 위원장의 민감한 생체정보가 다른 나라 정보기관으로 새나갈 수 있는 상황을 막기 위한 조치이다. 현대 의학기술로는 담배에 묻은 타액만으로 각종 보유 질병이나, 건강상태, 예상 수명 등 파악이 가능하다.

앞서 북한 당국은 2018년 6월, 당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정상회담이 열린 싱가포르의 한 호텔에 전용 이동식 변기까지 가져왔다. 자칫 외국 정보기관이 자신의 배설물을 채취해 건강 상태를 엿볼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대변과 소변은 혈액이나 타액만큼이나 중요한 생체 정보를 제공한다. 머리카락이나 지문처럼 특정인의 DNA를 파악하는 데도 이용된다. 북한 호위총국은 김정은 위원장의 신변을 경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최고지도자 동지의 분변’까지 보호하는 것이다.

프랑스 절대왕정 시대 루이 14세가 완성한 베르사유 궁전은 화려한 건물과 아름다운 정원으로 유명하지만, 단 하나의 화장실도 만들지 않았다. 때문에 왕은 전용 변기를 갖고 다녔으나 미처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은 정원 곳곳에서 볼일을 봤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기도 하다. 프랑스에서 향수 산업이 발달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궁에도 화장실이 없었을까? 조선시대 본궁이었던 경복궁에만 30여 개에 가까운 화장실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왕조시대 지존이었던 임금만을 위한 화장실은 없었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는 배우 이병헌이 연기한 광해군이 눈 똥을 어의가 직접 살피고, 맛보기까지 하면서 건강을 확인하는 장면이 나온다. 왕이 쓰는 이동식 변기를 ‘매화틀’이라고 했다. 왕의 용변을 매화나무 꽃에 비유해서다. 역사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궁녀나 내시들이 휴대용 변기인 매화틀을 준비하는 장면을 간혹 볼 수 있다. 어의는 왕의 대변을 살핀 뒤 그 상태를 내시부 수장인 상선에게 알리고, 왕의 식사인 수라상 요리 재료를 조절하도록 권유했다. 대변을 통해 건강 체크와 식단 관리를 했던 것이다.

우리가 대장암을 미리 발견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병원에 가서 대장 내시경을 하거나, 대변 검사를 하는 방법이다. 조선시대에는 어의들이 매화틀에 담긴 내용물의 색과 농도를 보고 왕의 건강을 파악했지만, 요즘은 어떨까? 2005년 개봉한 영화 ‘아일랜드’에서는 복제 인간이 볼일을 보면 바로 ‘나트륨 과다 섭취’ 또는 ‘영양분 조절 권장’이라는 분석 결과가 나온다. 변기가 복제 인간의 대소변을 분석해 건강 상태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조언을 한다.

영화 속 상상력처럼, 요즘은 변기에 앉아서 대장암 징후까지 알아내는 현대판 ‘매화틀’이 이미 개발되어 있다. 일반인들도 매일 아침 화장실에 앉아있는 것만으로 건강상태를 점검할 수 있는 기술이 우리나라 과학자 주도로 개발이 완료됐다. 개인의 건강상태를 반복적으로 측정해 질병을 사전에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는 일종의 ‘스마트 변기’라고 할 수 있다.

바이오센서를 비데처럼 설치해 체중, 소변, 혈압, 혈류, 산소포화도, 심전도 등을 자동 검사하는 차세대 진단 의료기기다. 이를 통해 만성질환이나 비만 등을 진단하고, 맞춤형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 비데 보급률은 우리나라가 60%, 일본이 80%인데, 미국은 3%에 불과하다. 디지털 헬스케어는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앞으로 이 ‘스마트 변기’가 저렴하게 널리 보급된다면, 우리 모두는 조선시대 임금이 사용한 ‘매화틀’ 부럽지 않은 건강관리를 받을 수 있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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