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대 명예교수

“식은 밥 먹기도 더운/ 오늘 같은 날/ 시원한 바람 아래/ 맛 말하고 값 말하며/ 펄펄 끓는 뜨끈한 점심/ 시원한 냉면 먹을 때// 한 칸 넘어 딴 세상/ 땀 뻘뻘 흘리는 주방 사람들// 시원한 눈길/ 따뜻한 맘 담아/ ‘고마운 사람들’ 하고/ 기운 하나 보낸다/ 밥먹기도 힘든 날/ 밥만드는 뜨거운 사람들 생각한다// 아, 맘문 열고 보니/ 참 많다/ 고마운 사람들/ 귀하게 깔려 있다”

며칠 전 아주 더운 날, 덥다 덥다 노래하다가 시원한 바람 나오는 식당에 들렀다. 식당에 들어서니 방은 서늘하였다. 많은 사람들 맘 편히 밥먹고 있었다. 들어서는 우리를 맞이하는 주인에게 “오, 시원하네요!” 인사했더니, “주방은 너무 더워요!” 한다. 그 때 나는 그렇게 말하는, 우리를 알아 잘 맞이하는 주인에게 참 미안했다. 그리고 부쩍 고마운 맘이 들었다.

통통통통 경운기 돌아가는 소리가 내가 머물던 집 가까이에서 들렸다. 한 사람이 우리가 머무는 집마당으로 큰 수박 한 덩이를 들고 들어왔다. 그 마을에서 부지런히 농사하는 한 분이었다. “수박 한 덩이 드리고 싶어도 언제 오실지 몰라 안타까웠는데, 마침 일 마치고 돌아가려 하는데 오시는 차가 보이더라구요. 잘 익었어요. 한 번 맛있게 드세요. 고추나 호박도 드리고 싶은데, 그냥 갖다 놓으면 썩을 것이니 때를 맞춰야 하니까.” 10㎏은 됨직한 묵직한 수박 한 덩이를 넘겨받고, 그가 수박 농사하던 지난 석 달을 되짚어 생각해 보았다. 밑거름 넣고 땅고르고 철사 휘어 박고 비닐 치고 싹 심고 비바람 막고 열고 햇빛 막고 열고 순고르고 꽃 따내고 열매 버리고 한 포기에 큰 수박 한 덩이만을 만들기 위해 허리 굽히고 무릎 쪼그리고 땅바닥을 기면서 뙤약볕·비바람 맞으며 마지막 며칠 장사들이 와서 가져갈 때까지 노심초사 만들어 낸 한 덩이 수박을 넘겨받고 잠시 맛있다 말하는 것으로 넘겨버릴 일이 아님을 생각한다. 한 입에 쏙 들어가는 잘 익은 수박 한 조각 속에 그 농부의 땀과 걱정과 정성과 무거운 노동에 햇볕 바람 비 새소리들이 다 들어 있는 것을 생각하면서, 시장에 쌓여 있는 많은 농산물들이 그냥 상품이 아니라 ‘고마움 덩어리’로구나 생각할 때 뜨거운 열기 날려버리는 시원하고 따뜻한 고마움이 있다.

몇 주 전 일요일 아침에 참 난감한 일을 만났다. 퀘이커 예배모임을 하기 위하여 좀 넉넉한 시간을 잡아 모임방에 갔다. 전자자물쇠가 열리지 않았다. 여러 번 해보았으나 배터리 부족으로 열리지가 않았다. 땀은 뻘뻘 흘리고 참 난감했다. 그 때 아내가 인터넷에 나와 있는 열쇠가게 전화번호를 찾아 연락을 했다. 일요일이라서 연결이 될까 맘 졸이면서. 그런데 전화를 받았다. 곧 오겠다고 했다. 얼마나 고마운지. 모임에 올 사람들이 오고, 줌을 열 시간이 되었고. 기사가 오셨다. 여러 번 시도했지만, 자물쇠가 너무 오래 되었고, 배터리가 완전히 방전되어 소생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부수고 새로운 것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렇게 하자고 했다. 낡은 것을 폐쇄하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고, 쉽지가 않았다. 문이 열렸고, 새로운 것으로 바꾸어 끼웠다. 땀을 비오듯 흘리셨다. 아내가 찬물 한 잔을 드리니 반갑고 기쁘게 마신다. 또 수건에 찬물을 적셔 드리니 무척 고마워한다. 우리가 모이는 방을 보더니 맘이 숙연해지고 가라앉는 느낌이 든다고 하였다. 몇 번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니, “우리 같은 사람들은 필요한 사람들이 찾는 일을 하니까, 언제나 연락을 받고 나와야지요.” 그 말이 참 감동스러웠고 성자다웠다. 하기는 필요할 때 연결이 되지 않으면 얼마나 답답하고 낙심스럽던가? 참 고마운 분이다. 고맙다는 문자를 몇 번 나누니 그 가게에 가서 만나 이야기 나누고 싶기도 하다.

나는 아직 한 번도 신속 배달로 음식을 시켜서 먹어 본 적은 없다. 그런데 코로나로 격리되었을 때, 친구들 몇이 몇 가지 음식을 주문하여 배달받은 적은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찌는 무더위에 헬멧을 쓰고 두꺼운 옷을 입고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굉장히 빠르게 자동차와 자동차 사이를 누비면서 마치 곡예하듯이 위험을 무릅쓰고 달리는 사람들이 있다. 퀵서비스 하는 사람들이다. 잠자리 날개 같이 하늘거리는 옷을 입고도 더워서 헉헉거리는 판에, 완전무장한 듯한 저 복장으로 촌음을 다투듯이 먹을 것, 쓸 것을 날라다 주는 저 분들. ‘돈 벌려면 무슨 짓을 못해’ 하는 짓뭉개는 말로 간단히 정리하는 수도 있겠지만, 아, 참 고마운 사람들이다.

이렇게 한두 가지를 보면서 가만히 생각해 본다. 세상이 참 더럽다고 느껴 막 부아가 치밀고 욕설이 나오려다가 여기저기 구석구석에 들풀처럼 깔려 있는 고마운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고 맘이 서늘해진다. 대통령이나 장관이나 국회의원이나 목사나 신부나 스님이나 교수나 언론인이나 검사나 판사 따위들은 자기들이 무엇인가를 잘 해서 나라와 사회가 이만큼 지탱한다고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사실 그들은 없어도 될는지 모른다. 그러나 들풀처럼 깔려 있는, 조금씩이라도 돈을 벌어보려는 저 놀라운 고마운 사람들이 없다면 우리 사회는 폭삭 주저앉고 말 것이다. 이 대목에 도달하니 오늘 더위가 가시는 듯하다. 입추라서가 아니라 그 서슬에 그냥 서늘해져서다. 고마운 사람들, 고마운 사람들, 고마운 사람들 하고 주문처럼 외우면서 이 사람 저 사람 사랑담은 눈으로 바라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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