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기획자, 칼럼니스트

어느 해보다 뜨거운 여름이다. 뜨겁다 못해 폭우와 태풍까지 여기저기 휴가 계획을 망쳤다는 볼멘소리까지 들린다. 휴가 떠난 사람들조차 변덕스러운 날씨로 온전한 휴식을 누리지 한 채 일상으로 돌아왔다고 푸념했다. 어찌 된 일인지 해를 거듭할수록 날씨의 변덕은 더 심해졌다. 꽃이 사라진 봄, 눈이 없는 겨울, 폭염과 폭우 상상할 수 없는 기온변화가 온 지구촌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 

4년마다 열리는 세계 청소년들의 야영 축제 활동 ‘세계스카우트잼버리’도 폭염이란 날씨 복병을 만나 좌초했다. 전 세계 150여 개국 청소년들이 한 곳에서 야영을 하면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문화교류와 우애를 나누는 축제의 장이 폭염과 태풍 앞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국제행사를 치르면서 발생하는 다양한 위기상황에 대처할 준비도 마련되어 있지 않은 듯했다. 쏟아지는 비판에 행사의 본질은 사라지고 뿔뿔이 흩어져 참가자들을 단체관광 시켜주는 수준으로  전락시켰다. 

돌이켜 보면 잼버리를 준비하면서 놓친 것 중 하나가 날씨였던 것 같다. 전 세계 청소년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기간이 8월이었다면 준비하는 사람들은 날씨 문제를 우선순위에 놓고 고민했어야 했다. 어쩌면 날씨문제를 염두 했더라도 이렇게까지 문제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 못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회가 열리는 곳이 나무 한그루 서 있지 않은 바다를 메운 간척지가 아니었던가. 행사가 열릴 공간에 대한 환경여건을 준비과정에서 철저하게 확인했어야 했다. 

최근 몇 년 동안 축제를 비롯해 문화행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날씨는 1순위 골칫거리로 등장했다. 성공적인 행사를 위해선 날씨가 변수이기 때문이다. 온전히 자연의 힘에 의해 작동하는 절기축제나 지역축제의 성공비결은 기획자의 능력이 아니라 하늘의 힘에 의해 좌우된다. 과학문명이 발달한 지구촌에서 기후변화를 예측하지 못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 말해주는 것은 자연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아직 인간에게는 없다는 것이다. 

축제는 제례의식에서 시작되었다. 하늘에 기대어 살아야 했던 인류가 절기별로 변하는 자연변화, 농사, 추수 등을 기념하면서 만들어진 것이지만 인류의 기술의 발전, 자원의 남용으로 인해 심각한 기후변화를 겪으면서 현대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후위기 시대의 축제는 어떤 형태로 변화해야 할까. 어떤 면에서 보면 인간의 쾌락을 극대화한 것을 축제라는 형식으로 즐기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의 축제는 인간에서 쾌락을 제공하면서도 자연 질서에 반하지 않는 새로운 형식의 축제로 만들어져야 한다. ‘진정한 여행이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 데 있다’는 마르셀 프루스트 말처럼 축제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눈으로 축제를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 즉, 축제를 구성하는 시스템과 소재, 용품 등에 일회성 배제 원칙을 세우고, 축제 참여자가 창조적으로 활용하거나 이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과 운영규칙을 만들어야 한다. 

몇 달 전 대전지역 시민단체들이 ‘대전0시축제’와 관련하여 일회용품 저감, 다회용기사용 계획 등 친환경 축제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한 적이 있다. 시민단체의 요구가 축제에 얼마나 적용되었는지 알 수는 없으나 충분히 의미 있는 요구였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런 요구가 축제 주최 측에만 한정되어서는 안 된다. 일회용품 사용을 자제하는 문제, 대중교통을 통해 축제에 참여하는 문제는 참여자 모두가 함께 받아들일 때 기후위기시대의 대전의 정체성을 모토로 여는 ‘대전0시축제’만의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고 축제의 성공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지난봄 기후위기로 전국 지자체가 벚꽃 없는 봄 축제로 많은 사람들에게 아쉬움을 주었다. 하지만 대전 동구청은 벚꽃 없는 대청호 벚꽃축제를 사람들로 가득 채웠을 뿐만 아니라  꽃이 없어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축제의 즐거움을 보여줬다. 그들의 슬로건은 이랬다 ‘중요한 건 꺾였는데도 그냥 하는 축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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