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균 한국효문화진흥원 효문화연구단장

우리나라는 전국 어디나 효행 미담이 전한다. 효행의 전개 과정은 가난한 환경에서 희생적인 효를 실천해서 복을 받는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1단계 가난한 환경, 2단계 희생적 효실천, 3단계 복받는 단계이다. 심청전과 기타 효행열전 내용이 모두 비슷하고 삼국유사의 손순매아(孫順埋兒) 설화가 그 전형이다. 효자는 가난 때문에 부모부양이 어렵게 되자 자신의 아이를 땅에 묻으려고 땅을 팠고 땅에서 하늘이 준 선물이 나오면서 복을 받는다. 요즘 시각으로 보자면 경악할 엽기적 일이지만 당시로서는 감동적인 이야기다.

비슷한 설화가 대전에도 있다. 대전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식장산 자락의 효자 부부 얘기다. 부부는 가난 속에서도 늙으신 어머니 봉양에 정성을 다했다. 마침 태어난 아이가 커가며 노모 위해 차린 밥상을 축냈다. 부모 봉양이 우선이던 부부는 고민 끝에 애는 또 낳을 수 있지만, 어머니는 한 분뿐이다”며 애를 땅에 묻으려고 했다. 노모를 위해 애를 희생시키려는 엽기적인 결정이다. 애를 묻으려고 땅을 파는데 거기서 신기한 그릇이 나왔다. 그릇은 먹거리를 해결해 줄 하늘의 선물이었다. 부부의 효행에 하늘이 내린 복이다. 이런 효자 부부에게 내렸던 ‘식기가 묻힌 곳’이라 해서 식장산(食藏山)이라 이름했다는 전승설화다.

전형적인 가난, 희생, 효복의 3단계 공식에 따른 전개 과정이다. 이때 가난은 주어진 환경이니 어찌할 수 없는 문제라면 부양에 따른 2단계 희생은 선택의 문제이다. 먹거리가 넉넉하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냐만 부모와 자식 중 한쪽만 선택해야 한다면 어느 쪽이 됐든 비극일 수밖에 없다. 생사의 극한 상황에서 옛날 효자들은 노모를 선택하고 어린 자녀를 희생 대상으로 삼았다. 부자자효(父慈子孝)의 쌍방향 논리에서 사랑(慈)보다는 공경(孝)를 선택한 것이다. 미래(자녀)보다는 과거(부모)를 존중한 판단이다.

침몰하는 타이타닉호에서 보듯 서구사회는 어린이를 구하고 다음은 노약자와 임산부, 그 다음 젊은 여자, 마지막은 젊은 남성이 구조 대상이다. 우리와는 달리 사랑이 우선이고 공경은 차순위에 해당한다. 무엇보다 효를 소중히 여겼던 우리 사회라면 노부모가 앞순위에 해당한다. 서구사회는 미래의 주역이 우선이고, 우리사회는 과거를 기념하는 세대가 우선이다. 여기서 서구사회가 미래지향적이고 우리 사회가 과거지향적이라 단정한다면 심각한 속단이다. 왜냐하면 서구사회 역시도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여성과 미성년자 차별에 관한 한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혁명이란 숱한 시련과 고난을 거친 현대사회로 접어들면서 여성과 어린이가 존중되었으니 우리와 맥을 같이 한다. 그런데 효행을 위해 자녀를 희생시키려고 한 사례 가운데 실제 자녀를 희생시킨 경우는 한 건도 없다. 아이는 장래 조상과 부모의 대를 이어갈 효행의 필수적 존재다. 부모를 위한 자녀 희생은 효를 강조하기 위한 레토릭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3단계 복으로 가는 하나의 단계일 뿐, 진짜 희생은 아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과거 전통과 미래, 어느 쪽이 더 중하다고 말할 수 없다. 나무에 비유하자면, 뿌리는 과거이고 가지는 현재이고 열매는 미래라 할 수 있다. 뿌리가 튼실하면 가지와 열매도 무성하다. 그런 점에서 대전은 전통과 미래가 잘 어우러진 도시다. 전통적 효문화의 뿌리를 시대에 맞게 잘 표현한 뿌리공원과 한국효문화진흥원이 있고, 그 건강한 문화 전통을 기반으로 미래 과학기술을 담당할 연구단지가 있다. 이는 전국 어디에도 없는 대전만의 특징이자 자랑이다. 효복의 3단계 논리로 말하자면, 대전은 어렵던 시절의 우리 효문화전통을 잘 계승 발전시키는 데 앞장서 왔고, 동시에 미래 과학수도이자 일류 경제도시로 발돋움하기 위해 각종 현안 사업을 힘차게 추진하고 있다. 선현들의 희생과 헌신적 노력이 뒷받침되어 대전의 밝은 미래를 복으로 연결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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