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우 정의당 대전시당위원장

중학교 2학년 때 야영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선배 말에 현혹돼 보이스카우트에 가입한 적이 있다. 어린 나이였지만 일상의 규율에서 벗어나 동화같은 모험과 짜릿한 야외 활동을 꿈꾸었다. 실제로는 보이스카우트 옷을 차려 입고 소도시 작은 교차로에서 손동작으로 신호등 역할을 대신했던 것이 활동의 전부였다. 정작 여름방학이 돼 바닷가로 야영을 떠난다고 할 때 시골 집에 돌아가 방학 숙제에 쫓겨야 했다.

세계 잼버리는 4년마다 열리는 세계스카우트 회원들의 합동 야영대회이자 문화교류를 위한 청소년 축제다. 잼버리(Jamboree)는 북아메리카 인디언 말 ‘시바아리(Shivaree)’가 유럽으로 옮겨간 것이다. 어원을 풀어보면 ‘유쾌한 잔치’, ‘흥겨운 소동’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19세기 말부터 써온 잼버리라는 말은 ‘떠들석한 축하 파티’, 또는 ‘대규모로 웅성거리는 집단’을 뜻했다고 한다. 1920년 세계 잼버리 대회가 처음 열렸을 때도 온 나라 청소년들이 모여 모험과 우정을 즐기라는 뜻으로 잼버리를 대회 이름으로 사용했을 것이다.

다른 나라 청소년들과 교류한다는 설렘과 새로운 문화를 체험한다는 기대는 새만금 잼버리 대회장에서 처음부터 악몽으로 바뀌었다. 끔찍한 폭염, 물이 빠지지 않는 땅, 벌레들의 습격 속에 잼버리 참가자들은 제대로 씻고, 쉬고, 치료할 수 없는 극한 상황에 내버려졌다. 국내보다 국외에서 잼버리의 준비 부족을 지탄하는 소식이 쏟아지고 나서야 우리나라 언론들도 뒤늦게 보도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당초 8월 1일부터 12일까지 열기로 했던 새만금 잼버리는 영국, 미국, 싱가포르 등 참가자 6000여 명이 캠프장에서 5일 만에 떠나기로 하고 세계스카우트연맹이 잼버리 중단을 권고하면서 위기에 직면했다. 정부와 주최 측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회를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지만 난데없이 태풍 ‘카눈’이 한반도 내륙을 관통할 것이라는 예보에 다시 이틀 만에 야영장을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갑작스러운 야영장 철수에 전국 대학, 대규모 숙박 관광시설 종사자들과 지자체 공무원들은 4만 명에 이르는 참가자 숙소 마련과 프로그램 지원을 위해 동원돼야만 했다. “새만금 잼버리는 새만금을 떠나지만 대한민국 전역에서 잼버리가 여전히 펼쳐질 것이다.” 새만금에서 철수하면서 김현숙 여가부 장관은 이렇게 강변했다. 이것은 세계스카우트연맹 가이드라인을 전혀 모르고 한 말이었다.

새로운 체험과 모험, 문화 교류의 장으로 만들기 위해 세계스카우트연맹은 몇 가지 사항을 프로그램에 반드시 포함하도록 하고 있다. 예컨대, 캠프 생활 형태여야 하고, 다양성을 배울 수 있어야 하며, 서로 쉽게 만나고 섞일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새만금을 떠난 참가자들은 더 이상 캠프 생활은 할 수 없었고 각 나라별로 전국 각지에 흩어지면서 국가별 교류도 어려워졌다. 일부를 제외하고는 도시 중심으로 활동 무대를 옮기면서 자연 환경 속 모험을 위한 기회도 사실상 사라졌다.

새만금에 모인 미래세대는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갯벌을 무참히 파괴한 현장도 보았을 것이다. 그곳에서 전지구적 기후 위기를 어떻게 대처할지 공감대를 이뤘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급조하다시피 한 K팝 콘서트 준비 과정에서는 안전 불감증과 노동자 배제 실상을 여실히 드러냈다. 잼버리 참가자들의 안전은 강조하면서도 무대 설치 공사에는 안전난간이나 생명줄도 없이 노동자들을 동원하는 이중적이고 비상식적 행태 앞에 국격 또한 사라졌다.

새만금 잼버리는 결국 실패로 끝난 셈이다. 예측할 수 있었던 실패였다. 잼버리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 온 힘을 쏟지 않고 새만금 개발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정치적 목적을 앞세웠던 지자체, 정부, 국회 등이 합작해서 만든 결과이다. 부실한 준비와 무능한 행사 운영에 관한 부끄러움은 국민의 몫으로 떠넘긴 채, 잼버리가 끝나자마자 새만금 신공항 건설을 막무가내로 다시 추진하는 저 파렴치한 정치인과 토건 자본들을 어찌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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