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대 교목

고대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Seneca)는 우리가 받은 인생이 짧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렇게 만든다고 했다. 시간이 모자라는 것이 아니라 실은 낭비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래를 바라볼 때는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지만, 과거를 돌아보면 짧게 느껴진다. 어릴 적 다양한 꿈을 꾸면서 아득히 많은 시간을 넉넉한 미소로 바라보았다면, 이제 돌아보니 짧은 시간이었다는 생각에 우울해진다.

결코 낭비하고 싶지 않아 열심히 바쁘게 살았다. 그런데 환상과 현실이 교차하는 일상에서 방황했을 뿐 뭔가를 이뤄낸 기억이 별로 없다. 시간이 충분하다고 판단해 계획했지만 실행하는 순간부터 조급했고 무기력했다. 무엇인가를 할 만큼 충분한 시간이 아니었음에도 더 많은 시간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저 바쁘게 일했다는 사실로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믿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시간조차 낭비했다는 지적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정말로 바쁘고 열심히 살았음에도 시간 낭비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대 희랍 사람들은 시간을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로 구분했다. 절대의 시간과 상대의 시간, 혹은 개념의 시간과 의미의 시간이 그것이다. 크로노스의 관점에서 보면 열심을 내고 바쁘게 살았던 것은 분명하지만, 카이로스의 관점에서는 의미를 느낄 수 없는 시간이었기에 낭비했다고 인식되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에 대한 준비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수많은 배움과 노력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었고, 매 순간의 선택은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에 대해 준비한 결과였다. 그런 고민과 준비로 쌓인 것이 오늘의 시간이 됐고, 지금의 내가 됐다는 사실이다.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한다고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노력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지만, 하지 않고 노력하지 않으면서 후회하지 않을 방법은 없었다. 무턱대고 열심히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그래도 최선이라 믿었다. 바쁜 것이 좋은 것도 아니고, 이것저것 많은 일을 한다고 부지런한 것도 아니지만 바쁘지 않으면 조바심나고, 잠시라도 가만히 있는 것은 불안해서 견디기 힘들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방향이지만, 불확실한 방향에 대한 불안조차 열심을 통해 해결하려 했던 것이다. ‘게으름’의 저자 김남준은 게으름과 부지런함은 삶의 태도가 아니라 삶의 방향과 관계있다고 주장한다. 아무리 분주하게 살아도 거룩한 목표가 없다면 게으른 삶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의미란 생의 질문을 답하고도 남을 가치있는 목표를 지향했을 때 생겨난다. 단순히 성공이나 출세를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는 변명으로 시간의 기회를 다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내일을 위해 오늘의 행복을 양보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졌다. 굳이 욜로(YOLO)나 소확행(小確幸)으로 이름 붙이지 않아도 확산되는 분위기다. 이들은 행복이라 말하지만 사실은 쾌락과 유희에 가깝다. 마치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하는 이들의 모습을 마냥 응원할 수 없는 것은 이것이 다른 방식의 나태(懶怠)이기 때문이다. 낭비한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그럴수록 시간은 많지 않다.

나태는 의욕이 없어 무기력해지고 어떤 일에도 감정이 동하지 않아 마침내 손을 놓고 아무것도 행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자신들은 바쁘다고 말하지만 특별한 소명이나 목적의식, 열정조차 없는 그저 수동적으로 주어지는 일상의 무의미한 반복과 목적이 없는 분주함을 나태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해법은 있다. 나태는 라틴어 아케디아(acadia)에서 왔는데 ‘관심없음’이라는 의미다. 반면 나태와 반대되는 근면은 라틴어 딜리게레(diligere)인데, 그 의미는 ‘사랑하다’이다. 바라보는 시간과 돌아보는 시간에 관심을 가지면 겹쳐진 시간에 오늘의 내가 있다. 나를 조금 더 사랑하라, 그리고 열정을 가져라, 더 많은 의미의 시간이 주어지게 될 것이다.

아인슈타인도 상대성이론을 통해 시간은 일정한 것이 아니라 운동하는 물체에 대해서는 다른 시간이 흐른다고 했다. 매 순간 열정을 다해 살다가 시간이 다하는 어느 날, 내가 애써온 모든 날이 참 귀하고 가치 있었다고 그렇게 기억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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