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전 대전문인협회장

나는 언제나 철이 들 것인가! 철이 없는 사람을 ‘철부지’라고 부른다. 철부지는 원래 ‘철不知’라고 쓴다. ‘철을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철이란 무엇인가? 사시사철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변화를 알아채지 못하는 사람이 철부지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때’를 모른다는 말이다.

꿈은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꿈꾸는 사람을 가혹하게 다룬다. 꿈을 꾼다는 것은 죽을 각오를 한다는 것이다. 꿈은 생명만큼이나 소중하다. 삶은 꿈의 아름다움을 믿고 내일을 향해 질주하는 사람의 것이다.

봄이 오면 밭을 갈아 씨를 뿌리고, 여름에는 땀을 흘리면서 김을 매고, 가을에는 열매를 수확하고, 겨울에는 월동하기 위해서 창고에 저장해야 한다. 철을 모르는 사람은 땅이 꽁꽁 얼어붙은 엄동설한에 씨를 뿌리려고 들판에 나가는 사람이다. 눈밭에 씨를 뿌리니 싹이 나올 리 없다.

이렇게 설명하면 쉽지만, 사실 자기 인생 사이클에서 철을 정확하게 짚어내기란 상당히 어려운 문제이다. 사람마다 각기 철이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인생은 태어나자마자 가을부터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펄떡거리는 물고기의 비늘 같은 번득이는 머리를 가진 사람을 만나면 기쁘다. 평소 철저한 자기 관리와 쉴 새 없는 연습은 선수가 어떤 신분이 되어도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 나의 인생 화판에 무슨 색깔의 색종이를 오려 붙여 꿈 집을 지을까를 생각한다. 세상에서 가장 나쁜 것은 기회와 희망 없이 사는 것이라 말하지 않는가?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부모가 물려준 빌딩의 임대료부터 받기 시작하면 과일부터 따 먹는 셈이다. 흥청망청 청년기를 보내면 대개는 주색잡기(酒色雜技)로 흐르기 마련이고, 패가망신(敗家亡身)이라고 하는 엄동설한이 다음 코스로 기다리고 있다.

반대로 겨울부터 시작하는 사람은 조실부모(早失父母)하고, 자장면 배달부터 시작하지만, 시간이 가면 새싹이 돋아나는 봄을 맞는다. 문제는 자기 인생이 지금 어느 철(때)에 와 있는가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이다.

진단이 정확하면 처방은 나오게 되어 있다. 봄이라는 진단이 나오면 씨를 뿌리면 되고, 여름이라는 진단이 나오면 기꺼이 땀을 흘려야 한다. 철을 알면 기다릴 줄 안다. 겨울 다음에는 반드시 봄이 온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기다린다. 철을 모르면 기다리지 못한다. 철을 알고 모르고의 차이이다.

나는 언제나 천리향 냄새가 난다는 소리를 들었으면 좋겠다. 그게 그리 쉬운가? 이런 향을 풍긴다면 내 가슴은 비밀스러운 즐거움으로 높다랗게 고동치기 시작할 것이다. 뜨락에 피어난 장미는 남의 눈을 끌려고 애쓰지 않으나 사람들의 시선은 저절로 거기에 머문다. 우연히 이룬 성공은 작은 승리에 교만하다가 큰 전쟁에서 실패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진단만 정확하면 그 사람 인생의 절반은 이미 성공한 사람이다. 살아 보니까 진단을 하기도 어렵고, 제대로 된 진단을 받아 보기도 정말 어렵다. 진단할 줄 아는 사람이 바로 철든 사람이고, 진단을 내려주는 사람이 스승이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일은 무한경쟁 시대를 맞는 차세대 한국인들이 안주할 수 있는 보다, 견고하고 효율적인 집을 짓는 일이다.

한국 사회에 스승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철부지가 많다는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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