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문학평론가

충남 아산 출신의 변경섭 시인이 네 번째 시집 ‘다시 사람에게 묻다’를 출간했다. 시인은 오랫동안 서울에서 살다 몇 년 전 강원도 평창의 깊은 산골에 정착했다. 지금껏 세상에서 배워온 배움이 욕망의 갈증을 가시게 하는 생수가 되지 못해 늘 ‘허기진 삶’을 살아온 자신이 하도 애달프고 공허하여, 숲에 들어와 ‘돌멩이와 나무와 바람’에 배우고 나서야 비로소 영적 존재인 자신을 찾기 시작했다. 산골 마을에서 자연과 하나가 되니까, 비로소 잡다한 소음과 번뇌로 퇴화하고 마비됐던 감각과 정신이 되살아난 것이다. 시인은 그간의 자연과 분리된 삶이 부질없음을 깨닫는 회심(悔心)을 거쳐 천인합일(天人合一)의 근원적 관계를 회복하는 회심(回心)에 이른다. 이렇게 자연과 하나 되는 삶의 성찰을 통해 얻어낸 시적 성과를 이번 시집에 담았다.

시인이 이 시집에서 보이는 가장 큰 미덕은 자신을 둘러싼 자연의 섬세한 모습을 눈여겨보고, 작은 소리에도 귀 기울이는 자세와 그를 통한 자아 성찰에 있다. 하지만 시인은 자신의 시(詩)가 바람에 쓰러지지 않은 채 ‘뿌리 박은 자작나무’처럼 의연하지 못하고, ‘세상의 떠도는 말’처럼 바람이 되어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한다(「부는 바람」). 또 ‘자본의 세상’에서 ‘효용가치가 떨어져’ 도태되는 시인을, 감나무에 밀려 이름마저 사라져버린 고욤나무와 동일시한다(「고욤나무의 추억」). 하지만 감나무는 고욤나무 없이는 대를 이어갈 수 없다. 고욤나무를 밑나무로 해서 감나무 가지를 잘라다 접을 붙여야만, 고욤나무 엄마의 헌신적인 보살핌을 받아 튼실한 감나무로 거듭나게 된다. 따라서 감나무든 고욤나무든 또 바람과 자작나무든 다 나름의 존재 가치가 있고 또 감당하는 역할이 다를 뿐으로, 다 필요한 만큼 저마다 대등하고 존귀하다.

특히 이산하 시인이나 김남주 시인 그리고 백무산 시인처럼 거대 담론을 이끌며 한 시기를 앞장서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한 시인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동시대인으로서의 죄스러움과 부끄러움을 고백한다. 자신의 시와 삶에는 그들처럼 가슴 떨림이 없다는 것이다(「피와 칼과 눈물」). 물론 그 시인들이 보여준 격정적 삶과 가슴을 뛰게 하는 시의 울림은 훌륭하고 또 본받을 만하다. 그러나 그들의 진취적 기상과 격정의 시도 그들과 함께하는 동지들과 시인들이 없었다면 빛을 발할 수 없다. 그들과 변경섭 시인은 다른 것이지 위계적 관계가 될 수 없다. 오히려 작은 존재와 기꺼이 눈높이를 맞추고 그들의 아름다움을 드러내 주는 변 시인의 삶과 시는, 모자람이 없이 소중하고 아름답다.

시인은 주변의 작은 꽃을 외면하지 않고 공경의 자세로 살펴보고 그 존재를 인정함으로 해서 서로 의미 있는 관계가 된다. 그 존재만으로 향기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삶의 자세와 태도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는 것이다. 담백한 맛을 선사하는 작은 돌나물처럼 누군가에게 기꺼이 맛있는 존재가 되고자 하는 시인의 다짐처럼, 앞으로도 자연 공경을 통해 이웃을 공경하고 나아가 하늘을 공경하는 생태평등주의를 일상에서 실천하며, 덕 있고 맛 나는 인생을 살아가길 빌며 응원한다.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