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대 교수

몇몇 SF 영화나 드라마에는 오랜 세월 동면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1993년에 만들어진 ‘데몰리션맨’이라는 영화에서는 사람을 급랭시켜 가둬두는 미래형 냉동 감옥이 등장해 흥미를 유발한다. 2030년대의 미래를 무대로 강력계 형사 실베스터 스탤론과 같은 시기 활동하던 흉악범이 냉동 감옥에서 깨어나 벌이는 사투를 그렸다.

냉동 인간 아이디어는 1960년대 미국의 로버트 에팅어라는 물리학자가 처음 제안했다. 불치병에 걸려 현대의학으로 생존이 불가능한 사람들을 미래 의학 기술로 고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 일종의 인간 수명 연장의 해법으로 시신을 냉동 보존해 두었다가 먼 미래에 깨워 다시 살게 하자는 개념이었다.

냉동 수면은 조금 다른 개념이다. 냉동인간이 사후에 냉동 보존된 상태라면, 냉동 수면은 말 그대로 잠자는 숲속의 공주처럼 오랫동안 동면하는 것을 말한다. ‘인터스텔라’나 ‘아바타’같은 영화에서도 우주인들이 냉동 수면 상태로 있다가, 목적지에 가까워지면 깨어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영화일 뿐, 현실적으로 사람을 얼려 보존하는 것은 아직 무리다. 물이 얼음으로 변하면 부피가 10% 정도 늘어난다. 페트병에 담긴 생수를 냉장고에서 얼리면, 생수병이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것을 다 경험했을 터. 인체의 70%도 수분이다. 냉동 과정에서 체내의 수분이 얼음 결정을 형성하고 조직을 파괴한다.

아직 소생했다는 냉동 인간 소식은 못 들어봤지만, 냉동 상태로 보존된 인간이 상당수 존재한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졌다. 현재 전 세계 냉동 인간은 600여 명에 이르고, 대기자가 3000명에 달한다. 대개 전신 냉동 가격은 20만 달러, 머리만 냉동은 8만 달러를 받는다고 한다.

인체 냉동보존 기술이 발전하면 만성적인 이식용 장기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아직 세포 덩어리에 가까운 인간의 난자와 정자의 냉동 보존은 실용화됐다. 특히 난임이 예상되면 정자나 난자를 냉동해두었다가, 나중에 이를 이용해 체외수정으로 아기를 갖기도 한다. 문제는 뇌의 기능이다. 냉동 과정 중 뇌의 부피가 커져 세포막 손상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설령 냉동인간이 부활한다 해도 기억이 회복될지 미지수라는 점이다.

그런데 만약, 모든 기술적 문제들을 극복하고 냉동 인간을 소생시키는 것이 가능해졌다고 가정해 보자. 과연 어떤 문제가 발생될까? 우선 그 정도로 기술력이 발달한 사회는, 당사자가 냉동된 때와는 완전히 달라져 있을 것이다.

미래인들이 냉동인간들을 부활을 기다리며 잠든 동족들로 대할지, 유용한 고고학 연구 대상이나 쓸모없는 쓰레기로 대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어쩌면 수백 년 만에 기껏 소생되고 보니 실험실로 직행할 수도 있다. 비슷한 사례는 지금도 찾아볼 수 있다. 지금 지구상에 사는 그 누구도 고대 이집트 파라오들의 미라를 부활을 기다리는 군주로 여기지 않는다.

미래에는 기대수명이 수백 년 이상, 어쩌면 영생에 가깝게 상승할 수 있다. 그런데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변치 않는 사실이 있다. 그건 바로 인간은 ‘시간’이라는 변수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다. 극단적 예를 들면,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에서 그린 미래도시에 사는 부자들은 사이보그로 몸을 옮겨 천 년 이상 삶을 누린다. 그러나 아무리 사이보그라고 해도 정신은 인간이기 때문에 1000년, 2000년을 사는 기나긴 삶에서 오는 무료함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는 일도 많다.

‘은하철도 999’를 창작한 마츠모토 레이지가 우리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은 한정된 시간 덕분에 더욱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인간적인 삶이다. 그는 “만약 사람이 영생을 산다면, 대충대충 살 것이다. 시간은 꿈을 배반하지 않고, 꿈도 시간을 배신하면 안 된다”고 조언한다.

정말 불로장생의 시대가 된다면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의 명대사인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말 대신 “더 사느냐, 바로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말이 유행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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