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연구소 꿈꾸는다락방 대표

사진= 이선준
사진= 이선준

우리는 종종 '나를 규정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 앞에 서성일 때가 있다.

“나는 과연 누구이고 어디서 왔으며 나를 이루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나’라는 한 사람의 실체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는 순간 말이다.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무엇이며, 진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을 갖고 있다면 영화 ‘한 남자’를 놓치지 않길 바란다. 영화 ‘한 남자’는 이런 의문을 갖고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주인공 X에게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됐으며 제46회 일본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 포함 8관왕을 차지하며 화제가 된 ‘한 남자’는 2018년 요미우리 문학상을 수상한 히라노 게이치로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소설을 쓴 히라노 게이치로는 인간이 여러 관계 속에서 달라지는 한사람의 여러 모습, 즉 ‘분인주의’로 이들의 삶을 바라본다. 분인주의는 타인과 맺는 관계에 따라 자아가 달라지고, 이런 자아들의 총합이 개인의 특성을 이룬다는 관점을 말한다.

시골 마을에서 작은 문구점을 운영하는 리에는 어느 날부터 단골이 된 다이스케와 사랑에 빠진다. 행복한 가정을 꾸린 것도 잠시, 다이스케가 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 오랫동안 소원하게 지내던 형 교이치가 다이스케의 1주기에 찾아왔는데, 영정을 보더니 “이 사람은 다이스케가 아니다”라고 한다. 그렇다면 내가 알던 남편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요즘 일본의 중요한 사회 문제 중 하나이기도 한 ‘조하쓰’(자발적 실종)가 영화의 중심 소재다. 하루아침에 이름과 지위, 가족 등 모든 자신의 삶을 버리고 새로운 신분인 '다이스케'로 살 수밖에 없었는지 아내 리에가 변호사 키도에게 남편의 실체를 추적해 달라고 의뢰하며 그의 이면을 따라가는 것이 영화의 시작이다.

영화 '한 남자'를 이끌어가는 큰 질문은 "'X'는 누구인가?"이다. 여기서 X는 정체를 알 수 없게 된 다이스케를 의미한다. 다이스케가 알고 보니 다이스케가 아니었다는 충격적인 진실이 밝혀지면서 '그럼 다이스케가 아닌 진짜 그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름이 무엇인지, 어떤 과거를 가졌는지 알 수 없기에 'X'라고 한 뒤 그의 정체를 뒤쫓는다. X가 어떤 이름으로 어떤 삶을 살았는지 찾아가는 과정에서 키도는 점점 X에게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X가 걸어온 길을 뒤따른다는 것은, 다시 말해 그의 삶의 흔적을 따라 고스란히 발걸음을 옮기며 X를 깊숙하게 알아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X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겹쳐보게 된 키도이기에 X를 알아간다는 건 결국 '자기 자신'을 알게 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키도가 밝혀낸 X의 진짜 삶은 살인자의 아들이라는 굴레가 덧씌워지며 평생을 괴로워했던 한 남자였다. 살인자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피와 그를 꼭 빼닮은 자신의 얼굴이 증오스러웠던 한 남자는 평생을 괴로워한 끝에 자신을 이뤄온 것들을 모두 버리고 '다이스케'라는 새로운 삶을 얻었다.

X의 삶을 들여다본 키도는 재일교포 3세라는 감추고픈 사실이 있고, 원래의 다이스케 역시 벗어나고 싶은 아버지의 굴레가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자신을 이루는 것들로 인해 키도 역시 끊임없이 흔들렸던 과거의 자신을 떠올린다.

키도가 X의 정체를 뒤쫓는 과정에서 발견한 것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다. 다시 말해 '나'를 규정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긴 여정이었다. 그렇게 X의 삶의 그림자를 쫓는 긴 여정에서 키도는 X를 이해하게 된다. X를 이해한다는 것은 키도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한 남자', 즉 '한 사람'으로서 거듭나게 된다. '나'라는 존재를 고민하는 X와 키도는 모두 '한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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