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 여의도연구원 객원연구원

우리 경제에 조만간 4고(高) 먹구름이 찾아올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경제를 짓누르고 부진의 늪에 몰아넣은 고물가·고금리·고환율 3고(高)와 함께 고(高)유가까지 덮쳐 '4高 현상'이 밀려올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위기는 보통 주식시장의 대폭락과 함께 고개를 내민다. 그러나 이번엔 좀 성격이 다르다. 경제 시스템에서 주식시장보다 더 크고 중요한 곳이 채권시장이다. 금리는 이자의 형태로 경제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지난 3일과 4일 국내외 채권시장에서 한바탕 난리가 났는데 일제히 금리가 폭등했기 때문이다. 국채 투매에 따른 대폭락이 벌어진 셈이다. 채권금리는 채권가격과 반대로 움직인다.

미국 국채금리 급등으로 달러 이외의 통화가치까지 곤두박질쳤다. 중동과 러시아의 의도적 감산으로 국제유가는 고공행진이다. 중국과 유럽에서는 경기침체 조짐이 뚜렷하다. 홀로 뜨거운 경제를 식히려는 미국의 ‘고(高)금리’가 우리나라를 비롯한 다른 나라에는 ‘고(苦)금리’다. 경제위기의 먹구름이 짙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과거 미국이 가파르게 금리를 올린 후에는 시차를 두고 경제위기가 나타났다.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호황이 계속되자 1994년 초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3%이던 기준금리를 1995년 6%까지 올린다. 미국 기준금리는 1998년까지 5% 이상으로 유지됐고 달러 강세로 아시아 국가들의 외화 곳간이 텅텅 비게 된다. 바로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다. 강 달러에 전세계 자금이 몰리고 증시가 급등하면서 미국은 멀쩡한 듯 보였다. 하지만 미국도 결국 2000년 인터넷 버블 붕괴로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된다.

10년 뒤 같은 현상이 벌어졌다. 연준은 지난 2004년 5월 1%이던 기준금리를 2006년 7월까지 5.25%로 끌어올린다. 인터넷 거품 붕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펼쳤던 저금리 정책이 자산가격을 부풀리며 물가가 오르자 연준이 나선 것이다. 지난 1995년과 마찬가지로 미국 경제는 연준의 긴축을 호황의 증거로 받아들였고 증시는 2007년까지 가파르게 상승한다. 하지만 미국도 고금리 여파로 서브프라임모기지와 연계된 집값 거품이 붕괴하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어야 했다.

통화가치가 하락하면 수입 물가가 치솟고 외국 자본은 환 손실을 피해 이탈하게 된다. 이를 막으려면 중앙은행은 금리를 높여 통화량을 줄임으로써 화폐가치 하락을 막아야 한다. 우리나라의 상황이 꼭 그렇다. 달러당 원화가치는 10월 4일 1360원을 돌파하며 연중 최고치를 경신했다.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도 4일 한때 4.3%를 넘어섰다. 현재의 금리와 환율은 모두 작년 레고랜드 사태 때를 제외하면 글로벌 금융위기 때 수준이다. 2008년 금융위기 발발 직전에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환율과 금리가 급등하는 전조가 있었다.

연준이 금리를 계속 올리고 있지만 미국의 물가는 좀처럼 잡히지 않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달러 가치가 높아지며 미국 소비자들의 구매력은 오히려 더 강해졌고 임금까지 오르며 소비 자체도 줄지 않고 있다. 문제는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들이다. 미국처럼 소득이 늘지도 않는데 금리상승과 통화가치 하락에 따른 고물가의 충격에 고스란히 노출되는 모습이다.

가계부채는 올해 2분기 말 기준 1862조 8000억 원으로 지난 1분기 1853조 3000억 원보다 0.5%인 9조 5000억 원이나 늘어났고, 기업부채는 올해 2분기 말 기준 기업 대출 잔액은 1908조 9000억 원, 전체 기업 신용(대출 + 외상거래)은 2705조 8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고금리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기업부채마저 위험 수위에 다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은 가계부채 관리를 위한 별다른 정책 대응 노력이 없을 경우 3년간 가계부채는 매년 4∼6% 정도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는 현재와 같이 매년 6%씩 늘어나 해마다 100조 원 이상 가계부채가 늘어난다는 추산이다. 이 같은 증가 속도라면 가계부채 규모는 1년 뒤 1974조 원, 2년 뒤 2092조 원, 3년 뒤 2218조 원에 이를 전망이다.

경기 침체 장기화의 어두운 터널에서 벗어나려면 기업 하기 좋은 환경과 여건을 조성하는 데 정부역량을 총 집주해야 한다. 기업과 가계도 위기의식을 갖고 긴장감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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