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글처럼 퇴고(推敲)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말을 잘 한다는 것’은 ‘청산유수’나 ‘달변’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할 말과 하지 않아도 될 말을 잘 가려서 하는 것이 ‘말 잘하는 사람’이다. 경찰청장 후보자가 말을 잘 가려하지 않고 ‘망발’을 했다고 해서 세상이 시끄럽다. 천안함 유족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착잡하다. 전·현직 경찰가족들은 오죽하랴. 쌀은 쏟고 주어도 말은 하고 주어 담을 수 없으니, 안타까운 노릇이다. 경찰은 업무의 속성상 특별교육을 많이 하게 된다. 직무수행에 필요한 전문 교육도 필요하고, 집단상황 대처가 빈번한 직업이므로 이에 따른 교양도 자주 실시된다.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변수나 부작용이 발생하면 알게 된다. 지휘관이 특별교육을 했느냐 안 했느냐가 문제가 되기도 한다. 물의를 일으킨 경찰청장 후보자의 ‘특별강의’도 집단상황 대처가 주 임무인 기동단 팀장급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경찰청에서 공개한 ‘강의 전문’을 보면 변수나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실시한 특별교양이다. 그런데 문제는 ‘훈시 분량’이 만만치 않다. 1시간 8분 6초 분량의 동영상을 글로 옮겼다고 하는데 A4용지 26쪽 분량이다. 이만한 분량이라면 ‘뉘’가 섞일 만하다.의도적이었던 무의식적이었던 계급사회에서 상관의 말의 무게는 가볍지 않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말수가 많아진다. 직장에서는 직위가 높아지면 말수가 많아진다. 말의 파급력과 영향력을 생각하면 한 마디 말에 천근 무게를 실어야 하는데 경한 말도 튀어 나온다. 어느 직장이나 온화한 인품으로 덕을 베풀지 않으면 ‘상사’를 좋게 평하는 경우가 드물다. 오죽하면 ‘술자리 안주 감’으로 최고라고 하는가. 그래서 단상에 오를 때는 ‘입심’이나 ‘카리스마’만 믿고 나오면 안 된다. 아무리 격의 없는 자리라도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준비되지 않은 즉흥적인 언사에는 늘 마(魔)가 도사리고 있다. 글을 쓰는 사람도 정제된 언어 하나를 찾기 위해 밤을 하얗게 밝힌다. 보통 사람도 살아가면서 경(輕)한 말 한 마디 때문에 밤잠 못 이루고 괴로워할 때가 있다. ‘입은 화(禍)의 문이요,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다’라는 말도 그래서 생겼다. 쌀에 ‘뉘’가 섞이듯 말이 많으면 쓸데없는 말이 끼게 마련이다. 그런데 말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평소 자신의 품성과 기질에서 나온다. 인격에서 만들어진다. 삼가도 될 말을 ‘오버’하는 것은 ‘자아도취’와 ‘우월감’에서 비롯된다. ‘단상(壇上)의 철학’과 ‘단하(壇下)의 철학’이란 게 있다.누구나 말단 시절에는 입이 있어도 말이 없다. 간부가 되어 단상에 서게 되면 목에 힘이 들어가는 사람이 있다. 자신은 안 그런 것 같지만 단하(壇下)에서는 그렇게 본다. 독선에 치우친다. 오만과 교만이 드러난다. 비인격적인 언사도 튀어 나온다. 감정조절이 안 된 거친 말투를 함부로 구사한다. 단상(壇上)의 무례함이다. 그래서 인격이 원만한 상사는 겸손을 깔 줄 안다. 듣기 싫은 질책성 훈계를 해도 말투에서 ‘겸허한 인품’이 배어나오면 공손히 받아들인다. 현명한 관서장은 직원들의 ‘쓴 소리, 단 소리 반응’을 진솔하게 ‘모니터링’해 주는 사람을 가까이한다. 이른바 ‘말의 코디네이터’다. 청와대에서 VIP를 모시는 사람이 의상도 골라주고 말씀자료도 제공해 주면서 세세하게 조언해 주듯이 직장에서도 상관의 말씀을 ‘모니터링’해 주는 조언자가 필요하다. 물론 이번 ‘특강내용’이 전체 맥락으로 보면 옳은 지적도 많다. 충성을 다하고자 하는 말씀이다. 내부적으로는 동지(同志)이니까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다.그러나 왠지 거슬린다. 무엇보다 천안함 가족 입장에서 ‘짐승’이란 표현은 부적절하다. 여과 되지 않은 언어가 앙금처럼 남아 뇌리에서 애써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다. 교육내용을 묵묵히 받아 적는다고 해서 그들이 ‘영혼 없는 존재’로 보아서는 안 된다. 아무리 구구절절 옳고 긴요한 말이라도 무려 1시간이 넘는 일방통행식의 ‘뉘 섞인 말씀’이라면 온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경찰 지휘관의 ‘훈시내용’이 앞으로는 기자들의 취재대상이 될지도 모른다. 아랫사람 교육에 앞서 각급 관서장부터 원만한 인품 함양과 더불어 물의를 일으키지 않는 바람직한 ‘훈시기법’ 터득 특별과정이나 장치 마련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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