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 인스부르크와 인강.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Innsbruck)는 알프스산맥 동부 해발 574m의 고지대에 있는 산악도시다. 인스브루크는 지리적으로 오스트리아의 서쪽에 있어서 남-북으로 이탈리아·독일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오히려 수도 비엔나(Wine)와는 거리가 멀어서 국제적인 교통의 중심지다. 인스브루크는 이탈리아에서 브레너 고개를 넘어 독일로 이어지고, 또 스위스에서 서부 유럽으로 연결되는 주요 무역로의 교차점으로서 오래전부터 교통의 요지로 발달했다.

인스브루크란 지명은 협곡 사이를 흐르는 인강(Inn)에 놓인 다리가 교역로 역할을 하여 ‘인강(Inn)에 걸린 다리’라는 뜻이다. 티롤주의 주도(州都)인 인스브루크는 인구 13만여 명의 작은 도시이지만, 수도 비엔나, 그라츠(Graz), 린츠(Linz), 잘츠부르크(Salzburg)에 이은 5대 도시로서 13세기 이래 19세기 초까지 약 600년 동안 유럽을 지배했던 신성 로마제국 합스부르크 왕가의 궁전으로서 곳곳에 유적이 많이 남아있다.

마리아 테레지아 거리.
마리아 테레지아 거리.
마리아 테레지아 거리.
마리아 테레지아 거리.

역사적으로 인스브루크는 1239년 자치시가 되었다가 1363년 합스부르크가(家)에 넘어갔다. 1420년 프리드리히 공작의 지배 아래에서 티롤의 주도이자 공작 주거지가 되었다. 1806년에 나폴레옹은 이 도시를 바이에른 왕국에 넘겨주었다.

인스브루크는 알프스 중턱에 위치하여 항상 기온이 선선할 뿐만 아니라 남쪽으로 샤를리제, 북쪽으로 노르트케테산(2334m) 등 일 년 내내 만년설이 쌓여 있는 지리적 이점으로 1964년과 1976년 두 차례나 동계올림픽을 치렀는데, 그 이후 한여름에도 스키를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세계 각지에서 사계절 수많은 스키어와 패러 글라이더들이 찾아온다. 하지만, 워낙 작은 도시여서 직항노선이 없고, 대부분 독일 프랑크푸르트나 뮌헨,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공항 등을 거치거나 열차로 독일의 뮌헨(200㎞),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180㎞), 이탈리아 밀라노 등지에서 찾아온다. 육로와 철도의 교차점인 이곳은 식품 가공업과 금속세공업, 그리고 직물·신발·맥주·음악 기기 제조업 등이 발달했다.

개선문.
개선문.
안나 기념탑.
안나 기념탑.
안나 기념탑의 성모 마리아.
안나 기념탑의 성모 마리아.

산악인과 여행객의 발길이 그치지 않아서 관광 수입만으로도 주정부 재정이 넉넉하다고 하는데, 사실 산악 스포츠를 즐기려고 찾지 않는다면 스위스·독일·이탈리아로 가는 경유지에 불과해서 하루 동안 합스부르크가의 유적지를 돌아보는 것으로 충분한 곳이다. 그러나 만일 2~3일 이상 머문다면, ‘인스브루크 투어 패스’를 사는 것이 좋다. 트램 등 대중교통은 물론 케이블카·등산 열차 등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데, 패스는 1일권 19유로, 2일권 34유로, 3일권은 39유로 등 다양하며, 박물관 입장도 가능하다.

우리 가족은 로마에 도착해서 보름간 이탈리아 여행을 마치고, 북진하면서 인스브루크를 첫 도착지로 삼았다. 두 번째는 유럽의 허브 공항인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남향하면서 첫 여행 때 둘러보지 못한 도시를 여행했지만, 유명한 도시는 겹치기 마련이었다. 또, 동유럽 여행을 나섰을 때는 유일한 프라하 직항노선인 국적기를 티케팅하지 못해서 또다시 프랑크푸르트로 가서 체코, 헝가리, 슬로바키아, 폴란드를 여행하는 길에 오스트리아를 지나면서 세 차례 여행하게 되었다.

마리아 테레지아.
마리아 테레지아.
시청 시계탑.
시청 시계탑.
마리아 테리사아 여제.
마리아 테리사아 여제.

인스브루크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오염되지 않은 빙하수를 상수도로 공급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유럽 대부분의 도시가 석회암 지대여서 상수도를 마시지 못하고 허드렛물로만 사용하고 있는데, 인스브루크는 노르트케네산의 만년설이 녹아 흐르는 빙하수를 직접 상수도로 공급하고 있어서 호텔에서도 수도꼭지를 틀어 빙하수를 그대로 마실 수 있었다. 또, 이렇게 맑고 깨끗한 빙하수를 원료로 흑맥주, 생맥주, 그리고 고량주보다 더 독한 정제된 맥주 등 여러 종류의 맥주를 생산하고 있는 흑맥주의 본고장이다. 게다가 시내 중심을 흐르는 인강은 알프스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빙하수로서 어른의 팔뚝만한 송어들이 떼를 지어 노는 모습은 인스브루크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송어는 한 사람이 하루에 2마리까지만 잡을 수 있다고 하는데, 아마도 우리나라 같으면 매일 송어를 잡아서 금방 씨가 말랐을 텐데도 시민들의 마음이 엿보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의 유산이 많이 남아있는 인스브루크는 워낙 좁은 산간 도시여서 기차역에서 중심지까지 도보로 10분 안팎인데, 인강을 사이로 협곡과 산기슭에 중세의 집들과 상가들이 늘어서 있다. 기차역에서 구시가지까지 쭉 뻗은 마리아 테레지아(Maria Theresia: 1740~1780) 거리가 가장 번화가이다.(마리아 테레지아에 대하여는 2023. 10. 11. 오스트리아 개요 참조)

1706년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때 오스트리아가 바이에른을 격퇴한 기념으로 세운 개선문(Triumphal Arch)과 안나 기념탑(St. Anna's Column)이 있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아들 4명, 딸 12명 등 모두 16명의 자녀를 낳았는데, 안나를 제외한 딸 11명을 모두 유럽 각국의 군주들과 정략 결혼시켜서 합스부르크 왕가의 세력을 크게 넓히고 역사상 가장 넓은 식민지를 보유하게 됐다. 개선문은 당초 아들 레오폴드의 결혼을 기념하여 세우다가 1765년 남편 프란츠 슈테판 황제가 죽자, 개선문의 북쪽에는 '죽음과 슬픔'을, 남쪽에는 '삶과 행복을' 주제로 한 조각을 각각 새겼다. 또, 안나 기념탑은 마리아 테레지아의 둘째 딸로서 평생을 수녀로 산 안나(Anna: 1738~1789)를 기념하여 13m 높이의 탑을 세웠는데, 안나 기념탑 꼭대기에는 성모상이 있다. 프랑스 루이 16세와 결혼 후 지나친 사치와 무분별한 생활로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의 원인이 되기도 했던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는 마리아 테레지아의 막내딸이다. 남편 프란츠 1세가 죽고 아들 요제프 2세가 황제로 즉위하자, 마리아 테레지아는 섭정하고자 하다가 요제프 2세와 사사건건 갈등을 빚었다. <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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