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주심 1부는 26일 서산 부석사가 국가를 상대로 낸 유체동산 인도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심의 원고 패소 판결을 확정했다. 여기서 유체동산은 절도범이 일본에서 훔친 서산 부석사 관음상이고 원고 패소는 관음상의 소유권이 일본에 있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부석사 관음상을 그예 일본에 빼앗긴 것이다. 대법원이 일본의 손을 들어준 것은 타인의 물건이더라도 일정 기간 문제없이 점유했다면 소유권이 넘어간 것으로 보는 취득 시효 법리에 근거했다고 한다. 법대로는 그런지 몰라도 법감정까진 이해시키기 어려운 판결이 아닐 수 없다.

대법원은 옛 섭외사법 법리에 따라 취득 시효가 만료하는 시점에 물건이 소재한 곳의 법을 적용하는 게 맞다고 봤다. 따라서 ‘20년간 소유의 의사로 평온 및 공연하게 타인의 물건을 점유하는 자는 그 소유권을 취득한다’고 정한 일본의 옛 민법을 적용했다. 쓰시마 사찰 간논지가 법인격을 취득한 것은 1953년 1월 26일이고 2012년 10월 6일경 절도범에 의해 불상이 절취될 때까지 계속해서 점유하고 있었으니 그 법대로라면 다툼의 소지도 없이 간논지 소유가 맞을 수밖에 없다.

애초에 약탈로 인한 반출이었다. 절도라는 방법론은 두둔할 순 없지만, 빼앗긴 불상을 되찾아 온 것 아닌가. 훔친 물건일지언정 일정 기간 문제없이 점유했다면 소유권이 넘어간 것으로 본다니 법에서 제국주의의 향기가 난다. 불상이 고려시대 왜구에 약탈당해 불법으로 반출됐을 개연성이 있다거나 우리나라 문화재라는 사정만으로 이러한 취득 시효 법리를 깰 수 없다고 본 대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고는 못하겠다.

부석사 관음상은 불상 중 유일하게 유산의 내력을 알리는 불상 결연문이 존재한다. 그런데도 650년 만의 귀향이 무산됐다. 1995년 채택된 ‘도난 또는 불법 반출된 문화재의 반환에 관한 사법통일국제연구소 협약’ 5조에는 협약 국가 간에 취득 시효 여부와 관계없이 불법 반출 문화재의 반환을 요청할 수 있다고 하는데 취득 시효를 존중한 법 앞에선 무용지물인가 보다.

기상천외한 취득 시효 20년을 적용하면 법적으론 빼앗긴 문화재를 돌려받을 길이 없다는 소리여서 상실감이 더 크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따르면 지난 1월 기준 22만 9655점의 우리 문화재가 일본, 미국, 영국 등 27개국에서 서러운 타국살이 중이다. 2012년 재단 설립 이후 환수한 문화재는 기껏해야 1204건 2482점 정도다.

조계종은 이번 판결에 대해 “국제법적 이념과 국제 규약의 취지에 정면으로 반대하는 것”이라며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악법도 법이라는 격언이 오늘은 마뜩잖다. 상고심은 법의 끝판이다. 환지본처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관음상을 포함한 빼앗긴 조상의 얼이 우리에게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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