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인구 10만명당 보행 중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2.1명으로 OECD 평균(0.8명) 대비 약 2.6배에 이른다. 29개국 중 28위, 최하위다. 승용차 위주의 교통 정책을 고수하는 한 보행자의 안전할 권리는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음을 실증한다. 교통안전 패러다임이 뒤늦게나마 보행자 중심으로 바뀌고 있는 건 그래서 매우 바람직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시작이라 갈 길이 멀고 할 일이 많다. 보행자 안전 인식 또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지난해 8월 제1차 국가보행안전 및 편의증진기본계획을 수립했다. 보행자 중심의 교통안전 정책으로 눈을 돌리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이다. 비전과 목표를 설정한 뒤 속도전을 펼치고 있다는 점은 가상하다. 보행자가 차량 통행에 우선하는 보행자 우선도로 도입, 노인보호구역 지정 대상 확대, 운전자의 횡단보도 앞 일시 정지 의무 강화, 우회전 신호등 법정 시설로 도입 등이 모두 지난해 법제화를 통해 시행에 들어갔다.

정부의 실행계획 수립에 따라 지역의 보행환경도 차츰 개선되고 있다. 5일 기준 대전 내 보행자 우선도로는 4곳이며 우회전 시 교통사고가 우려되는 3개 교차로에는 일시 정지 신호등을 설치했다. 이 같은 노력 덕분에 올 1∼5월 교차로 우회전 교통사고는 201건으로 전년 동기 253건 대비 20.6% 감소했다고 한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은 있기 마련이다.

승용차 편의 정책에 익숙한 터라 운전자의 저항이 없었던 건 아니나 시대적 요구와 여론이 보행자의 안전할 권리를 옹호하는 상황은 제도 정착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운전자가 각별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보행자의 안전을 지킬 수 있다는 상식이 보편적 인식으로 확산하는 데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면 보행자의 안전 인식에 있어서 개선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아찔한 장면은 안전불감증으로 통칭할 수 있다. 사람은 차를 전혀 조심할 필요가 없다는 듯한 행동들, 이를테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아무렇게나 길을 걷는 ‘스몸비’, 한술 더 떠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스마트폰만 응시하는 ‘블좀족’이 차도를 넘나들며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2021년 기준 보행자 교통사고 사망자 1018명 중 26.6%인 271명이 무단횡단을 하다 비명횡사했다는 언짢은 통계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제1차 기본계획을 수립하며 인구 10만명당 보행 중 교통사고 사망자 1.1명을 목표로 세우고 어린이·노인보호구역 3000개소 및 보행자 교통사고 위험도로 1000개소 정비 등을 추진키로 했다. 근본적으로는 도로설계단계부터 보행자 친화적이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교통안전 문화 정착을 위한 인식이다. 운전자도 보행자요, 보행자도 운전자일 수 있으니 답은 역지사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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