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호오백리길 마지막 21구간 <현암사 삿갓봉 장승공원> 그 끝에서, 새로운 출발의 서막을 연다

 

대청호오백리길 21구간 구룡산 삿갓봉 정상에서 마주한 대청호반의 영롱한 모습

 

대청호오백리길 <21 구간> 현암사 삿갓봉 장승공원

#. 프롤로그

물은 생명의 근원이다. 그래서 충청도에 식수를 제공하는 대청호는 충청의 젖줄이다. 병풍처럼 높고 길게 늘어선 산에 둘러싸인 대청호는 풍광까지 아름다우니 충청의 모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발길 닿는 곳마다 마주하는 절경 앞에선 한량이 부럽지 않다.

2015년 ‘대청호오백리길’에 이어 지난해 ‘마실 가듯 1박 2일’을 통해 대청호반의 아름다움을 소개한 금강일보는 올해 ‘대청호오백리길, 그곳에 가면…’을 통해 대청호의 또 다른 매력을 소개한다. 2015년과 지난해에 비해 좀 더 미시적으로 대청호 주변의 관광자원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지역민과 대청호의 거리를 좁힐 수 있도록 이야기를 풀어간다.

대청호라는 거대한 주제를 놓고 걱정이 앞서지만 대청호가 간직한 비밀에 다가서는 것에 대한 기대감이 더 크다. 첫 경험은 두렵지만 황홀한 것처럼 말이다. 주된 이야기의 소재는 풍경이 될 수도,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자칫 지나칠 수 있는 꽃 한 송이와 풀 한 포기 작은 것까지 소중한 마음으로 들여다보고자 한다.

대청호 시리즈의 궁극적인 목표는 충청을 대표하는 문화·관광의 키워드 혹은 아이콘으로 대청호를 키워내는 거다. 지역의 소중한 수자원이라는 의미에서 한 발 더 나가 또 다른 생명력을 불어넣는 일이다.

‘대청호오백리길, 그곳에 가면…’이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대청호의 콘텐츠를 좀 더 젊은 감각으로 찾아내고 이를 지역민과 공유하고자 한다. 가족 혹은 연인이 대청호반에서 경험하고 느낄 수 있는 보다 많은 이야기를 보따리에 담아 대청호의 매력을 한층 더 키우는 데 조금이나마 역할을 하고자 한다.

‘대청호오백리길, 그곳에 가면…’의 지면은 항상 열려 있다. 감각세포를 깨우는 대청호의 매력요소는 무궁무진하고 이 자극 요소들을 금강일보는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고픈 마음가짐을 갖고 있다. 우리가 보지 못한 것, 당신은 볼 수도 있으니 말이다.

 

대청호오백리길 21구간 구룡산 삿갓봉 정상에 오르면 '순백의 파노라마'같은 인생 인증샷을 남길 수 있다.

 

 #. 면사포 쓴 신부처럼 우아하게

아름다운 풍경에 새하얀 눈이 더해지면 절경이 된다. ‘대청호오백리길, 그곳에 가면…’의 첫 이야기를 다룰 대청호를 낀 구룡산은 눈과 함께였고 기대를 충분히 충족시켰다. 엄홍길 산악대장은 말했다. 산은 정복하는 곳이 아니라고…. 하지만 구룡산에 올라 대청호를 바라보니 면사포 속의 신부처럼 아름답고 신비했다. 아니 경이로웠다. 이 순간만큼은 엄 대장이 틀렸다고 확신했다.

 

절경 휘감은 암자 현암사
날선 추위도 거기까지 가는 수고도
눈 녹듯 사르르 속세 번뇌도 '훌훌'

 

◆구룡산 바위 끝 아슬아슬 현암사, 그리고 석탑
대청호휴게소에서 대청댐을 넘어 현암사를 바라보니 구름에 앉은 듯 절경을 자랑했다. 신비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 신비감을 눈으로 확인하고자 현암사로 향했다.

현암사로 오르는 등산로에서 문의교 방향으로 약 200m 더 가면 주차장이 있어 편하게 주차를 완료할 수 있다. 현암사로 향하는 등산로에 서면 하이힐처럼 경사가 제법 높은 철제 계단이 등산객을 맞는다. 지금이야 현암사에 오르는 길은 편해졌지만 그 이전엔 현암사에 오르는 길이 고행이었다.

 

절경 휘감은 현암사.

 

동화 ‘북풍이 준 선물’에서 눈보라를 뚫고 북풍을 찾아간 주인공 마르틴의 마음이 이랬을까. 눈보라가 매섭게 불었지만 마음을 다잡고 현암사로 향하는 첫 발걸음을 뗐다.

경사는 제법 높아보였지만 아기가 첫걸음마를 하는 것처럼 천천히 오르니 숨은 차지 않았다. 얼마 안 가 철제 계단은 금세 사라지고 본격적인 등산이 시작된다.

등산로는 얼었고 눈이 쌓여 발 디딜 곳을 찾지 못하기 일쑤였지만 나무가 없고 아무도 밟지 않은 곳으로 온천물에 발을 담그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또 천천히 발걸음 옮겼다. 결혼식에서 신랑에게 천천히 입장하는 신부처럼 걸어도 15분이면 충분하다. 바위 끝에 매달린 듯 산기슭에 자리한 현암사까지 말이다.

현암사의 창건 시기와 창건주에 대해서는 남아 있는 기록이 없다. 다만 이 곳에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백제 전지왕 때 달솔해충(達率解忠)의 발원으로 고구려의 스님인 청원선경(淸遠仙境)대사가 창건했고 원효대사가 중창했다고 한다.

처음엔 견불사(見佛寺), 혹은 현사(懸寺)로 불렸지만 나중에 현사로 바뀌었고 바위 끝에 위치했다 해서 현암사가 됐다고 한다.

 

순백 설경, 눈꽃과 하나된 5층석탑
고독한 수행자처럼 홀로 서있는 자태
영험한 기운 앞에선 '소원을 말해봐'

 

현암사 인근에 자리잡은 5층석탑. 영엄한 기운이 느껴지는 이 곳에서 '소원을 말해봐'

 

현암사 앞에 서니 하얀 눈과 중간에 살짝 보이는 초록의 침엽수, 누군가가 소원을 빈 돌탑, 병풍처럼 자리잡은 낮은 산세, 그리고 현암사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진 모습은 아기가 본능적으로 옹알이를 하는 것처럼 감탄사를 절로 자아내게 한다.

비록 웅장하진 않지만 설경 속 현암사는 보는이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마치 예쁜 사람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면서 그래도 계속 보고 싶은, 그런 마음을 들게 했다. 현암사를 등지면 감탄은 더욱 배가 된다. 볼록 튀어나온 바위 끝자락에 위치한 만큼 대청호가 더욱 크게 보여서다. 눈 때문에 가시거리는 평소보다 좋지 않지만 운무에 쌓인 대청호의 그 웅장함을 가릴 순 없었다.

감탄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현암사 오른쪽으로 80m를 가면 5층 석탑이 기다린다. 누구나가 상상한 정석대로의 석탑처럼 생겼지만 평범해보이진 않는다.

눈 때문에 입은 하얀 소복보다도 하얘서 그런가, 하얀 설경 속에서 석탑은 단연코 눈에 띈다. 또 석탑이 자리한 터 자체가 석탑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터는 넓진 않지만 석탑만을 위한 자리여서 혼자 우뚝 솟아 5층보다 더 커다랗게 보인다.

심지어 영험해 보인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인지 오다가다 등산객이 꽤 소원을 빌었나 보다. 누군가 갖다 놓은 조형물을 살피니 ‘어떤 소원을 빌었을까’하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괜히 석탑을 한 바퀴 돌아보며 지친 발걸음에 휴식을 준다. 석탑을 충분히 느낀 뒤 발걸음을 옮겨본다.

 

주변을 둘러보면 대청호가 구룡산을 포위한 것처럼 사방팔방이 대청호다. 새해 '첫 마음' 다짐하는 핫 플레이스로도 제격이다.

 

#. 순백의 파노라마 극장

◆구룡산이 쓴 삿갓… 삿갓봉
석탑에서 구룡산까지의 거리는 약 700m. 현암사에서 곧장 출발해도 한 시간 남짓이면 충분히 삿갓봉에 오를 수 있다. 비록 눈 때문에 산책로는 보이지도 않았지만 시장에서 엄마를 잃어버릴까 졸졸 뒤쫓던 아이처럼 정상을 쫓아 천천히 발을 뗀다.

지쳐 어딘가 앉고 싶을 때쯤 이정표가 나타나 친절하게도 방향을 제시하며 격려한다. 하지만 이정표가 친절히 안내를 해줘도 산세가 높지 않다 보니 고개를 들어 두리번거리면 시야가 닿는 곳마다 다 목적지처럼 보인다. 석탑에서 50분 정도 지났을까.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을 준비하는 목각이 기다린다. 구룡산 정상이다.

남쪽의 청와대인 청남대(靑南臺)가 제법 가까이 보일 정도로 시원하게 시야가 탁 트인다. 구룡산은 대통령 옛 휴양시설인 청남대가 내려다보여 군사정권 무장군인이 정상에서 사주경계를 섰던 곳으로 외부인의 출입을 금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구룡산은 접근이 어려워 외부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뛰어난 절경을 볼 수 있는 곳이라고만 입에서 입으로만 전해지는, 아는 사람만 아는 곳이었다고 한다.

 

현암사서 한 시간 남짓의 삿갓봉
사방팔방 눈꽃의 대청호 한눈에
옛 대통령 휴양시설 청남대 눈길

 

주변을 둘러보면 대청호가 구룡산을 포위한 것처럼 사방팔방이 대청호다. 눈을 맞은 대청호는 군사정권시절 무장군인을 통해 일반인의 구룡산 접근을 왜 막았는지 추측될 정도로 뛰어나다.

절경을 독점한 권력자를 비난하고 싶지 않았다. 그 누구도 권력만 있다면 이곳 절경을 독점하고 싶었으리라…. 누구에게도 주고 싶지 않을 그 풍경을 오랫동안 눈에 각인시키고 또 바라봤다. 눈을 조금 북쪽으로 돌리면 또 다른 대청호의 모습이 보인다.

낙엽을 쓸고 오는 가을을 거슬러 아쉬움이 남은 듯한 나뭇잎들이 가까스로 나무에 매달려 대청호를 꾸며준다. 하얀 눈과 초록의 침엽수라는 배경에 더해 아직 나뭇가지에 살아남은 갈색의 마른 나뭇잎이 고독함이란 먹먹한 느낌을 준다.

그 고독함을 날려버리듯 대청호가 칼바람을 불어 두 귓불을 강하게 때린다. 평소 같으면 양손을 귀로 올려 칼바람을 피하고자 했겠지만 이 풍경과 함께 있으면 오히려 시원하게 느낀다. 아니 그것을 넘어서 대청호의 애무로밖에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칼바람 자체가 흥분된다.

하산에 앞서 아쉬운 마음에 카메라를 든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야 못하겠지만 제법 카메라에 절경이 담긴다. 그러나 느꼈던 감동은 사진에 없다. 이깟 카메라에 대청호를 담으려던 의도 자체가 불순한 것처럼 보일 정도로의 벅찬 그 감동 말이다.

 

온세상 매부리코를 모아놓은 장승공원. 2004년 3월 5일 대전에 폭설이 내렸을 때 만들어졌다. 당시 장승공원 터의 나무들도 큰 피해를 입었고 대부분의 나무가 죽어 나갔다고. 그래서 나무의 혼을 달래고자 마을주민들이 힘을 모아 죽은 나무로 500여 개의 장승을 만들었다.

 

#. 어머, 부끄러워

◆온 세상 매부리코를 모은 장승공원
삿갓봉에서 하산하기 시작하면 재밌는 광경이 펼쳐진다. 장승이 양쪽으로 쭉 늘어선 모습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장승이 모두 남자다. 장승공원이 위치한 이곳은 과거부터 음기가 많았다고 전해진 곳으로 2004년 3월 5일 대전에 폭설이 내렸을 때 만들어졌다.

당시 장승공원 터의 나무들도 큰 피해를 입었고 대부분의 나무가 죽어 나갔다고. 그래서 나무의 혼을 달래고자 마을주민들이 힘을 모아 죽은 나무로 500여 개의 장승을 만들었다. 단 일반 장승이 아니고 여혈(女血)이 많았던 곳인 만큼 혈기를 안정화시키고자 양기가 가득한 모양으로 조각했단다.

 

삿갓봉 하산코스서 만난 장승공원
양기 가득 익살스러운 모습 과시
장승 코 만지면 득남한단 전설도 ...

 

해가 지고 달이 뜬 밤이 되면 처녀귀신이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공포감을 들게 할 정도의 음기가 넘치는 이곳의 장승은 하나같이 코가 매우 크다. 흡사 코끼리 같은 모습이다.

아이를 낳지 못하면 제주도의 돌하르방 코를 만지라고 전해지는데 이곳 장승의 코를 만져도 효과가 나오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등산객도 이 같은 생각을 했는지 하나같이 장승 코가 많이 닳았다. 손때가 많이 탄 곳은 코뿐만이 아니다.

장승의 머리는 모두 남성의 성기 모양으로 통일됐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사람들이 한두 번씩, 아니 네다섯 번 이상은 만진 듯 닳고 닳아 헤졌다. 성기 모양 머리에 상투까지 성기 모양으로 튼 장승은 아예 나무가 벗겨질 정도다.

양기 가득한 장승이어서 모두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지 않을까하지만 익살스러운 표정의 장승도 제법 보인다. 나무로 깎아서인지 치석처럼 보이는 누런 때를 제거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입을 크게 벌리고 웃는 장승부터 손잡고 치과로 달려가 교정을 시켜주고 싶은 자유로운 치열을 보이며 웃는 장승까지 다양하다.

스산한 음기와 그 음기를 다루기 위한 양기가 치열하게 싸우는 현장을 뒤로 하고 현암사 주차장으로 향한다.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은 도보로 30~40분 정도로 자칫 심심할 수 있지만 할머니가 버선발로 뛰어나와 안아줄 것 같은 허름한 집과 그 집을 지키는 큰 개, 땔감으로 쓸 장작들을 통해 작은 평온함을 느끼면서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의 심심함과 대청호의 웅장함을 느꼈던 후의 허무함을 달랜다. 대청호, 그곳에 가면 또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면서 말이다.

글·사진=김현호 기자 khh0303@ggilbo.com

총평    ★★★★☆
인근에 주차장이 있어 접근성이 좋고 등산로도 쉬운 편이어서 누구라도 쉽게 오를 수 있다. 장승공원까지 이어지는 산행 구간 역시 두세 시간이면 충분해 운동 삼아 가기 좋고 크게 어려운 구간도 없다.

삿갓봉은 해발 400m가 채 안 됨에도 그 고도 이상에서 바라보는 절경을 제공한다. 현암사에선 5층석탑을, 삿갓봉 정상에선 청남대 방향을 보고 사진을 찍으면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등산로 중간에 돌탑 등 사진 찍을 포인트도 많다. 특히 현암사와 삿갓봉에선 일출을 볼 수 있어 날씨를 확인하고 가면 절경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다.

다만 일부 구간은 경사가 제법 있어 겁이 많은 사람은 쉽게 발을 떼기 힘들어 나무 사이에 매단 줄을 잡아야 하는 점은 아쉽다. 장승공원의 경우 재밌고 익살스러운 장승을 많이 볼 수 있지만 장승공원 자체의 규모는 크지 않아 오랜 시간을 즐기기엔 무리다.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