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2>

 

(지난주에 이어서) 10세기엔 후베르르투스라는 성인이 있었는데 그는 사냥을 나섰다가 광채 나는 사슴뿔 위에 십자가를 가진 영상을 보고선 회심해서 성인이 되었다고 한다.

그 후 그는 개의 수호성인이자 모든 동물들 그리고 미쳐 날뛰는 개의 조력자로서의 성인 몫까지 하고 있다. 그의 역할은 하나 더 있는데 바로 푸줏간의 수호성인이기도 하다. 후에 그의 이름을 딴 후베르투스라는 검은개를 사육하였는데 이 소식을 접한 프랑스왕이 6마리의 개를 아주 비싼 값으로 사갔다고 한다. 11세기의 ‘그레이하운드’는 값이 노예 한 사람 값으로 팔릴 정도였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인간과 개 값이 동일했다니 이것은 좀 비극이다.

1016년 덴마크왕인 크누트가 왕이 소유한 숲의 10마일 영역 밖의 모든 개들의 다리를 부러뜨리라는 훈령도 있었다. 자기 숲의 동물 보호차원이란다. 작고 위험성이 없는 개는 제외였다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11세기의 빌헬름이라는 영국왕은 귀족의 영역에 속하지 않은 모든 사냥개들의 이빨 3개를 빼게 한 적도 있단다. 달리는 사냥개의 속도가 느려지게 한다는 의미라는데, 그럼 오직 자기 숲 보호차원인가? 아무튼 이유가 불분명하다. 아니면 역사적으로 이런 사실도 있었다는 걸 알리는 걸까? 아무튼 당시 왕의 한 마디에 개의 생이빨이 뽑혀졌다니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봉건 영주들이 사냥을 좋아하게 되자 생기는 문제점도 있었다. 이들이 사냥으로 행차를 하게 되면 수도원 원장들이 애를 먹기 시작했다. 수도원이 주로 숲 부근에 있었으니 그랬나 보다. 그래도 만약에 수도원 원장이 갑이었고 귀족이 을이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터인데, 이들은 갑인 귀족들에게 모든 것을 생으로 조달해 주어야만 했다. 귀족들이 사냥 구실로 장기간 머물면 수도원의 분위기도 흐트러지고 수행원까지 뒷바라지를 하려면 보통 일은 아니었을 듯하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1418년 바이에른 지방에서는 규정이 내려졌다. 한 귀족이 이런 사냥 행차를 할 때는 3명 이상의 귀족 동행은 안 된다. 10명의 종들만 동행이 허락된다. 5마리의 말만을 동행하라! 25마리의 사냥개 동행만 된다는 규정이었다. 이들이 사냥개 25마리만 먹이고 관리하는 데 엄청 에너지가 들 터인데 귀족들과 그의 동행인들까지 음식, 숙박, 말 관리까지 정말 갑이라는 이유로 을에게 지나친 요청을 하는 듯하다. 수도원 측에서는 이런 귀족 한 사람뿐이겠는가? 동서남북에서 이렇게 찾아와 이들의 사냥놀이에 뒤치다꺼리를 해야만 했을 것이니 얼마나 고달팠을까? 아이쿠! 소리가 절로 나온다.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