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역사' 그 자체도 관광자원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2017~2018 관광100선’에서 충청권은 10곳이 포함됐다. 이 중 대전의 명소는 장태산 자연휴양림과 계족산 황톳길 등 두 곳이 이름을 올렸다. 물론 지역 관광자원이 부족한 건 아니다. 특히 100여 년 전 도시의 형태를 갖추게 된 대전은 도시 곳곳 문화관광 자원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을 풍부한 자원이 있음에도 누군가에 대전을 소개할 때 떠오르는 곳이 생각나지 않는 건 사람을 끌어당길 만한 유인력, 스토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은 지역 관광산업에 있어 새로운 기회로 작용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편집자

<글 싣는 순서>
1. 관광자원과 후한 인심, 관광거점의 조건<9월 11일자 기사보기>
2. 관광 활성화를 위한 선택 ‘다크 투어리즘’
3. 근현대 100년 역사가 잠든 기회의 땅, 대전
 

식민 잔재를 청산한다는 이유로 경복궁을 가로막고 있던 조선총독부 청사를 허문 일이 불과 22년 전 일인데 2017년 오늘에 와선 오히려 이 같은 잔재를 문화재로 지정해 관광 자원화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재난이나 역사적으로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던 곳을 찾아가 체험함으로써 반성과 교훈을 얻는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이 새로운 관광 자원화 아이템으로 떠오른 거다.

다크 투어리즘은 이미 오래 전부터 전개돼 왔다. 일찍부터 로마의 검투사 경기장, 순교지 등은 죽음과 관련한 관광목적지가 됐고 홀로코스트 학살로 대표되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나 9·11 테러가 발생한 그라운드 제로, 중국의 난징대학살 기념관, 일본 히로시마 평화 기념공원에 이르기까지 세계 곳곳에 죽음과 재난, 아픈 역사와 관련된 장소들이 최근 들어 새로운 관광명소로 주목받고 있다. 국내에서도 초창기엔 다소 부정적 시선이 많았지만 요즘은 오히려 지자체가 나서 이 같은 다크 투어리즘 개발에 동참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다크 투어리즘에 회의적 시선을 보낸 건 근대문화유산은 일제가 남긴 잔재라는 인식이 강한 탓이다. 특히 일본의 문화재 보호법을 답습해 오늘에 이르는 국내 문화유산체계는 종종 난개발에 대한 규제행정으로 취급당했고 근대 건축물의 경우에도 개발 논리에 휩쓸려 쉽게 철거 대상이 되곤했다. 어두운 과거사는 애써 지우거나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본 거다. 1995년 철거된 조선총독부 청사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지금은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근대 건축물들이 근대문화유산으로 자리잡으면서 관광산업이라는 큰 틀에서 건축물과 공간 복원을 통한 관광 자원화에 방점이 찍힌 인식 변화가 이뤄졌다. 대표적인 곳이 서대문형무소다. 일제강점기 독립을 위해 항거하다 투옥된 애국지사들이 겪은 모진 고문과 취조의 현장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어 민족 수난사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이 밖에도 2014년 30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의 현장인 전남 목포 신항과 팽목항 일대, 독립기념관, 제주 4·3평화공원, 거제포로수용소, 5·18 민주묘지 등 국내에도 과거사·재난과 관련한 장소들이 다크 투어리즘 코스로 떠오르고 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중국의 사드 보복 등으로 인한 관광산업 침체가 장기화된 상황에서 다크 투어리즘은 관광 다변화, 신수요 창출이라는 측면에서 새로운 기회로 떠오르고 있다. 복합 관광의 활성화를 통해 신규 관광객을 유치하고 관광의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문화계 전문가는 “관광 콘텐츠 확대 차원에서 다크 투어리즘이 많은 가능성을 지닌 만큼 관광코스 재구성을 바탕으로 지역별 특색에 맞게 맞춤형 관광자원으로 활성화하는 전략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다만 성급한 개발로 인해 자칫 잘못된 역사관을 심어줄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문화전문가 김기옥 씨는“다크 투어리즘에 대해 무분별하게 맹목하는 현상은 조심해야 한다. 역사를 주제로 삼고 있기 때문에 철저한 고증이 있어야 하고 관광 상품 개발 과정에서 좀 더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 철저한 고증이 전제된다면 다크 투어리즘은 지역 관광 활성화를 위한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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