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임덕(권력 누수)의 대상마저 없는 대전시가 무정부 상태로 빠져드는 건 아닐까?’

갑작스러운 시장(市長) 공백 사태로 대전시 공직자들의 기강 해이가 우려되는 가운데, 시의회의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이 같은 우려가 단순한 기우(杞憂)가 아님을 드러내는 장면이 연출돼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26일 대전시의회에 따르면 복지환경위원회 소속 정기현 의원(더불어민주당·유성구3)은 지난 23일 시 환경녹지국 예산안 심의 중 유승병 국장에게 장기미집행 도시공원인 매봉공원 민간특례사업에 관한 질의를 하면서 지난달 시에서 내놓은 환경영향평가서에 대해 금강유역환경청의 검토 의견서를 받았는지 물었고, 유 국장은 “아직 받지 못했다”라고 답변했다.

그런데 잠시 뒤 담당 공무원이 귓속말을 하자 유 국장은 “구두로 받았다”라고 했고, 정 의원이 재차 질문하자 “문서로 받았다. 잘못 답변했다”라고 했다.

이에 정 의원이 “이 사업은 주민들이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사안으로 늘 챙겨야 할 현안이다. (내 질의에) 시간만 모면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은데 의회를 그렇게 (우습게) 보지 말라. (유 국장에게) 실망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이는 정 의원이 반대하는 월평공원 민간특레사업에 대한 시 도시공원위원회의 조건부 가결, 정 의원이 추진한 폐기물 관리 조례 개정(대전지역 음식물쓰레기에서 발생하는 음폐수를 타 지역 업체에서 처리할 경우 금고동 바이오에너지센터로의 반입을 제한)에 대해 시가 재의를 요구한 것 등과 관련해 행정사무감사 때부터 유 국장의 답변 태도가 무성의하고 불손했음을 지칭한 것이다. <본보 11월 12일자 4면 등 보도>

그러자 유 국장은 “실망하십쇼”라며 ‘할 테면 해보라’는 식의 예상외 발언을 했고, 급격히 분위기가 냉랭해졌다. 정 의원과 유 국장이 고성을 주고받으며 회의장 공기가 험악해지자 박희진 복지환경위원장이 정회를 선언했다.

과연 시장이 자리를 든든히 지키고 있는 정상적인 시정 하에서 이 같은 돌발 상황이 벌어졌을지 의문스러운 대목으로, 시의회는 유 국장에게 공개 사과와 함께 출석 정지를 명령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 의원은 “예산안 심의를 하면서 준비 부족을 지적하는 의원을 향해 간부공무원이 막말하는 경우가 어디에 있느냐. 시장이 공석인 때일수록 간부공무원들이 업무를 챙겨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다”라고 개탄했고, 박 위원장도 “유 국장의 발언을 그냥 넘기지 않을 것이다. 의회 차원에서 처리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라고 했다.

유 국장은 정 의원에게 사과의 뜻을 전했다. 하지만 정 의원은 26일 본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금강유역환경청의 검토 의견서를 일주일 전에 받은 것으로 확인됐는데, 중차대한 현안과 관련된 기관 간의 행정행위를 국장이 모르고 있었다는 것도 문제이고, 만약 알고도 답변을 그렇게 했다면 의회를 기만한 것”이라며 “시장도 공석인 상황에 실·국장들이 원만하게 의회와 협의하는 모습을 보여드려야 하는데 시민들에게 집행부와 의회 간의 불협화음이 표출돼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유 국장은 “금강유역환경청의 검토 의견서에 대해 회신 여부를 보고받지 못한 상태에서 답변을 하다 그런 상황이 벌어졌다. ‘실망하십쇼’라는 발언을 한 이면에는 여러 배경이 있는데, 일일이 말하고 싶지 않다”라며 환경녹지국과 연계된 각종 현안을 놓고 정 의원에게 적지 않은 불만을 갖고 있음을 드러냈다.

한편, 김경훈 의장은 24일 시 실·국장들을 소집해 시장이 공백 사태를 맞아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한 데 유감의 뜻을 표하고, 공직 기강을 다시 잡아줄 것으로 당부했다.

최 일 기자 choil@ggilbo.com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