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눈물과 죽음 같은 고독

금강일보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효와 사랑 이야기를 담은 임석원의 자전적 에세이 ‘나는 내 아내가 너무 좋다’를 온라인판을 통해 연재합니다. ☞본보 2017년 8월 9일자 10면 보도

1955년부터 1963년 사이에 출생한 우리나라 베이비붐 세대는 한국전쟁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격변의 시대를 관통하며 살아온 세대로, 임석원의 에세이는 그 시대에 태어나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도 많았겠지만 자신을 위해서는 한 가지도 해 보지 못한 채 오직 가족만을 위해 굳세게 살아온 한 남자의 자전적 이야기이자, 곁에서 묵묵히 좋은 동반자가 되어 준 아내에 대한 절절한 고마움을 전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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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눈물과 죽음 같은 고독

늘 그렇듯이 이상과 현실은 엄청나게 다르다. 아내는 남편의 말에 따랐지만 남편이 해외로 떠나고 아내가 맞닥뜨린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온통 시댁 식구들만 있는 집에서 부모님과 동생들까지 여섯 식구 뒤치다꺼리는 보통일이 아니었다.

다음은 내가 싱가포르로 떠난 후 아내가 쓴 첫 번째 편지다. 3월 9일 내가 쓴 첫 번째 편지를 받은 날 3월 18일에 썼다. 첫 편지에서부터 내가 미처 다 헤아리지 못했던 아내의 심중이 절절하게 묻어났다.

사랑하는 나의 당신에게

공항에서 당신이 떠나는 모습을 눈물이 나와 차마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당신의 시선을 피하며 눈물을 삼키느라 잠시 허공을 쳐다보는 동안 당신은 출국장 문으로 사라지고. 당신이 사라진 문을 멍하니 바라보던 내 가슴은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는 아픔이었답니다.

세상에 의지할 데 없는 고아가 된 것처럼 그냥 하늘이 캄캄하게 무너지는 것 같은 기분은 나로 하여금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게 했답니다. 왜 그렇게 눈물이 나는지….

저녁만 되면 빙긋이 웃으면서 “잘 있었어?” 하고 들어설 것 같아 시계만 보며 기다리다 지쳐 혼자 잠자리에 들면 하염없는 눈물이 베개를 적신답니다. 자다가 깨면 당신이 옆에 누워있는 착각을 하기도 합니다. 문득 당신이 없는 것을 알고서는 허전한 마음으로 돌아눕고 맙니다.

아침이 밝아오면 당신의 출근하는 모습이 생각나 창문을 열고, 남의 집 신랑들 출근하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리곤 한답니다. <나도 며칠 전만 해도 입 맞춰주며 “잘 있어. 당신 몸 붓지 않고 아기 잘 자라도록 운동해야 돼!” 하며 출근하던 남편이 있었는데…> 하면서요.

그렇잖아도 편지 쓰며 울까 봐 자기 편지 보고 실컷 울고 쓰는 편지인데도 눈물이 자꾸 앞을 가려 글씨가 잘 안 보이네요. 당신을 보낸 다음 날 뻥 뚫린 허전한 마음을 달래려고 자기 옷을 몽땅 갖다 빨래를 했지요. 울면서요. 옷 한 가지 한 가지를 빨 때마다 자기의 모습이 생각나 애꿎은 빨래만 ‘박박’ 힘주어 문질렀답니다.

당신이 떠나고 곁에 없으니 하루하루가 천년보다 더 길게 느껴진답니다. 당신의 자상했던 지난날의 모습이 자꾸 생각나 미칠 것 같아요. 어제는 바람이라도 쐬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내 가슴이 터질 것 같았어요. 갈 데는 없고 시장이나 다녀왔답니다. 외로움과 고독이 이렇게 무서운지 몰랐어요.

당신 전화받고 목소리를 듣는 순간 너무 반가웠습니다. 사무치게 그리워 눈물이 목을 메워 말도 제대로 못 했답니다. 전화를 끊기가 얼마나 아쉬웠는지…. 밤새 당신 생각만 하면서 울다가 잠이 들었답니다. 꿈속에서 만나길 간절히 기도하면서….

또, 당신 편지 받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아세요? 19세 소녀처럼 두근거리는 가슴을 누르며 순식간에 읽고 또 읽고 하면서요.

여보, 언제 6개월이 지나죠? 언제 2년이 가고요?

이렇게 하소연만 하는 못난 아내를 용서하세요. 지난 8개월 동안 당신과의 신혼생활이 너무나 행복했고 이제는 당신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짐’이 저에겐 너무나 큰 충격이에요.

내 머리 속은 오로지 당신 생각뿐이에요.

다음 편지에 또 적을게요.

항상 하나님의 축복과 돌보심이 함께 하길 기도하겠어요.

그럼 안녕!

1984년 3월 18일

사랑하는 당신의 아내 경옥 씀

내가 아내의 마음을 더 헤아렸어야 했다. 남편 말에 반대하지 못하고 순종하는 아내에게 해외 2년 근무 제안을 했다는 것이 얼마나 내 위주의, 우리 집안 위주의 생각이었나를 아는 데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아내는 내가 간절히 원하므로 내 뜻을 따라준 것이었다. 신혼 초 어머니의 며느리 교육 한 달 동안 아내는 남편 없는 시집살이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내는 자신에게 닥쳐올 하루하루가 얼마나 혹독하리라는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결국 아내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길고 힘든 외로운 시집살이 2년이 기다리고 있었다.

연이어 3월 19일 쓴 아내의 두 번째 편지다.

생명보다 소중한 나의 당신에게

이젠 추운 겨울도 지나고 마지막 꽃샘추위도 물러가고 이곳은 완연한 봄이랍니다, 그 더운 나라에서 고생하는 당신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요.

어제는 이종사촌 동생 00의 결혼식이 있었죠. 식장에서 저를 쳐다보는 친척들의 눈들이 불쌍하다는 표정이었어요. 딴에는 저에게 위로를 하려고 한마디씩 했지만 전 너무 괴로웠어요. 그럴수록 눈물이 더 낫고요. 차라리 모른 척 그냥 혼자 놔뒀으면 좋겠는데…. 왜 그렇게 내 자신이 처량해지는지…. “어떻게 지내?” “외로워서 어떡해?” 모든 소리가 내 귓전에 와서 사라지질 않는군요.

갑자기 당신이 원망스러워요. 왜 날 데려와서 혼자만 놔두고 훌쩍 외국으로 가버렸는지? ‘부부’가 뭔지? 왜 그토록 당신이 보고 싶은지?

당신이 두고 간 모든 자취가 날 괴롭게 만든답니다. 너무 외롭고 허전해서 며칠 전엔 언니네 집에서 은혜(언니 딸)를 데려왔답니다. 언니도 집안일에 정신이 없어 선뜻 은혜를 내어주더군요. 내가 외로워하니까. 은혜한테 정신을 팔다 보면 조금이라도 이 허전함을 달랠 수 있을까 해서요.

하지만 당신이 없는, 나의 마음속에 있는 당신의 자리는 그 누구도 메우질 못했어요. 은혜도 그 순간뿐이었어요. 책도, 피아노도, TV도, 라디오도 그 무엇도요. 3일을 데리고 있었는데 형부가 보고 싶어 한다고 해서 도로 데려다줬지요.

하루 종일 혼자 있고 저녁에도 당신이 없으니 외로워서 미칠 것 같아요. 그런 때마다 기도한답니다. 그럼 좀 위로와 안정이 되지요.

여보, 오늘 병원에 다녀왔어요.

당신 때문에 신경을 써서 그런지 의사의 말이 상태가 더 나빠졌대요. 혈압이 150/100까지 나가고 단백도 많이 나오고 몸도 많이 붓고요. 의사가 나보고 맨밥만 먹고 일체 간한 것은 먹지 말래요. 큰일 나겠다고 하더군요. 점점 심해지면 산모와 아기가 위험하대요.

그래서 혼자 맨밥을 물에 말아 삼키자니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더군요. 왜 이럴 때 남편이라는 사람은 곁에 없나? 당신이 그래도 곁에 있다면 힘이 될 텐데….

저 무서워요. 자신이 없어요. 죽으면 어떡하죠? 그래도 날 사랑하는 당신이 있다고 자위를 하면서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살려고 노력하지만 하루하루가 몹시도 괴롭답니다. 당신이 더 원망스럽고요. 아기나 무사히 낳고 나갔어도 좋았을 텐데….

정말 이렇게 외롭고 힘들고 괴롭게 혼자 사느니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은 때도 있었죠.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믿음이 없었다면 전 아마도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제가 믿고 이렇게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기도 가운데 위로를 받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하지만 외로움이 사무치면 자꾸 믿음이 약해져요.

여보, 저 위해 기도 많이 해 주세요. 이 어려운 고비를 잘 이겨 나갈 수 있게 말이에요. 저요, 용기 잃지 않고 당신 생각하며 이를 악물고 살 거예요. 당신을 의지하고 있는 제가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하세요. 당신한테 위로의 말은 못 하고 내 생각만 해서 미안해요. 용서해요.

어제 편지 받았는데 오늘 또 편지함을 몇 번이나 열어 보았답니다. 내 마음 알겠어요? 당신도 그래요? 매일 편지 쓰세요. 애타게 기다리는 당신 아내를 위해서요. 저도 매일 쓸게요.

두서없는 글 용서해요. 사랑해요. 너무나. 그럼 안녕히….

1984. 3. 19.

당신의 아내 경옥 씀

나는 아내에게 전화도 하고 편지도 보내면서 “세월은 빨라. 작정한 2년은 금방 갈 거야”라고 하면서 아내를 위로하고 힘을 내게 했다. 그리고 아내가 나만을 생각하는 데서 오는 마음의 외로움과 고독을 떨쳐 버리도록, 그리고 허전함을 달랠 수 있는, 아내의 마음을 쏟을 수 있는 어떤 소재를 찾도록 권유를 했다. 또, 사랑이란 모든 것을 참고 견디는 것이라고 사랑의 힘을 내도록 격려하곤 했다. 그렇지만 아내는 여전히 남편이 떠나버린 후의 고독과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남편 떠나보내고 슬픔을 이기지 못한 아내는 사무치는 고독으로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음식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하였으니 아기도 산모도 건강상태가 최악이었다. 결국 아내의 일생에 아니, 우리 두 사람의 일생에 최악의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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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임석원은...

1956년 지리산 시골마을에서 태어났다. 대전고와 한남대를 졸업한 후 1980년 S그룹 S건설에 입사해 23년을 근무하면서 사우디·싱가포르·인도네시아 등 8년간 생활했다. 2003년 영국 유통회사 B&Q 구매이사, 2004년 경남 S건설 서울사무소장으로 일했다. 2009년 H그룹 H건설에 입사해 리비아에서 자재·장비 구매업무를, 2011년 E그룹 E건설에 입사해 중국과 동남아 대외구매를 담당했고, 2013년에는 전북 J건설 소속으로 사우디에서 근무했다. 지금은 34년 직장생활을 마감하고 미군부대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하면서 여러 분야의 책을 읽고 토론하는 분당 판교지역 독서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인생 후반기엔 ‘책 읽고 여행하고 글 쓰는 삶’을 계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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