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레슨 선생님 아내와 견마지로의 딸 지영

금강일보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효와 사랑 이야기를 담은 임석원의 자전적 에세이 나는 내 아내가 너무 좋다를 온라인판을 통해 연재합니다. 본보 201789일자 10면 보도

1955년부터 1963년 사이에 출생한 우리나라 베이비붐 세대는 한국전쟁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격변의 시대를 관통하며 살아온 세대로, 임석원의 에세이는 그 시대에 태어나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도 많았겠지만 자신을 위해서는 한 가지도 해 보지 못한 채 오직 가족만을 위해 굳세게 살아온 한 남자의 자전적 이야기이자, 곁에서 묵묵히 좋은 동반자가 되어 준 아내에 대한 절절한 고마움을 전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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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레슨 선생님 아내와 견마지로의 딸 지영

아내는 인도네시아에서 살면서 피아노 레슨을 하였다. 같은 교회에 다니는 한인학교 음악 선생님의 권유로 아이들을 가르쳤다. 한국 아이들치고 어릴 때 피아노나 바이올린을 안 해본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한국에서 온 아이들의 엄마들은 인도네시아에 와서 살면서도 아이들 교육에의 열정은 여전하다. 아니 한국에 있는 아이들보다 뒤지면 안 되니까 더 열심이다. 한국에서 보다 남편들 급여도 훨씬 더 많겠다, 기사 딸린 자동차도 있겠다, 아이들에게 영어와 수학, 국어, 음악, 미술 등 한국에 돌아가서의 교육을 대비하여 과외를 시킨다. 그런데 각 과목별로 선생님이 많지 않다. 피아노를 가르칠 만한 선생님도 귀한지라 한국에서 새로 오는 아이들의 엄마들이 한인학교 음악 선생님에게 피아노 선생님 소개를 부탁한다. 아내는 교회에서 간간이 피아노 반주를 하였다. 6개월쯤 지났을까? 아내의 부전공이 피아노였다는 것을 알게 된 음악 선생님이 아이들 피아노 레슨을 부탁하게 되었다. 아내는 나와 상의 후 집에 피아노 한 대를 들여놓고 아이들을 레슨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2~3명의 아이들을 가르치더니 나중에는 5~6명의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나는 인도네시아에서 아내의 여유 있는 생활에 지장을 받지 않도록 더 이상 아이들을 받지 말라고 하였다. 나중에 아내의 피아노 실력을 알고 부탁하는 엄마들에게 거절하기도 쉽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모은 돈이 700만 원이었다. 이 돈이 굴리고 굴려져서 25년이 지난 지금은 3000만 원이라는 아내의 주머닛돈이 되었다. 나는 별도의 주머닛돈이 없는데. 아내는 인도네시아에서 돈까지 벌고 지냈으니 얼마나 좋았던가!

당시 지영이도 엄마에게서 피아노를 배웠다. 지영이가 어느 날 나에게 피아노 레슨비를 달라고 한다. 아이들이 선생님께 레슨비를 드리는 것을 보고서 자기도 매일 한 시간씩 배우니까 엄마지만 피아노 선생님이니 레슨비를 드려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던가 보다. 내가 엄마니까 안 드려도 된다고 했더니 지영이는 자기를 가르치는 선생님이니까 드려야 된다고 한다. 지영이와 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아내가 아빠한테서 레슨비 타 가지고 오세요라고 하였다. 그래서 내가 엄마한테서 타다가 갖다 드려라.” 하니 지영이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엉거주춤하였다. 아내와 나는 어쩔 줄 몰라 하는 지영을 쳐다보며 웃었다. 우리의 예쁜 딸 지영이를 키우면서 이렇게 때때로 겪는 재미가 쏠쏠했다.

내친김에 지영이의 견마지로(犬馬之勞)’ 이야기를 해야겠다. 아내와 내가 집안에서 무슨 일인가를 하다가 밖에서 놀고 있던 지영에게 무언가를 갖다 달라고 했다. 지영이가 금방 심부름을 해 주어서 고맙다고 했더니 견마지로지요.”라고 하였다. 아내와 나는 지영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잘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뭐라고? 뭐라고 했니?” 물었더니 견마지로라고 했단다. 우리는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몰라서 그게 뭔데?” 하였더니 개와 말의 수고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에요라고 대답하였다. “너 그거 어디서 배웠는데?” 묻자 지영은 제방으로 들어가서 고사성어 이야기 만화책을 들고 나왔다. 그리고 견마지로이야기 편을 보여 주었다. 참으로 영리한 우리 딸이다. 이야기 만화책을 읽고 기억하고 있다가 현실 생활에 바로 적용을 하다니! 열 아들보다 나은 우리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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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임석원은...

1956년 지리산 시골마을에서 태어났다. 대전고와 한남대를 졸업한 후 1980S그룹 S건설에 입사해 23년을 근무하면서 사우디·싱가포르·인도네시아 등 8년간 생활했다. 2003년 영국 유통회사 B&Q 구매이사, 2004년 경남 S건설 서울사무소장으로 일했다. 2009H그룹 H건설에 입사해 리비아에서 자재·장비 구매업무를, 2011E그룹 E건설에 입사해 중국과 동남아 대외구매를 담당했고, 2013년에는 전북 J건설 소속으로 사우디에서 근무했다. 지금은 34년 직장생활을 마감하고 미군부대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하면서 여러 분야의 책을 읽고 토론하는 분당 판교지역 독서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인생 후반기엔 책 읽고 여행하고 글 쓰는 삶을 계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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