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금강일보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효와 사랑 이야기를 담은 임석원의 자전적 에세이 나는 내 아내가 너무 좋다를 인터넷판을 통해 연재합니다. 본보 201789일자 10면 보도

1955년부터 1963년 사이에 출생한 우리나라 베이비붐 세대는 한국전쟁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격변의 시대를 관통하며 살아온 세대로, 임석원의 에세이는 그 시대에 태어나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도 많았겠지만 자신을 위해서는 한 가지도 해 보지 못한 채 오직 가족만을 위해 굳세게 살아온 한 남자의 자전적 이야기이자, 곁에서 묵묵히 좋은 동반자가 되어 준 아내에 대한 절절한 고마움을 전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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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축복이다.

대학교 1학년 때 만나서 지금까지 교제하는 친구가 있다. 친구는 은퇴해 사학연금을 받으며 지내고 있다. 우리는 한 달에 한 번 만나 남산 둘레길이나 과천 대공원 둘레길을 걸으며 책 이야기나 여행 이야기 등을 나누며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며 살고 있다. 이 글의 큰 줄거리는 리비아에서 썼지만 다시 정리하고 가감한 후 그 친구에게 교정을 부탁했다. 남산도서관에서 그 친구가 교정을 끝낸 후 이렇게 말했다.

!~ 너는 이제 죽을 준비 다 했네.”

그렇다. 나는 죽기 전 하고 싶은 1순위 과업을 한 셈이다.

내가 싱가포르 근무를 마치고 귀국, 아내와 신혼 때 살던 서울 집으로 이사하고 지극히 평범한 직장인의 가정생활로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가 한 말이 생각난다.

당신, 망각도 은혜인 줄 아세요.”

망각이 은혜라니?”

저 당신도 없는 시집에서 부모님과 네 명의 동생들 뒷바라지하며 혼자 2년 넘게 어떻게 살았는지 꿈만 같아요. 2년 동안의 설움이 현실 같지가 않고 꿈을 꾼 것만 같아요. 그냥 자다가 잠깐 악몽을 꾼 것 같아요. 지금 당신과 사는 이 행복이 문득문득 꿈이 아닌지 깜짝깜짝 놀라기도 해요. 저에게 망각은 놀라운 은혜예요. 당신도 없는 시집에서 제가 당한 설움이 잊히지 않고 제 기억에 남아 있다면 얼마나 큰 고통이겠어요? 부모님과 동생들 한 사람 한 사람으로부터 받은 서운함과 그때의 서러움이 제 머리에 남아 있다면 어떻게 시집 식구들을 보겠어요. 하나님께서 저에게 망각의 은혜를 주신 것 같아요. 시집에 대해서도 시집 식구들에 대해서도 어떤 감정도 남아 있지 않고 사라졌으니 망각의 은혜라고 아니할 수 없잖아요.”

살아온 인생길을 돌아보면 지금은 한순간의 꿈이었던 것 같지만 그때는 긴 여정이었다. 아내와 내가 부모님과 동생들을 위해 신혼에 떨어져 고생을 하며 살던 때 어머니 말씀 중에 옳지 않은 말씀이 있었다.

할 만하니까 하는 거지.”

어머니, 할 만해서 하는 게 아니잖아요. 뛰쳐나가는 수밖에 없는데 친정부모 생각해서 몸과 마음이 부서져도 그러지 못하니 어쩌겠어요? 어머니도 아시잖아요?!”

.”

어머니는 그때 대답을 안 하시고 침묵함으로 아내의 어려움을 인정하셨다.

이 글에 수록된 아내의 편지는 9통이다. 아내가 내게 쓴 편지는 전부 94통이었으니 10% 정도를 이 책에 기록으로 남기는 셈이다. 처음 이 글을 쓸 때는 아내의 애절한 심정이 담긴 편지를 20통 정도 포함했다. 내 의도는 아내와 내가 젊어서 사서 고생하던 그때 아내가 쓴 편지글 자체를 원문 그대로 이 책에 가능한 많이 남기고 싶었다. 독일의 실증주의 역사학자 랑케의 정의대로 사실로서의 역사, 있었던 그대로의 과거를 이 책에 기록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내가 구구절절 편지마다 다 비슷한 내용이라고 반으로 줄이라고 해서 거의 반을 뺐다. 어머니와 장모님의 편지와 동생의 편지도 각각 한 통씩 기록으로 남긴다. 내가 아내에게 쓴 편지 수는 사실 아내가 쓴 편지 수보다 많아 101통이나 된다. 그러나 두 통만 포함했다. 나는 내 목적, 우리 집안을 위해 갓 시집온 아내를 희생시킨 사람이었으니 무슨 할 말이 있었겠는가? 변명과 참자라는 말밖에는 쓸 것이 없었다. 정말이지 그때 아내는 할 만해서 그렇게 산 것이 아니었다. 나는 아내에게 지독한 희생을 강요한 죄로, 나라는 사람과 나의 천사, 내 아내의 이야기를 남기고 싶은 마음에서 이 글을 썼다. 아내와 나의 이야기가 우리 베이비부머, 특히 그 시대 장남들의 역사 이야기니까.

많은 사람들이 나이 들어서도 움직일 수만 있다면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하려는 일이 돈 버는 일이니 문제다. 60이 넘어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곤 한다.

“60이 넘으면 돈 버는 일자리는 후배 세대에게 넘겨야 합니다. 언제까지 나만 벌다가 죽으려고 합니까? 이제 일자리는 후배들에게 넘겨주고 우리는 좀 놉시다.”

내가 말하는 노는 일이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자는 이야기다.

이젠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합시다. 돈 버는 일 말고!”

노후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분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작게라도 먹고 살만한 분들에게는 진심으로 드리고 싶은 말이다. 노후 준비가 안 된 사람들이 많아서 60, 70이 넘어도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많다니 정말 안타깝다. 국가에서 기본생계비를 보장해주는 제도가 빠른 장래에 확립돼야 한다. 어쨌거나 60이 넘은 사람들은 아무리 건강을 잘 챙겨도 팔팔한 젊은 시절과 같은 건강 상태를 유지하긴 쉽지 않다. ‘생로병사의 자연법칙을 거스를 순 없다. 60이 넘었다는 건 이렇게 표현하기는 싫지만 늙었으니 어떤 문제로 언제 죽을지 모른다. 그러니 은퇴 후에는 모두가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기를 바란다. 노후에도 돈 버는 일만 하다가 죽어서는 안 된다. 내가 진정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인생을 매듭지어야 한다.

나는 완전 은퇴 후 작가로서 후반기 인생을 살고 싶다. 그러나 유명 작가를 목표로 정하고 이루기 위해 인생 전반부처럼 처절할 정도로 열심히 살지는 않겠다. 젊어서 가정과 직장, 사회를 위해 열심히 살았으니 이제는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일, 책 읽고 쓰기도 하고 가보고 싶은데 여행하면서 여유 있게 살고 싶다. 쓰려는 글이 잘 써지면 좋겠다. 그러나 잘 안 써져도 어쩌랴? 여유를 갖고 쓰다 보면 명작이 나올 줄 누가 알겠는가?

올해 말 완전 은퇴 후 나는 또 하나 쓰고 싶은 글이 있다. 제목은 벌써 정했다 남자들이다. 이 책 나는 내 아내가 너무 좋다의 제목은 무려 10여 년 전에 정했는데 책은 2017년에야 나왔다. 대체적인 줄거리는 오래 전에 썼지만 그동안 직장 생활하느라고 정리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현재 다니는 직장에서 만나 함께 일하는 동료의 진심 어린 독려로 빛을 보게 됐다. 인생길에서 만나는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다. 다음 책 남자들은 완전 은퇴 후에 쓸 것이니 이 책처럼 오래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자들의 삶의 이야기는 많은 것 같은데 남자들의 삶의 이야기는 잘 찾지 못하겠다. 그래서 내가 한 번 써 보고 싶다. 모파상과 채만식의 여자의 일생이라든지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와 같은 여자들의 이야기는 많이 읽힌다. 남자들의 이야기는 카프카의 변신정도일까? 많지 않은 듯하다. 그래서 내가 살아오면서 만난 남자들의 이야기, 삶의 현장에서 외로운 투쟁을 하며 사는 정작 불쌍한(?) 남자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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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임석원은...

1956년 지리산 시골마을에서 태어났다. 대전고와 한남대를 졸업한 후 1980S그룹 S건설에 입사해 23년을 근무하면서 사우디·싱가포르·인도네시아 등 8년간 생활했다. 2003년 영국 유통회사 B&Q 구매이사, 2004년 경남 S건설 서울사무소장으로 일했다. 2009H그룹 H건설에 입사해 리비아에서 자재·장비 구매업무를, 2011E그룹 E건설에 입사해 중국과 동남아 대외구매를 담당했고, 2013년에는 전북 J건설 소속으로 사우디에서 근무했다. 지금은 34년 직장생활을 마감하고 미군부대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하면서 여러 분야의 책을 읽고 토론하는 분당 판교지역 독서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인생 후반기엔 책 읽고 여행하고 글 쓰는 삶을 계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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