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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유학사에서 선조(宣祖) 이전의 성리학자들은 개인적으로는 실천궁행(實踐躬行)에 힘썼고, 정치적으로는 요순시대(堯舜時代)를 재현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 강호 김숙자를 거쳐 점필재 김종직 및 그 제자 한훤당 김굉필, 일두 정여창 등의 사림파 유학자들을 중심으로 강조되었다. 이 정신은 김굉필의 제자 정암 조광조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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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
2013.12.25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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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채호(申采浩: 1880∼1936)는 한국고대사 연구에 몸을 바치는 한편 의기 있는 독립운동가로 이름이 높다. 그의 본관은 고령(高靈), 호는 일편단생(一片丹生) 또는 단재(丹齋)이다. 신숙주(申叔舟)의 자손으로 광식(光植)의 차자(次子)이다. 그는 문과에 올라 정언(正言)을 지낸 할아버지 성우(星雨)로부터 유학을 배웠다. 이미 10대에 사서삼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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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18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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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수(朴文秀: 1691∼1756)는 암행어사로 유명한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그의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성보(成甫), 호는 기은(耆隱)이다. 이조판서 장원(長遠)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세마(洗馬) 선(銑)이고, 아버지는 영은군(靈恩君) 항한(恒漢)이며, 어머니는 공조참판 이세필(李世弼)의 딸이다. 그의 출생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말년을 천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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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
2013.12.11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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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기(金萬基: 1633∼1687)는 당쟁의 시기에 임금을 충심으로 보필한 인물이다. 그의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영숙(永淑), 호는 서석(瑞石) 또는 정관재(靜觀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김장생이고, 할아버지는 김장생의 작은 아들 참판 반(槃)이고, 아버지는 생원 익겸(益兼)이며, 어머니는 해평윤씨(海平尹氏)이다. 문학가인 김만중의 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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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04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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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황(尹煌: 1571∼1639)은 의리와 애민을 중시하는 유학자였다. 그의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덕요(德耀), 호는 팔송(八松) 또는 노곡(魯谷),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충청병마절도사 선지(先智)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돈(暾)이다. 아버지는 창세(昌世)이고 어머니는 부제학(副提學) 경혼(慶渾)의 딸인데, 한양 자택에서 윤황을 낳았다. 우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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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7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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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여(金慶餘: 1596~1653년)는 의리를 숭상하여 조행에 힘쓴 유학자이다. 그의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유선(由善), 호는 송애(松厓),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증조는 현령을 지낸 사걸(士傑), 할아버지는 참의를 지낸 위(偉), 아버지는 찬성으로 추증된 광유(光裕)이다. 어머니는 송씨(宋氏)이니 군수 남수(柟壽)의 따님인데, 김경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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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0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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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창(宋爾昌: 1561∼1627)은 송준길(宋浚吉)의 아버지요 송시열(宋時烈)의 어릴 적 스승이었다. 송이창은 송준길과 송시열을 가르침으로써 회덕 유학의 번성을 도운 숨은 공로자라 할 수 있겠다.그의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복여(福汝), 호는 정좌와(靜坐窩)이다. 여집(汝楫)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세영(世英), 아버지는 군수 응서(應瑞)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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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13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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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徐起:1523∼1591)의 본관은 이천(利川), 자는 대가(待可), 호는 고청(孤靑), 시호는 문목공(文穆公)이다. 그는 조선 중종 18년에 충청도(忠淸道) 남포(藍浦) 제석동(帝錫洞)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구령(龜齡)으로 가세가 대대로 한미하였다. 탄생시에 특이한 향내가 집안에 진동했는데, 어려서부터 재주가 총명하여 ‘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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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6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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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헌(趙憲: 1544∼1592)은 조선 중기의 문신·유학자·의병장으로 도략과 학문과 충절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본관은 배천(白川). 자는 여식(汝式), 호는 중봉(重峯) 또는 도원(陶原), 시호는 문열(文烈)이다. 아버지는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추증된 응지(應祉)로 차순달(車順達)의 딸에게 장가들어 선생을 낳았다. 경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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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30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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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병순(宋秉珣: 1839~1912)은 형인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을 이어 일제에 의해 국권을 빼앗기는 모습을 보고 울분을 참지 못하여 음독 자결한 우국지사이다. 그의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동옥(東玉), 호는 심석재(心石齋)로 회덕에서 태어났다. 송시열(宋時烈)의 9세손으로 면수(勉洙)의 차자요, 송병선의 아우이다. 그는 송시열로부터 송치규(宋穉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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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3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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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병선(宋秉璿: 1836~1905)은 외침(外侵)에 대해 자결로써 항거했던 애국지사이다. 그의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화옥(華玉), 호는 연재(淵齋)이다. 대전시 회덕(懷德) 출생으로 송시열(宋時烈)의 9세손이며, 면수(勉洙)의 장자(長子)이다. 그는 송시열의 존화양이(尊華攘夷)의 의리정신(義理精神)을 계승하여 몸소 실천한 인물이다. 그는 송시열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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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16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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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익현(崔益鉉: 1833∼1906)은 조선 말기의 대표적 애국지사로 유학의 춘추대의(春秋大義) 사상을 철저히 실현한 인물이다. 그의 본관은 경주(慶州), 초명은 기남(奇男), 자는 찬겸(贊謙), 호는 면암(勉菴)이다. 아버지 이름은 대(岱)인데, 경기도 포천에서 태어나 4세 때 충청도 단양으로 이거하였다. 묘소는 충남 예산군 관음리에 있고, 사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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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09 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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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金恒: 1826∼1898)은 조선 말기의 선각자로서 사회의 대변혁을 앞둔 시점에 태어나 새 시대를 맞이할 길에 대해 사색하였다. 그의 학문은 창의적이고 혁명적인 성격을 가졌는데, 그의 업적은 조선말기 민중들의 정신세계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그의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도심(道心), 호는 일부(一夫)로 『정역(正易)』의 저자이다. 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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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02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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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金正喜: 1786∼1856)는 조선 말기의 문신이면서 실학·경학·서화·금석학·불교학 등에 탁월한 업적을 쌓은 인물이다. 그는 충남 예산 출신으로 본관은 경주, 자는 원춘(元春), 호는 추사(秋史)·완당(阮堂)이다. 그의 호는 이밖에도 예당(禮堂)·시암(詩庵)&mid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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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25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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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용(洪大容: 1731∼1783)은 영조와 정조 사이의 실학자이면서 과학사상가이다. 그의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덕보(德保), 호는 담헌(湛軒) 또는 홍지(弘之)이다. 그는 대사간 용조(龍祚)의 손자이며 목사 홍력(洪櫟)의 아들이다. 지금의 천안 출신으로 묘소 역시 천안에 있다. 그는 송시열(宋時烈) 계열의 학통을 이었으므로 학문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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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
2013.09.11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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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이진(權以鎭: 1668∼1734)은 권득기(權得己)와 권시(權?)를 잇는 가학과 송시열(宋時烈)·윤증(尹拯)의 사상을 통합적으로 계승한 유학자이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자정(子定), 호는 유회당(有懷堂)·수만헌(收漫軒), 시호는 공민(恭敏)이다. 그는 공주 출신으로 예조좌랑 권득기의 증손자요 우윤(右尹) 권시의 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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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
2013.09.04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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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휴(尹鑴: 1617∼1680)는 주자학이 왕성한 세력을 유지해오던 상황에서 주자학을 탈피하여 자신의 관점으로 유학을 이해하려 했던 인물이다. 그의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희중(希仲), 호는 백호(白湖) 또는 하헌(夏軒)이다.그의 아버지는 대사헌 효전(孝全)으로 2세 무렵에 아버지를 잃고 편모 슬하에서 자랐다. 이괄(李适)의 난 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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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28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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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문(鹿門) 임성주(任聖周: 1711∼1788)의 본관은 풍천(豐川), 자는 중사(仲思), 호는 녹문(鹿門),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아버지는 함흥판관 적(適)이며, 충청북도 청풍에서 태어났다. 이단상(李端相)과 송시열(宋時烈)-김창협(金昌協)-이재(李縡)로 전해진 학맥을 이어받았다. 임성주의 친동생인 임윤지당(任允摯堂, 17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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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
2013.08.21 0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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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간(李柬: 1677 ~1727)은 호락논쟁(湖洛論爭)의 중심에 서서 인성과 물성의 동일하다는 인물성동론(人物性同論)을 편 인물이다. 그의 본관은 예안(禮安), 자는 공거(公擧), 호는 외암(巍巖),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충남 아산 외암리에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부호군 태형(泰亨)이다. 이간이 비록 낙론(洛論)의 대표자이기는 하지만 그 개인으로 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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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
2013.08.14 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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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원진(韓元震: 1682~1751)은 호락논쟁(湖洛論爭)을 통하여 조선 후기의 성리학을 더욱 깊은 영역으로 들게 하였다. 그는 충남 홍성군 서부면 남당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덕소(德昭), 호는 남당(南塘), 시호는 문순(文純)이다. 아버지는 통덕랑을 지낸 유기(有箕)이며, 어머니는 함양 박씨(咸陽朴氏)이다. 송시열(宋時烈)-권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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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07 0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