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어를 봤다, 그리고 박쥐도 만났다. 박쥐는 진짜다

[대청호오백리길, 마실 가듯 1박2일] 

보은 회남면 분저리 마을
(15구간 구름고갯길)

충북 옥천군 안남면 연주리 ‘한반도 반전 지형’.
이곳은 독특한 지형 때문에 유명하기도 하지만 또 하나의 의미를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바로 이곳이 대청호의 시작점이다.

대청댐의 높이만큼 물이 담기면서 산골짜기 깊숙한 곳까지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고
차오른 물은 독특한 지형을 만들어냈다. 한반도 반전 지형이 그렇고,

병풍처럼 길게 늘어선 산봉우리들이 장관이라 ‘소금강’이란 타이틀을 보유하게 된 부소담악도 마찬가지다.  대청호오백리길 5구간에서 뚜렷하게 볼 수 있는 ‘햄버거섬’도 대청댐이 만들어 놓은 작품 가운데 하나다.

주목할 만한 곳이 또 하나 있는데 15구간 구름고갯길의 충북 보은군 회남면 분저리 마을이다.

 

 

#. 대청호 악어의 끝판왕

회남면 분저리는 속리산 자락 첩첩산중 산골짜기에 대청호를 낀 오지마을이다.
30여 가구가 전부다. 이 중 절반은 귀농·귀촌 가구다.
벼농사를 기본적으로 하고 보은의 자랑인 대추와 복숭아를 주로 기른다.
요즘 이곳으로 이사 온 귀농·귀촌인들은 아로니아를 비롯해 소위 요즘 뜨는 특용작물을 재배한다.

자연환경이 잘 보전된 덕분에 이곳은 2003년 녹색농촌체험마을로 지정됐다.
이병근 이장을 비롯해 주민 모두가 머리를 맞대 농촌체험 프로그램을 만들고
이 체험 프로그램들로 도시민과 교류한다.

 

 

이 마을에선 숙박형 체험이 가능하다. 야외 바비큐장과 수영장, 운동장을 비롯해 6개 객실(약 80여 명 동시수용 가능)을 보유한 숙박시설이 갖춰져 있다. 된장 담그기와 열매 따기, 산나물 뜯기, 두부 만들기 등 농촌 생활을 체험할 수 있고 여름엔 수영장, 겨울엔 썰매장에서 놀이를 즐길 수도 있다.

사람들이 이 마을을 찾는 건 농촌체험을 위한 것도 있지만 또 다른 매력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구름도 쉬어간다는 은운리와 분저리를 잇는 구름재에서의 산책과
독수리봉에서 바라보는 절경이 일품이다. 특히 마을에서 30∼40분 정도 걸어 들어가 독수리봉에 이르면
거대한 악어 한 마리와 마주하게 된다.

 

 

대청호가 생기면서 모습을 드러낸 조각품인데
카메라 렌즈를 들이대면 역동적으로 꿈틀거리는 악어의 모습을 더 확연하게 감상할 수 있다.
서탄리 땅을 크게 휘감아 도는 대청호의 위엄과 어우러져 감탄사를 자아내게 한다.

독수리봉에서 바라본 비경은 대청호에서 꼭 가봐야 할 명소에서 빠지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란 말이 딱 들어맞는 대청호의 명소 중 명소다.

대청호에선 골짜기 지형에 따라 다양한 악어 형상이 나타나는데 이곳이 악어 형상의 끝판왕이다.
요즘 들어선 악어 형상만으론 모자랐는지 카약과 같은 소형 배를 타고 직접 협곡을 누비는 사람들도 많이 늘고 있다.

대청호가 간직한 절경을 더 많이 소비하고 싶은 욕구가 그만큼 커졌다는 방증이다.

 

 

#. 알콩달콩 분저리 마을 이야기

귀농·귀촌 가구가 많아서인지 마을 집들이 대체로 펜션 같은 느낌을 준다.
이곳에서 태어나 도시 생활을 하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들도 많은데 이병근(57) 이장도 그렇다.

이 이장이 고향으로 유턴한 건 약 30년 전으로 매우 빠른 편이다.
일찌감치 도시 생활을 접고 농사일을 시작하면서 이 마을 또한 새 심장을 이식받았다.
역시 젊은 감각이 살아 있어야 마을 공동체도 더 역동적으로 변한다.

분저리가 변화하는 시대에서 도태되지 않고 이만큼 발전할 수 있었던 것도
이 이장을 비롯한 젊은 일꾼들이 마을을 지키고 있어서다.

여느 농촌마을이 다 그렇듯 분저리 커뮤니티의 중심 역시 마을회관과 체험숙박시설이 있는 군(굼)막골이다. 임진왜란 때 조선군이 군막을 치고 머물렀던 곳이라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

마을 길 옆에 나무 울타리가 아기자기하게 늘어서 있고 코스모스가 울타리 길을 수놓았다.
어슬렁어슬렁 산책하면서 느끼는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을 누리게 해 준다.
옛 가옥과 현대식 가옥이 어우러진 풍경 또한 묘한 기분을 선사한다.

 

 

분저리 주민들은 군막골과 분저실에 모여살고
산기슭을 개간해 조성한 매봉재뜰에서 과수와 벼를 재배한다.
안내회남로를 기준으로 주거지역과 농경지가 구분된다.
매봉재뜰은 요즘 가을과 함께 벼도 누렇게 익어가고 있다.

논길 사이로 매봉재에 이르는 길도 산책 코스로 괜찮다.
대청호반에 닿을 수 있어 낚시꾼들이 종종 찾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 매봉재엔 특이하게 ‘박쥐동굴’이 있다.
일제강점기 유황광산 개발이 이뤄지면서 만들어진 동굴이란다.
동굴 속으로 어느 정도 들어가 보면 진짜 박쥐들이 있다.
동굴 천정에 대롱대롱 매달려 휴식을 취하는 박쥐들을 직접 볼 수 있다.

 

 

물론 박쥐의 사생활을 침해해 이들을 귀찮게 하기도 하고 위험하기도 해서
마을 사람들은 외지인에게 이곳을 직접 안내하진 않는다.
예전엔 파놓은 동굴을 지탱하기 위해 버팀목들이 있었는데 대부분 훼손됐다.

글·사진·영상=이기준 기자 lkj@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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