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호는 그 자체로 경이롭다. 놀라울 만큼 신기하고 진기한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하늘빛에 따라 변하는 호반의 보석들이 한 꾸러미다. 알록달록 꽃들과 신선한 초록빛의 신록(新綠)이 생생한 봄날, 꿈결 같은 대청호반은 굽이치는 벅찬 감동을 선사한다. 그 퍼즐의 한 조각, 이번엔 7구간 부소담악길이다. 대전시 동구 내탑동 꽃봉 갈림길-방아실-방화정-문화류씨재실-대정삼거리-거먹골-항골삼거리-공곡재-이평리 버스종점-추소리 절골-부소담악으로 이어지는 꽤 먼 여정이다. 16㎞ 남짓, 쉬엄쉬엄 6시간이 걸린다.

 

[ 대청호오백리길 7구간 ] 부소담악길

길 위의 진경산수화

 

#. 꽃봉 넘어 방아실 가는 길

꽃봉 284m

대청호 오백리길 6구간(대추나무길)과 만나는 와정삼거리에서 길을 잡는다. 꽃봉을 향해 산길을 탄다. 군데군데 산벚꽃이 봄의 정취를 더한다. 5구간과 6구간의 접점, 베말까지 깊숙이 들어온 대청호가 파랗게 빛난다. 오솔길을 따라 약 1.2㎞ 꽃봉 갈림길에 선다. 공식적으론 여기서부터 7구간이 시작된다. 동쪽, 꽃봉으로 길을 잡는다. 약 700m 정도 오르막을 타면 해발 284m 꽃봉이다. 산벚꽃이 흐드러지게 폈다. 이제부터 온전한 7구간의 대청호가 펼쳐진다. 표지판을 보고 수생식물학습원 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숲에서 나오면 산골짜리 깊숙이 파고든 대청호가 반긴다. 방아실에 거의 다다를 무렵, 누군가 널찍한 바위 틈새에 꽃을 심어 놓았다. 예쁘다. 푸른 채소가 자라는 밭고랑 풀숲에서 뭔가가 바스락 거리며 꿈틀댄다. 도룡뇽 친구다. 가까이 다가서도 겁 없이 카메라 렌즈와 눈을 맞춘다. 도룡뇽도 사람이 신기했던지 5분 남짓 꽤 긴 시간동안 자신을 허락한다. 도룡뇽의 존재 자체가 방아실의 가치를 대변한다.

▲ 꽃봉에서 내려오자 방아실의 시원한 호수 풍경이 일행을 맞는다.

주변 풍광이 아름다운 방아실. 그 이름도 정겹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의 발길이 부쩍 늘었다. 그래선지 잘 꾸며진 카페(쁘띠메종)도 들어섰다. 방아실 하면 디딜방아가 먼저 생각난다. 그렇다. 방아실이란 지명은 디딜방아에서 유래했다. 디딜방아처럼 세 갈래 모양(Y자)이라고 해서 방아실이다. 옛날 한자지명은 방하곡리(方下谷里)였다. 대정삼거리로 가는 길, 꼬불꼬불 도로를 따라 고개를 넘는다. 고개 정점에 정자 하나가 평화롭게 서 있다. 방아실이 한 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1986년 마을사람들이 대청호에 잠긴 마을을 볼 수 있게 세웠다고 한다. 그런데 정자 이름이 방아정이 아니라 방화정(芳花亭)이다. 마을 뒷산 이름이 꽃산(花山, 화산)이기 때문에 꽃 화(花)자를 써서 마을사람들은 이곳을 방화실이라 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방자도 방향의 방이 아니라 꽃다울 방이다.

 

▲ 산벚꽃과 신록, 녹음이 어우러진 주변 산들은 마치 그림 같다. 일행은 풍경을 사진으로 담기 바쁘다.

#. 두메산골에 퍼지는 봄 익는 소리

대촌과 한저골을 지나 대정삼거리에 도착한다. 항곡삼거리로 길을 잡는다. 다소 지루한 포장길이다. 그래도 대청호반이 이따금씩 모습을 내비쳐 위안을 삼는다. 7구간 옥천땅은 영락없는 두메산골이다. 전쟁이 나도 모를 정도로 첩첩산중 골짜기에 마을이 놓여있다. 그래서 마을은 조용하고 평화롭다. 봄이 익어가는 모습도 예쁘고 그 소리도 경쾌하다. 앙상한 나뭇가지에서 새순이 돋아나는 장면은 정말로 경이롭다. 산벚꽃과 신록, 녹음이 어우러진 주변 산들은 마치 그림 같다. 배밭에선 하얀 배꽃이 봄의 왈츠에 흥을 더한다. 녹음이 짙어지면 자연의 생명력은 절정에 달하리라.

대정삼거리에서 약 2.5㎞ 정도 도로(비야대정로)를 따라 걸으며 봄을 만끽한 순간 항곡리 항골에 이른다. 옥천 환산 기슭에 난 환산로를 따라 목적지 부소담악으로 향한다. 항골에서 부소담악까진 6.5㎞다. 환산로는 산책길로 제격이다. 항골은 ‘골이 크다’는 의미의 황골에서 유래했는데 말 그대로 골이 깊고 커서 풍경도 이채롭다. 대청호가 형성되면서 아름다움의 깊이도 더해졌다. 공곡재 고갯길의 끝지점, 공곡정에 오르는 길에선 옛날에 기와를 구워냈던 가마터와 예전엔 흔했던 담뱃잎 건조창고도 볼 수 있다. 또 발걸음을 재촉하느라 들르지 못했던 방아실 수생식물학습원도 손에 잡힐 듯 가까이서 볼 수 있다.

▲ 쉼이 필요한 시점, 이제 저 모퉁이만 오르면 공곡정이다.

슬슬 발에 불이 나기 시작한다. 포장길을 오래 걸어서 더하다. 경치 감상에 눈은 즐거워도 발은 그렇지 않다. 쉼이 필요한 시점, 딱 좋은 곳에 공곡정이 세워져 있다. 시원한 산들바람을 맞으며 발에도 신선한 공기를 불어넣어 준다. 이곳 고갯길에도 어김없이 돌탑과 장승이 세워져 있다. 한국인의 DNA에 뿌리 깊이 새겨진 무속신앙의 편린(片鱗)이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무사안녕의 기(氣)를 받는다.

▲ 포장길이 이어지지만 차량은 거의 없다. S자 길을 걷는 재미도 더한다.
▲ 부소담악으로 가는 길, '대청호의 흔한 풍경'이 발길을 붙잡는다.

 #. 굽이치는 금강·대청호반길

공곡정에서 내려가는 길,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이 군데군데 심어져 있다. 이평리 버스종점부턴 대청호반에 더 가까이 접해 길을 걷는다. 산줄기 사이사이로 물이 담겨 풍성함을 더한다. 그래서 이곳은 금강이라기보다 대청호다. 마을이 수몰되면서 일부는 마을을 떠났고 또 일부는 마을에 남아 산으로 올라와 새로운 터전을 마련했다. 이들은 척박한 산을 다듬어 밭을 일구고 새 삶을 시작했다. 대청호반에 다랑이논이 발달한 이유다. 지금은 아름다운 경치로 받아들이지만 이곳 사람들에겐 삶에 대한 절박함이었으리라.

이평리에서 추소리로 가는 길에서 보면 눈길을 사로잡는 절경 하나가 펼쳐진다. 나무기둥에서 가지 하나가 뻗어나오듯 가는 산줄기 하나가 뻗어나왔다. 이 산줄기를 돌아 금강은 크게 굽이친다. 부소담악의 예고편인가? 아무튼 대청댐은 이렇게 예상 밖의 지형을 만들어놨다. 그 모습에 매료돼 이렇게 대청호반에 길을 만들어낸 것 아니던가. 추소리에 다다를 무렵, 또 한 차례의 감입곡류(嵌入曲流)와 함께 신성한 기운이 감도는 높은 산봉우리 하나가 마을 뒤로 우뚝 서 있다. 7구간의 하이라이트가 눈앞에 펼쳐진다.

#. 신비의 고준영봉, 부소담악

조선시대 천재 성리학자였던 율곡 이이는 빼어난 산세를 작은 금강산이란 의미의 ‘소금강(小金剛)’이라 했다. 율곡의 학맥을 이은 기호학파의 거두 우암 송시열은 옥천 추소리 부소담악에 이 ‘소금강’이란 이름을 부여했다. 단언컨대 부소담악은 대청호 오백리길 7구간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이다. 대청호를 품은 숨겨진 7구간의 비경은 부소담악에서 마침내 완성된다.

▲ 우암 송시열이 ‘소금강’이란 이름을 부여한 부소담악. 단언컨대 부소담악은 대청호 오백리길 7구간의 화룡점정이다.

지금의 추소리라는 지명은 추동과 부소부니(부소무니)라는 마을의 이름에서 한 자씩 따온 것이다. 부소는 ‘부수머리’의 옛말을 한자화한 것인데 이 마을 앞에 서화천이 흐르며 작은 강을 이뤘고 물이 고여 못(沼·늪) 같이 됐다고 해서 부소머리라 했다. 부소무니 마을 뒷산인 고리산(환산)에서부터 뻗어나온 12폭 병풍바위와 기암절벽, 바로 부소담악을 보고 송시열은 ‘소금강’이란 비유를 아끼지 않았다. 환산에 올라 부소담악 감입곡류를 감상하는 것도 좋고 신비로움을 더하는 물안개가 피어올라 아침의 고요가 있는 부소담악 자체를 감상하는 것도 좋다. 호수 위에 비친 절경도 일품이다. 물론 700m 가량 이어진 물위의 기암절벽은 그 자체로 장관이다. 한 폭의 진경산수화를 보는 느낌이랄까.

추소리서낭당 갈림길에서 부소담악으로 길을 잡는다. 최근 이곳엔 데크길이 놓여 대청호를 감상하면서 부소담악에 이를 수 있다. 봄꽃 피어난 마을 뒷산은 가을 단풍과는 다른 은은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부소담악에 세워진 추소정에 이르기 전 장승공원과도 만난다. 추소정부터 좁고 긴 부소담악 기암절벽 위를 걷는다. 물이 담기지 않았다면 천길 낭떠러지였을 산의 능선이다. 끝까지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다소 위험하다고 판단돼서 욕구를 애써 가라앉혔다. 부소담악을 돌아나와 추소리 절골에 이르면 부소담악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굽이치는 금강을 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절경이다.
글=이기준 기자 lkj@ggilbo.com 사진=이승훈·이기준 기자

 

[7구간 이렇게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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