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 지방분권 개헌 불발 후 2년 만에 ‘행정수도 이전’ 부활
집권여당 추진단 출범, 연내 로드맵 마련…공감대 형성이 관건

[금강일보 이기준 기자] 문재인정부 들어 처음으로 ‘행정수도’가 정국의 전면에 등장했다. 청와대·정부가 아니라 집권여당에서 이슈를 꺼내들었다. 반응은 그리 뜨겁진 않지만 ‘행정수도’가 품고 있는 잠재적 파급력은 예측불허인지라 보수야당에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 이슈가 크게 부담스러운 눈치다. ‘정부의 부동산정책 실패를 덮기 위한 국면전환용’으로 규정, 이슈화의 명분에 흠집을 내면서 당장의 내부 동요를 차단하긴 했지만 ‘국가균형발전 반대 세력’으로 낙인찍혀 국민들로부터 버림받았던 뼈아픈 실책을 기억하고 있는 제1야당 내 유력 인사들은 ‘회피만이 능사가 아니다’라며 당 지도부의 전략 선회를 요구하고 있다. 충청권 지자체도 끝난 줄만 알았던 ‘행정수도’가 정치권에서 다시 기사회생하자 적잖이 고무된 모습이다. 집권여당이 연내 로드맵을 확정하고 2022년 3월(예정) 대선 전에 문제를 매듭짓겠다고 공언한 만큼 현안과제의 우선순위에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지방분권·균형발전 충청권 공동대책위원회는 체계적인 호응을 위해 충청권 민관정 공동추진위원회 결성을 제안한 상태다. 

세종시 전경.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제공

◆ 갑툭튀 아닌 예고된 수순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행정수도 완성’ 제안은 갑자기 툭 튀어나온 건 아니다. 그만큼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빚어진 분위기 탓이다. 국가균형발전정책은 민주당의 핵심 정책 브랜드로 노무현정부(참여정부)에서 기획하고 문재인정부에서 완성하는 수순을 밟았다. 참여정부는 공공기관 이전을 통한 마중물 사업을 펼친 것이고 문재인정부는 개헌을 통해 행정수도를 완성할 계획이었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1년 도 안 된 2018년 3월 26일 개헌안을 발의하면서 ‘신행정수도특별법 위헌 판결’이라는 시행착오를 겪지 않기 위해 ‘수도는 법률로 정한다’고 명시했고 ‘대한민국은 지방분권 국가’임을 천명하기도 했다. 지방분권이라는 큰 틀에서 수도 이전을 계획한 거다. 그러나 이 개헌안은 보수야당의 표결 불참으로 폐기(의결정족수 미달 표결 불성립)됐다. 개헌 동력을 상실한 청와대는 공을 국회로 넘겼다. 문 대통령은 지난 1월 신년기자회견에서 “개헌 추진 동력을 되살리는 것은 이제 국회의 몫이 됐다. 지금(지난 20대) 국회는 어렵겠지만 다음 국회에서라도 개헌이 지지를 받는다면 개헌이 추진될 수 있을 것이고 이에 따라 대통령도 그에 대한 입장을 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이제 때가 됐다

지난 4·15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확인했다. 박병석 국회의장은 의장 당선과 함께 개헌을 21대 국회의 화두로 던졌고 김태년 원내대표는 ‘행정수도 완성’ 의지를 드러냈다. 이 거대 정책의 당위성은 이미 검증됐다. 달라진 게 있다면 수도권 과밀화보다 지방소멸에 대한 위기감이 더 크게 다가오고 있다는 거다.

국토연구원 국가균형발전지원센터에 따르면 사상 처음으로 지난해 말 수도권 주민등록인구(2592만 5799명)가 비수도권 인구(2592만 4062명)를 추월했다. 수도권 인구 비중은 2000년 46.3%에서 2010년 49.2%까지 늘었고 급기야 지난해 50.02%를 기록했다. 수도권 인구증가율은 2000∼2019년, 연평균 0.89%인 반면 비수도권은 0.06%로 큰 격차를 보였다. 수도권 유입인구 역시 감소 추세를 이어오다 2015년부터 상승하는 추세로 전환됐다. 행정도시·혁신도시라는 정책수단으로 수도권으로의 인구 유입이 억제되긴 했지만 수도권 인구유입이 다시 급증하고 있는 만큼 행정도시·혁신도시의 수도권 인구집중 완화 효과도 한계에 도달했다는 분석이다. 새로운 동력 창출이 필요하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2018년 기준 비수도권의 모든 ‘도’지역은 모두 소멸위험지수가 1미만인 소멸주의단계, 다시 말해 인구학적인 쇠퇴 위험 단계에 진입했고 ‘광역시’ 중에서도 부산과 대구가 포함됐다. 또 전국 228개 시·군·구 가운데 소멸위험지역(지수 0.5미만)은 2013년 75곳(32.9%)에서 2018년 89곳(39%)으로 증가했다. 비수도권 소멸위험 읍면동은 같은 기간 1137곳(48.4%)에서 1360곳(57.8%)으로 늘었다. 이 같은 추세는 최근 수도권 인구유입 현황을 대입하면 더 가속화됐을 것으로 분석된다. ‘지방이 죽는다’는 아우성은 이제 단순한 비명이 아니다.

◆ 공론화의 장, 공감대 형성이 관건

‘행정수도 완성’은 여당의 추진력이 관건이다. 과밀화에 따른 만성화된 대기환경오염과 최근 불거진 ‘서울의 미친 집값’, 이보다 더 중요한 지방소멸위험성 악화 등 명분은 이미 차고 넘친다. 얼마나 세밀하게 전략을 마련하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느냐에 따라 성패가 좌우된다.

여당은 ‘행정수도 완성’ 제안이후 일주일 만에 행정수도완성추진단을 발족시켰다. ‘행정수도 완성, 꼭 필요한 일인가’, ‘과연 할 수 있는 일인가’,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 속에서 연내 로드맵을 마련할 계획이다. 추진단 부단장인 박범계 의원(대전 서구을)은 “시간에 쫓기진 않을 생각이다. 정쟁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지방분권 과제와 맞물려 행정수도 완성을 묵직하게 추진할 것”이라며 “가장 중요한 건 공감대 형성이다. 특히 수도권 설득과 비수도권 연대를 위한 소통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추진단은 3일 세종시 국회·청와대 후보지를 방문하고 13일부턴 전국순회토론회를 시작할 예정이다.

다만 현재로선 여건이 좋지 않다. 미친 서울 집값 문제가 정권의 목덜미를 쥐고 있는 상황에서 ‘행정수도 세종시 완성’ 메시지가 나오자마자 세종시 집값이 들썩이고 있다. 청와대가 행정수도 이슈와 관련해선 한 발 물러나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여건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 다만 ‘2차 공공기관 이전 확정’ 카드는 비수도권 결집의 연결고리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선 충청권이 또다시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영·호남 민심에 기대려면 충청권 혁신도시로의 공공기관 이전 규모 최소화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야당을 공론화의 장으로 끌어들이는 게 관건인데 여기서 영·호남 민심이 크게 작용할 수 있다. 여당에서도 여야 합의에 의한 특별법 제정으로 행정수도 이전을 구체화시키는 쪽에 현재까진 무게중심이 실려 있다.

이기준 기자 lkj@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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