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호오백리길] 원점회귀 코스③ 5-1구간 내탑수영장길

21개 구간으로 나뉜 대청호오백리길은 대청호반을 따라 걸을 수 있도록 만들어졌지만 본선만으론 호반의 풍경을 다 담지 못해 지선을 거느리고 있다. 대청호오백리길 5-1구간이 대표적이다. 5-1구간은 5구간의 종점이자 6구간의 출발점인 와정삼거리(대전시와 충북 옥천군의 경계)에서 시작한다. 6구간 초반이 내륙 산길로 형성된 탓에 대청호 조망이 아쉽기 때문이다. 5-1구간을 섭렵해야 이 지역 대청호반의 풍경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대청호반 트레킹 만족도를 완성할 수 있는 대청호오백리길의 ‘히든카드’인 셈이다. 특히 이 구간은 대청호 수위가 낮아졌을 때 최고의 절경을 자랑한다.

[대청호의 재발견] 대청호오백리길 원점회귀 코스

① 물과 뭍의 경계, 우린 여기서 신선이 된다
대청댐→비밀의숲→지명산(지락정)→대청정→로하스캠핑장→로하스해피로드→대청댐
② 모래곶의 향연… 발길마다 포토존
명상정원 주차장→전망데크→홀로섬→추동습지 전망좋은곳→억새데크→명상정원 주차장

③ 전설과 추억을 품은 대청호 히든카드
내탑동 와정삼거리→배알봉→고해산정상→탑봉→옛 내탑수영장(왕복) : 5-1구간 

 

    #. 봄의 문턱을 넘어     

대청호반에도 봄이 내려앉았다. 새하얀 솜털 나부끼던 억새의 계절이 가고 화려한 봄꽃의 계절이 돌아왔다. ‘봄의 전령사’ 진달래가 진분홍 꽃망울을 터트린다. 성급한 진달래는 벌써 꽃을 피웠다. 매화도 이에 질세라 화려한 자태를 뽐낸다. 소나무 이파리의 푸르름도 더욱 선명해졌다. 이름 모를 나뭇가지들도 앞다퉈 꽃잎을 드러내며 봄 기운에 반응한다. 겨우내 황량했던 숲에도 생기가 돈다.

5-1구간은 와정삼거리에서 시작해 고해산(苦海山)과 탑산으로 이어진다. 종착지점(옛 내탑수영장)까지 약 3㎞, 왕복 약 6㎞로 길지 않고 산 정상도 최고 높이가 220m 정도로 높지 않지만 얕잡아봐선 안 된다. 4개의 봉우리를 섭렵해야 하는 만큼 오르막과 내리막이 많아 약간 고되다. 길이 하나뿐이니 돌아오는 길 역시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하지만 봉우리 하나 넘을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대청호의 절경은 그 수고로움의 대가로 충분하다. 물이 많이 빠져 산길을 택하지 않고 옛 내탑수영장에서 호반을 따라 돌아 나올 수도 있지만 상당한 모험을 감수해야 한다. 자칫 ‘무모한 도전’이 될 수도 있다.      ▶▶ 무모한 도전을 택한 사람들 이야기 링크 클릭    

아래 경로는 반환점(옛 내탑수영장)에서 호반을 따라 나오는 경로.

   #. 눈에 꽂히는 섬들의 향연   

와정삼거리부터 오르막이 시작된다. 발끝에 자석이 붙은 듯 자연스럽게 봄꽃에 이끌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와정골봉(157m)을 지나고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이 구간의 최고봉인 배알봉(227m)까지 약 500m가량 오르막을 타지만 오른쪽(6구간 방면)으로 대청호가 엿보이기 시작해 한결 수월한 기분으로 산행을 즐길 수 있다. 

숨 한번 돌리고 다시 고해산 정상을 향해 발길을 옮긴다. 한참 내리막을 타다 다시 오르막을 만난다. 출발지에서 약 1.7㎞ 지점, 고해산 정상(220m)에 다다를 무렵 드디어 대청호 조망이 터진다. 붕어섬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얼마나 가물었는지 붕어섬이 육지와 거의 맞닿아 있다. 붕어섬은 인공위성 사진으로 보면 마치 붕어를 닮았다고 해서 이름 지어졌다. 사진을 보면 대청호에 ‘대왕 붕어’ 한 마리가 유유히 헤엄치는 듯하다. 가마우지섬도 눈에 들어온다. 예전엔 대청호에 반영된 모습이 햄버거 같다고 해서 ‘햄버거섬’으로 불렸는데 언제부턴가 가마우지들이 이 섬을 점령해 섬 전체가 하얗게 변했다. 

고해산 정상 무렵에서 만나는 대청호 풍경. 가운데 큰 섬이 붕어섬이고, 오른쪽 작게 보이는 섬이 가마우지섬이다. 붕어섬 뒤로는 핫플이 된 방축골도 보인다. 
고해산 정상 무렵에서 만나는 대청호 풍경. 가운데 큰 섬이 붕어섬이고, 오른쪽 작게 보이는 섬이 가마우지섬이다. 붕어섬 뒤로는 핫플이 된 방축골도 보인다. 
햄버거섬으로 불리다가 가마우지에 점령 당해 백화현상으로 하얗게 돼버린 가마우지섬. 
햄버거섬으로 불리다가 가마우지에 점령 당해 백화현상으로 하얗게 돼버린 가마우지섬. 

고해산은 약해산(若海山)으로도 불린다. 한자 그대로 뜻풀이를 해보면 ‘마치 바다와 같다’는 의미인데 실제 이곳에서 바라보는 대청호는 섬들의 향연이 펼쳐지는 바다와 같다. 대청호가 ‘내륙의 다도해’로 불리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능선을 따라 다시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된다. 탑봉(140m)으로 향하는 길이다. 봄꽃과 대청호 조망에 취해 무턱대고 걸었다간 중간에 다른 길로 샐 수도 있다. 출발지에서 약 2.2㎞ 지점에서 탑산(탑봉)을 향해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야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급한 내리막을 지나 다시 오르막에서 조금 힘을 내면 탑봉에 도착한다. 탑산은 전설 하나를 간직하고 있다. 조선 초기에 여름 장마가 있었는데 전라도 무주 구천동에 있던 산이 금강을 따라 떠내려와 지금 이곳에서 멈췄다는 것이다. 이 소문이 퍼지자 무주에 사는 산 주인이 내탑으로 와서 주민들에게 산값을 치르라고 하자 이곳 주민들은 필요 없으니 다시 가져가라고 했고 산 주인은 어쩔 수 없이 그냥 돌아오고 말았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고해산에 탑산이 붙어 있는 꼴이니 그도 그럴듯하다. 이곳의 행정지명은 대전 동구 내탑동인데 이 지명은 탑산 안쪽 마을이라는 의미다. 이곳에 탑이 하나 있었는데 산 이름도, 마을 이름도 여기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 끝의 절정, 절정의 끝    

탑봉 위치를 확인한 뒤 다시 내리막을 탄다. 경사가 가팔라 조심해야 한다. 잔뜩 힘이 들어간 다리에 긴장이 풀리는 순간, 드디어 끝의 절정에서 절정의 끝을 맛본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장관이 눈앞에 펼쳐진다. 낯선 이국적 풍경이 오감을 자극한다. 바다 한가운데 외딴 섬에 홀로 남겨져 그 누구의 구속도 받지 않는 ‘해방구’에 선 느낌이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느낌, 그 고독의 순간이 고스란히 환희로 치환되고 그 환희의  설렘은 ‘나’를 내려놓게 만든다. 그리고 온전히 자연에 동화돼 완벽한 ‘휴식’을 경험한다. 가끔 배 한 척이 요란한 사이렌을 울리며 다가와 확성기로 ‘낚시 금지’ 등을 고지할 때만 빼고 말이다.

5-1구간은 내탑수영장의 추억을 따라잡는 여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몰 전 내탑동에서 나고 자란 실향민들은 지금도 이곳을 찾아 빛바랜 옛 사진 속 동네 풍경을 오버랩시키며 추억을 되살리곤 한다. 지금은 방앗간, 약방, 장터, 이발소, 자장면집, 가장 늦게 들어섰던 중학교까지 모두 물에 잠겼다. 가장 많이 회자되는 이야기는 바로 오래 전 이 동네에서 문을 연 야외 수영장이다. 고속도로가 뚫리고 자동차가 보급되기 시작한 1970년대 들어서면서 대전에 두 개의 수영장이 개장했는데 지금의 신탄진철교 아래에 있던 신탄진수영장과 바로 이곳 내탑수영장이다.

 

수몰 전엔 여름이면 비포장 도로를 달려 수영장으로 사람들이 몰려와 금강(내탑강) 백사장에서 피서를 즐겼다. 대청댐 건설로 호수가 된 뒤론 마을 중심부 전체가 물에 잠기고 말았다. ‘내탑동’이라는 법정동 지명만 남았을 뿐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다. 5-1구간의 끝, 이곳 모래곶에서 파라솔 즐비했던 옛 내탑수영장의 모습을 더듬어 볼 뿐이다.

가뭄 탓에 이곳 모래곶은 더욱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물이 빠지면서 예전과는 또 다른 새하얀 백사장이 펼쳐진다. 모래곶의 지층엔 대청호 수위가 고스란히 새겨져 40년 세월의 흐름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글=이기준 기자 lkj@ggilbo.com
사진=이기준·김동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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