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호오백리길 원점회귀 코스] ⑩ 청남대

걷기의 즐거움이 더욱 증폭되는 가을, 대청호반의 풍경도 무르익어간다. 신록(新綠)의 싱그러움이 가득했던 대청호반의 숲 나무들은 짙은 초록을 지나 형형색색 단풍으로 물들 채비를 하고 있다. 추석 연휴 이후 아침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고 이로 인해 일교차도 커지면서 나뭇잎의 가을맞이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 충청권 단풍은 20일을 전후로 시작돼 이달 말 절정에 이를 전망이다. 대청호반도 이제 다시 긴 휴식기에 접어들 시점이 다가오고 있는 거다.

#. 완연한 가을

가을의 길목, 이번 대청호오백리길 여정은 청남대(靑南臺)다. 청남대에 조성된 테마길을 크게 휘돌아 전망대까지 섭렵하는 코스로 약 8.5㎞ 구간이다. 대청호오백리길은 공식 구간에 청남대를 포함하진 않고 충북 방향 외곽 경계를 따라 이어지는데 청남대가 대청호반의 가을 정취를 느끼기에 안성맞춤이라 청남대를 한 바퀴 도는 것으로 트레킹 코스를 잡았다.

 

대청호오백리길 원점회귀 코스

① 물과 뭍의 경계, 우린 여기서 신선이 된다
대청댐→비밀의숲→지명산(지락정)→대청정→로하스캠핑장→로하스해피로드→대청댐

② 모래곶의 향연… 발길마다 포토존
명상정원 주차장→전망데크→홀로섬→추동습지 전망좋은곳→억새데크→명상정원 주차장

③ 전설과 추억을 품은 대청호 히든카드
내탑동 와정삼거리→배알봉→고해산정상→탑봉→옛 내탑수영장(왕복) : 5-1구간 

④ 대청호 벚꽃 로드, 벚꽃이 전부가 아니다
벚꽃한터(대전 동구 신상동)→흥진마을길→오동선벚꽃길→방축골→벚꽃한터

⑤ 깨어나는 백제 흥망의 역사
찬샘마을→노고산성→찬샘정→성치산성→찬샘마을

⑥ 금강과 대청호, 따로 또 같이
대청수상레포츠센터(로하스타워1)→대청조정지댐→민평기가옥→강촌마을→이촌마을→보조여수로→로하스캠핑장→미호교→조정지댐 건너서→노산리솔밭자연유원지→대청대교→대청수상레포츠센터

⑦ 바위처럼 연꽃처럼
대청호자연수변공원 주차장(사진창고) → 황새바위 → 거북바위 → 연꽃마을 → 대청호자연수변공원 주차장

⑧ 발길마다 이국적 풍광    
명상정원한터1→류영은 기념재단(류영은 기념관)→명상정원→더리스→3구간 도착지→동파정→더리스→명상정원 (& 미륵원·관동묘려)

⑨ 백골산성 뷰의 중독성 
신촌한터(대전 동구 신촌동)→구절골→방축골→신절골→백골산성→신절골→신촌한터

⑩ 청남대 : 봉황탑 vs 제1전망대  

 

#. 대통령의 별장, 청남대

대청호오백리길 19구간의 이름은 ‘청남대사색길’이다. 청주 문의에서 청남대로 진입하는 구간이 속해 있어서다. 청남대 제2관문에 들어설 즈음부터 도로 양쪽엔 높이 솟은 가로수들이 웅장한 숲을 이룬다. 청남대는 ‘대통령의 별장’이었던 만큼 경관 관리가 잘 돼 가로수부터 일상의 풍경과는 사뭇 다른, 정제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도로를 따라 길을 걷다보면 무거운 적막감 속에서 자연스럽게 사색에 빠지게 된다. 이 맛에 해마다 봄·가을이면 아침부터 관광버스들이 줄을 잇는다.

청남대는 1980년 대청댐 준공식에 참석한 전두환 대통령이 대청호 일대 경관에 매료돼 별장 건립을 지시함에 따라 건립이 가시화됐다. 1983년 6월에 착공해 그해 12월 완공됐다. 준공 당시엔 ‘봄을 맞이하듯 손님을 맞이한다’는 의미에서 영춘재(迎春齋)로 명명됐지만 3년 뒤 ‘따뜻한 남쪽의 청와대’라는 의미의 청남대로 개칭돼 오늘에 이른다.

청남대는 대통령만 이용할 수 있는 은밀한 휴식공간으로 줄곧 그 기능을 했지만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청와대 관리권을 충북도로 이양하면서 건립 20년 만에 민간에 개방됐고 그 이후로 다시 20년이 흘렀다. 민간 개방 전엔 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매년 4∼5회, 많게는 7∼8회씩 청남대를 이용(20년간 88회, 471일)했다. 역대 대통령들은 국정운영의 중대 고비에서 청남대에 머물며 정국에 대한 구상을 했고 휴가 뒤 중대 결단을 발표하곤 했는데 이것이 바로 ‘청남대 구상’이라는 이름으로 회자된다. ‘청남대 구상’이라는 용어는 역대 대통령 중 청남대를 가장 많이 찾은 김영삼(YS) 전 대통령에 의해 만들어졌다. YS는 1993년 하계휴가차 이곳에 머물며 금융실명제 시행 결정을 내리고 휴가가 끝나자마자 이를 발표했는데 이때부터 대통령이 청남대를 방문하면 휴가 뒤 어떤 ‘청남대 구상’이 발표될지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김대중(DJ) 전 대통령도 YS와 마찬가지로 청남대에서 여러 정책 현안을 구상했다. 1999년 여름엔 자신이 총재를 맡았던 새정치국민회의의 당직 개편안을 구상했고 2000년 5월엔 남북정상회담을 이곳에서 준비했으며 2002년 연말 휴가 땐 박지원 당시 비서실장을 불러 동교동계 해체를 지시하기도 했다고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청남대를 마지막으로 이용한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2003년 4월 17∼18일, 이틀 머물렀는데 당시 야3당 대표를 초청해 골프 라운딩을 하고 삼겹살 만찬을 한 뒤 1박 후 청남대 관리권을 충북도로 이양했다. 민간 개방 이후 청남대는 지속적인 시설 확충을 거치며 184만 4843㎡ 규모의 공원으로 재탄생했다. 지금도 관광인프라 확충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개방 이후 20년간 1400여만 명이 청남대를 다녀갔다.

#. 가을 그리고 사색

청남대는 그 자체로 완성도가 어느 정도 보장된 트레킹 코스다. 대청호를 향해 뻗어 나온 3개의 반도 지형과 2개의 전망대가 있는 등산로를 따라 걸으며 대통령의 발자취를 더듬어보는 재미를 즐길 수 있다. 민간 개방 이후 청남대는 반도 지형 산책로에 이곳을 다녀간 대통령의 이름을 붙였는데 지금은 구간별 테마에 맞게 산책로 이름을 변경했다. 정문 매표소부터 호반길, 솔바람길, 나라사랑길, 오각정길, 민주화의길, 화합의길, 통일의길 등이 있다. 데크길로 정비가 잘 돼 있어 휠체어 이동이 가능한 산책로도 상당하다.

매표소에서 청남대로 진입하면 가장 먼저 만나는 건물은 하늘정원이다. 건물 옥상이 정원으로 꾸며져 있어 대청호 경치 한 번 둘러보고 워밍업을 하기에 좋다.

청남대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곳은 메타세쿼이아숲길이다. 높고 곧게 뻗은 메타세쿼이아의 청량한 연초록빛과 파란 가을하늘이 어우러진 풍경이 안구를 제대로 정화해 준다. 바로 옆엔 음악분수가 있는 연못(양어장)이 조성돼 있는데 메타세쿼이아 숲에서 가만히 앉아 휴식을 청하면 오감이 동시에 열리는 마법을 경험하게 된다.

최근 청남대엔 또 하나의 볼거리가 생겼다. 바로 봉황탑이다. 원형 탑 형태의 이 전망대는 해발 고도 약 250m에 위치한 청남대 제1전망대에 오르지 않고도 대청호의 풍광을 눈에 담을 수 있도록 조성됐다. 봉황탑 근처엔 오각정(五角亭)이 있다. 1983년 본관 신축 당시 건립돼 이곳을 방문한 대통령들로부터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아온 산책코스에 위치해 있다. 오각정에서 본관 건물로 가는 길엔 작은 계곡을 잇는 석교가 있는데 원래 이 다리는 나무로 만들어졌지만 김영삼 대통령 재임 시절 석교로 재시공됐다. 좀 더 걸으면 눈길을 사로잡는 나무 한 그루를 발견하게 되는데 이 느티나무는 신기하게도 엉덩이를 갖고 있다.

휴가 중 대통령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을 본관 건물 주변엔 쉽사리 보기 힘든 소나무들이 즐비하다. 껍질이 벗겨지면서 회백색을 띠는 백송과 금송, 우산 모양(반원형)의 반송 등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어울림마당을 끼고 돌아 다시 호반길에 들어서면 넓은 잔디밭에 마련된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이 눈에 들어온다. 예전에 이곳은 골프코스였다. 이 기념관보다 더 눈길을 끄는 건 오래된 동굴에서 볼 수 있는 석순(石筍)처럼 바닥에서 올라온 기근들이다. 이곳 잔디밭 주변엔 낙우송들이 식재돼 있는데 이 기근들은 낙우송의 뿌리들이다. 물가에서 자라는 낙우송은 자라면서 뿌리가 땅 밖으로 튀어나와 기근(공기 뿌리)으로 발달하는데 이곳을 통해 뿌리가 호흡한다고 한다.

#. 산책에서 등산으로

호반길의 끝자락엔 김대중 대통령 재임 시절 조성된 초가정이 있다. 정자에 걸터앉으면 한없이 평화로운 대청호의 풍경에 빠져든다. 김 전 대통령은 이곳에서 사색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초가정부턴 등산로가 이어진다. 전망대로 가는 길인데 이름하여 통일의 길이다. 경사가 그리 가파르진 않지만 산책로와는 분명 다른, 땀을 좀 흘려야 하는 코스(제1전망대까지 약 1.6㎞)가 이어진다. 초가정에서 800m 지점에 출렁다리가 있고 거기서 다시 800m 정도 더 가면 제1전망대에 도달한다. 출렁다리에서 112계단, 그다음 80계단, 또다시 185계단, 쉼 없이 오르막이 이어진다. 남북 통일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그래도 언제나 끝은 있다. 전망대에 오르면 오르막의 고통은 한순간에 씻은 듯이 사라진다. 이 짜릿한 기분을 느끼기 위해 사람들은 또 오르고 또 오른다.
글=이기준 기자 lkj@ggilbo.com
사진=차철호·김동직 기자

 

  청남대 주변 가볼만한 곳   

■ 작은 용굴

청남대 주변엔 ‘작은 용굴’(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상장리 산 46-8)이 있다. 석회암 동굴 유적으로 이 굴에서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있어 용굴이라 전해진다. 석회암 지대에 발달된 수평동굴로 크기는 입구 너비 약 2.6m, 높이 약 3.5m, 길이 약 60m이며 입구부터 32m 되는 곳에 광장이 있다. 선사시대 생활터전으로 이용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작은 용굴은 위치상 청원 두루봉동굴, 큰용굴, 그리고 대청댐으로 수몰된 청원 샘골유적과 가까운 거리에 있고 금강과도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지만 현재 청원 두루봉동굴, 큰용굴, 샘골유적 등은 그 흔적을 찾을 수 없고 작은 용굴만 그 형상을 보존하고 있다.

 

■ 문의문화재단지

문의문화재단지(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대청호반로 721)는 대청호 수몰지역 유물들을 모아 조성됐고 지금은 인류문명의 발달과 급속한 산업화에 따라 사라져 가고 있는 우리의 고유 전통문화를 재현해 조상의 삶과 얼을 되살리고 배우기 위한 역사의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지방유형문화재 제49호인 문산관을 비롯해 전통가옥, 민속자료전시관등 10동의 고건물과 장승, 연자방아, 성황당 등 옛 생활터전을 재현했다. 만추(晩秋)의 계절엔 단풍과 어우러져 고풍스러움을 더한다. 문의문화재단지와 연계해 청남대까지 이어지는 대청댐 주변의 수려한 자연경관은 하루 드라이브 코스와 여름휴양지로 인기를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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