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호오백리길] 원점회귀 코스  
  ⑦ 황새바위·거북바위 & 연꽃마을  

지긋지긋한 장마의 기세가 한풀 꺾이자 오랜만에 파란 하늘이 모습을 드러냈다. 잔뜩 찌푸린 먹구름이 걷히자 대청호도 다시 생명감 있는 푸른 빛으로 걷는 이를 맞이한다. 정체전선이 물러간 자리는 덥고 습한 공기로 채워졌다. 장마가 소강상태를 보이니 곧장 폭염이다. 섭씨 33도 안팎의 찜통더위는 걷는 이의 발길을 붙잡기에 충분한 족쇄지만 ‘걷기 본능’까지 사그라트리진 못한다. 어딘가엔 항상 그늘이 있고 그 그늘은 더위에 지친 심신을 충전해주기에 충분한 ‘시원한 에너지’를 공급해주기 때문이다. 대청호오백리길의 여름은 그래서 두렵지 않다.

 

[대청호의 재발견] 대청호오백리길 원점회귀 코스

① 물과 뭍의 경계, 우린 여기서 신선이 된다
대청댐→비밀의숲→지명산(지락정)→대청정→로하스캠핑장→로하스해피로드→대청댐

② 모래곶의 향연… 발길마다 포토존
명상정원 주차장→전망데크→홀로섬→추동습지 전망좋은곳→억새데크→명상정원 주차장

③ 전설과 추억을 품은 대청호 히든카드
내탑동 와정삼거리→배알봉→고해산정상→탑봉→옛 내탑수영장(왕복) : 5-1구간 

④ 대청호 벚꽃 로드, 벚꽃이 전부가 아니다
벚꽃한터(대전 동구 신상동)→흥진마을길→오동선벚꽃길→방축골→벚꽃한터

⑤ 깨어나는 백제 흥망의 역사
찬샘마을→노고산성→찬샘정→성치산성→찬샘마을

⑥ 금강과 대청호, 따로 또 같이 (로하스 해피로드 & 강촌·이촌마을)
대청수상레포츠센터(로하스타워1)→대청조정지댐→민평기가옥→강촌마을→이촌마을→보조여수로→로하스캠핑장→미호교→조정지댐 건너서→노산리솔밭자연유원지→대청대교→대청수상레포츠센터

⑦ 바위처럼 연꽃처럼
대청호자연수변공원 주차장(사진창고) → 황새바위 → 거북바위 → 연꽃마을 → 대청호자연수변공원 주차장
 

 

 

  나무 그늘 아래  

이번 대청호오백리길 원점회귀 코스는 동구 추동 대청호자연수변공원에서 출발해 황새바위, 거북바위, 연꽃마을을 거쳐 대청호반을 돌아나오는 여정이다. 거리는 약 4.5㎞, 폭염 상황에 무리하지 않고 걷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을 정도로만 코스를 잡았다. 대부분 가파른 오르막내리막이 없는 평탄한 숲길이라 유유자적 걷기에 좋고 곳곳에 흥미로운 이야기도 숨어 있어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랬다
몹시 더운 날이었다
사나운 장마만큼 볕도 뜨거웠다
그러나 걷기본능은 기죽지 않는다
대청호엔 안구정화 풍경이 있고
에너지를 충전하는 그늘이 있고
옆엔 같이 걷는 동지들이 있다
대청호오백리길의 여름은
그래서 두렵지 않다

4구간은 핫플 명상정원과
바람의 언덕이 가장 핫하지만
인접한 오늘 코스도 빼어나다
잘 알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길지도 짧지도 않은 호반길
바위의 전설과 연꽃을 만나고
바위처럼 연꽃처럼 살아가는
그곳 마을사람들과 차 한 잔
세상은 그렇게 더웠지만
이곳은
무릉도원 같았다

대청호자연수변공원 인근 주차장에 차를 대고 데크길을 걷다 봉산농장에서 대청호반으로 꺾어 들어간다. 황새바위 방향을 가리키는 푯말 앞, 나비 한 마리가 마중나와 길을 안내한다. 그윽한 풀내음 풍기는 목책길을 따라 길을 걷는다. 눈부신 햇살이 사라지고 시원한 나무 그늘이 펼쳐진다. 누가 여름 아니랄까 매미들이 귀따갑게 울어댄다. 그래도 그 울음의 의미를 아는 이상 싫은 기색을 보일 순 없다.

매미는 애벌레(유충)의 형태로 태어나자마자 땅속을 파고든다. 천적을 피해 살기 위해서다. 땅속에서 성충이 되기 위해 4번 정도 허물을 벗는데 그 인고의 시간이 자그마치 7년이다. 마지막 허물을 벗으면 눈이 생기고 그때가 돼야 겨우 땅 위로 기어오를 수 있다. 이때부터 매미의 일생은 바빠진다. 나무에 매달려 마지막 탈피 과정을 거친 뒤 성충이 되면 사력을 다해 울어야 한다. 짝짓기를 위해서다. 7년을 기다려 짝짓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3주. 짝짓기에 성공한 암컷은 알을 낳으면 곧바로 그 자리에서 죽고 수컷도 얼마 지나지 않아 생을 마감한다. 오로지 짝짓기를 위해 7년의 시간을 버텨 땅 위로 올라왔으니 그 울음소리는 처절할 정도로 애절할 수밖에 없다.

 

거북바위. 거북 형상이 뚜렷하다. 연꽃마을 최병옥 씨 제공

   바위의 전설   

대청호의 여름 풍경을 바라보며 쉬엄쉬엄 숲길을 걷다 보면 널찍한 쉼터가 반긴다. 황새바위의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곳이라는데 쉼터 옆 커다란 바위에서 황새의 기품을 찾아보긴 어렵다. 구전에 의하면 대청호가 조성되기 전 금강에서 이 바위를 바라보면 황새가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이라고 해서 황새바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는데 지금은 알 길이 없다. 다만 훗날 이 황새바위에 얽힌 사연을 누군가 창작했는데 이름하여 황새바위의 전설이다.

‘대청호오백리길 통통투어’ 안내판에 새겨진 QR코드에 휴대폰을 갖다 대면 황새바위 전설에 관한 영상을 볼 수 있다. “옛날 이곳에 황새와 거북이가 살았는데…”로 시작하는 이 창작전설을 쉼터 정자에 마련된 평상에 앉아 조용히 음미하며 금강이 흐르던 옛 내탑마을의 모습을 가늠해 본다.

황새바위를 뒤로 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이번 대청호오백리길 여정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역시 호숫가 바위들의 향연이다. 공룡알처럼 크고 동그란 바위들이 줄지어 놓여 있어 이색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시선이 바뀌면 공룡알들의 형상도 시시각각 변한다. 늘 새로운 볼거리를 발견할 수 있다는 의미다.

수많은 바위 가운데 연꽃마을로 접어드는 모래곶 끝자락에 유독 눈에 들어오는 바위가 있다. 바로 ‘거북바위’다. 이리 보고 저리 보고 유심히 바라보면 곧 거북이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이미징돼 눈앞에 형체를 드러낸다. 거북등에 앉아 고요한 대청호의 풍경을 또 한 번 눈에 담는다. 바람 한 점 없어 거울처럼 잔잔한 대청호는 파란 하늘과 숲속 나무 하나하나 선명하게 투영한다.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호수인가.

이 거북바위도 전설 하나를 간직하고 있는데 이 이야기도 ‘대청호오백리길 통통투어’ 안내판에 새겨진 QR코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예술인 모여사는 연꽃마을   

껍질 벗는 신기한 공룡알 바위들과 거북바위를 뒤로 하고 다시 길을 잡는다. 예술인들이 모여사는 연꽃마을로 접어든다. 시구절 가득한 나무 푯말들이 정겹다. 장덕천 시인이 기거했던 ‘글사랑 놋다리집’을 가장 먼저 만난다. 집 주변 곳곳엔 대청호라는 자연과 시인이 맺어온 인연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는 주옥같은 시를 담은 푯말들이 즐비하다. 이웃집은 대청호오백리길에서 만나는 작은 미술관, 송영호 화백의 화실이다. 잘 가꿔진 아기자기한 정원이 발길을 붙잡는다.

송영호 화실.
송영호 화실.
송영호 화백(왼쪽)과 이기준 기자. 송 화백은 어김없이 오늘도 차 한 잔을 건넸다. 예전처럼.
송영호 화백(왼쪽)과 이기준 기자. 송 화백은 어김없이 오늘도 차 한 잔을 건넸다. 예전처럼.

(2015년에 만난 송영호 화백)
ㄴ 연꽃마을 송영호 화백이 건넨 차 한 잔

정원에 눈길 사로잡혀 저절로 집 마당에 들어서게 되는데 이곳 쥔장은 귀찮을 법도 하지만 오는 손님 마다않고 차 한 잔 내놓는다. 운이 좋다면 송 화백이 애지중지하는 유화나 수채화 작품들도 감상할 수 있다. 세월을 이기는 장사 없듯 송 화백도 나이가 들어 작품 활동이 뜸하지만 서울이나 부산 등 타지에서 이따금 들어오는 초대전에 참여, 대청호와 벗하며 그려낸 삶을 반추해 본단다. 예전엔 제주도 전통 집마다 대문 역할을 하는 ‘정낭’이라는 긴 나무막대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아예 열어놓고 산다. 이 역시 세월의 무게 탓이리라.

송영호 화실 옆집은 ‘연꽃마을’이라는 이름의 연꽃정원이다. 이번 대청호오백리길 여정의 하이라이트가 될 것으로 생각했지만 올해엔 연꽃 개화가 늦어 한껏 부풀어 올랐던 기대감을 접는다. 이달 말이나 8월 초에 영롱한 연꽃의 자태를 감상할 수 있을 거란다. 이곳 쥔장은 대청호가 잘 보이는 연꽃정원 입구에 기다란 나무 테이블을 깔아놨다. 한쪽에선 연꽃정원을 감상할 수 있고 다른 한쪽에선 시원한 아이스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며 대청호의 풍경을 조망할 수 있다.

글=이기준 기자 lkj@ggilbo.com
사진=차철호·김동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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