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호오백리길] 원점회귀 코스 ⑧명상정원 & 미륵원·관동묘려

절기(節氣)는 가을을 향해 달려가는데 2023년 올 여름 더위는 쉬이 가시질 않는다. 모기 입도 돌아간다는 처서(處暑)를 지났지만 찜통더위의 기세는 식을 줄 모른다. 돌이켜보면 올해는 연초부터 이상기후의 조짐이 뚜렷했다. 따뜻한 봄바람이 일찍 불어오면서 벚꽃 개화가 지난해에 비해 2주 가까이 일찍 시작됐고 여름 장마 역시 역대급 집중호우로 곳곳에 큰 상처를 남겼다. 장마 뒤 폭염 역시 그 기세가 무섭다. 학계에선 이대로 가다간 우리나라도 ‘온난화’가 아니라 ‘열화’에 대비해야 할 때가 머지않았다는 경고도 나온다. 현세의 삶이 편리해질수록 후세의 삶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데 기후위기에 대한 국가 차원의 대응은 너무 한가로워 보인다.

 

대청호오백리길 원점회귀 코스

① 물과 뭍의 경계, 우린 여기서 신선이 된다
대청댐→비밀의숲→지명산(지락정)→대청정→로하스캠핑장→로하스해피로드→대청댐

② 모래곶의 향연… 발길마다 포토존
명상정원 주차장→전망데크→홀로섬→추동습지 전망좋은곳→억새데크→명상정원 주차장

③ 전설과 추억을 품은 대청호 히든카드
내탑동 와정삼거리→배알봉→고해산정상→탑봉→옛 내탑수영장(왕복) : 5-1구간 

④ 대청호 벚꽃 로드, 벚꽃이 전부가 아니다
벚꽃한터(대전 동구 신상동)→흥진마을길→오동선벚꽃길→방축골→벚꽃한터

⑤ 깨어나는 백제 흥망의 역사
찬샘마을→노고산성→찬샘정→성치산성→찬샘마을

⑥ 금강과 대청호, 따로 또 같이 (로하스 해피로드 & 강촌·이촌마을)
대청수상레포츠센터(로하스타워1)→대청조정지댐→민평기가옥→강촌마을→이촌마을→보조여수로→로하스캠핑장→미호교→조정지댐 건너서→노산리솔밭자연유원지→대청대교→대청수상레포츠센터

⑦ 바위처럼 연꽃처럼
대청호자연수변공원 주차장(사진창고) → 황새바위 → 거북바위 → 연꽃마을 → 대청호자연수변공원 주차장

⑧ 발길마다 이국적 풍광, 돌아서니 옛이야기 들려주는    
명상정원한터1→류영은 기념재단(류영은 기념관)→명상정원→더리스→3구간 도착지→동파정→더리스→명상정원 (& 미륵원·관동묘려)

 

   입추와 처서 사이   

이번 대청호오백리길 원점회귀 여정의 테마는 ‘여유 있는 산책’이다. 더위가 잊힐 만큼 충분히 매력적인 볼거리도 많고 쉼터도 많다. 호수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은 덤이다. 코스는 4구간 ‘명상정원한터1’에서 시작해 호반을 따라 걷다 3구간과 4구간이 만나는 지점에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약 6.5㎞ 코스다. 쉬엄쉬엄 2시간이면 충분하다. 대부분이 숲길, 데크길로 이뤄져 있어 편안하게 걸을 수 있다. 여정은 입추와 처서 사이인 18일 이뤄졌다.

   명불허전 명상정원   

대청호오백리길 4구간에 새로운 시설물이 들어섰다. 류영은 기념재단(류영은 기념관)인데 이곳엔 유리온실이 있는 재단 사무실과 매리골드라는 이름의 마산동 마을공동구판장이다. 마을구판장 역시 재단의 기부로 마련된 듯하다. 9월경 오픈할 예정이라는데 대청호오백리길 4구간의 새로운 명소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인다.

류영은 기념재단 류영은 기념관.
류영은 기념재단 류영은 기념관.
류영은 기념재단 류영은 기념관.
류영은 기념재단 류영은 기념관.

이 재단은 젊은 나이에 암 투병으로 생을 마감한 류영은(1996년생) 씨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설립됐다고 전해진다. 류 씨는 2004년부터 미국에서 수학하며 워싱턴주립대에서 약학박사 과정까지 수료했지만 결국 지난해 8월 세상을 떠났다. 류 씨의 가족들은 100억 원을 출연해 암 환우를 지원하기 위한 재단을 류 씨 아버지의 고향인 이곳에 설립, 류 씨를 재단 명예이사장으로 추대했다고 한다.

오픈이 기대되는 류영은 기념재단을 뒤로하고 본격적인 호반 산책에 나선다. 뭉게구름 가득한 하늘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대청호의 풍경을 눈에 담으며 잘 정돈된 데크길을 걷는다. 올 여름 많은 비가 내린 탓에 대청호 수위는 여느 때보다 많이 올라왔고 그래서 대청호오백리길 4구간의 ‘홀로섬’들도 머리 부분만 빼꼼히 형체를 드러낸다.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에 더위도 잠시 물러난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대청호의 멋진 풍광을 만끽하다 보면 어느새 명상정원에 도달한다. 과하지 않게 정돈된 이 쉼터는 정원 조성공사가 끝나자마자 대청호오백리길의 최고 명소로 떠올랐다. 한여름, 평일인데도 찾는 사람들이 많다. 사람들은 SNS에 올릴 인생샷을 뽑아내느라 정신이 없다. 입소문을 타면서 외국인들도 심심찮게 이곳을 찾는다.

이곳의 주인은 누가 뭐라해도 ‘거위’들이다. 오래전부터 이곳에 터를 잡고 서식하는 이 거위들은 대청호를 찾는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몸단장하는 거위들과 노닐기도 하고 그늘진 벤치에 앉아 시원하게 펼쳐진 호수의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사색에 잠기기도 하면서 가슴 한 켠 무겁게 자리 잡은 시름을 잠시 내려놓는다. 한여름의 오후 한때가 한가롭게 그렇게 지나간다.

   차 한 잔의 여유   

명상정원 모래곶을 끼고 돌아 호반을 유유자적 다시 걷는다. 한 걸음 한 걸음 발길을 옮길 때마다 대청호는 또 다른, 새로운 모습으로 걷는 이들에게 절경을 선사한다. 자연스럽게 안구는 정화되고 무거웠던 마음은 힐링의 매직을 경험한다. 관광자원으로서의 대청호가 아니라 자연에 동화되는 삶의 일부로서 대청호는 충분한 매력과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그림같이 아름답게 펼쳐진 대청호에 시선을 빼앗겨 더 깊숙한 곳으로 이끌리듯 걸어간다. 자석에 이끌린 듯 한 걸음씩 나아가다 보면 발걸음은 어느새 너른 잔디밭이 펼쳐져 있는 한 카페에 도달한다. 3구간의 종점이자 4구간의 출발지점에 있는 이 카페는 오래전부터 걷는 이들에게 휴식의 공간을 제공해 온 곳이다. 대청호오백리길 주변 카페 중에선 규모가 가장 큰 이 카페는 가장 좋은 대청호 조망도 선사한다.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면서 잠시 쉬어가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체력 충전을 했으니 다시 길을 나선다. 나지막한 산 하나를 더 섭렵한다. 4구간 출발점(마산한터)에 있는 이 산 역시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데 이 산 전체가 은진송씨 가문의 가족묘들로 가득 차 있다. 대청호오백리길에선 하나의 진리가 있는데 바로 묘지가 있는 곳이 바로 대청호 뷰 명당이라는 것이다. 호반을 따라 걷다보면 동파정(東坡亭)이라는 정자 하나가 있는데 이 이름 역시 은진송씨의 한 분파(동파공파)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글=이기준 기자 lkj@ggilbo.com
사진=차철호·김동직 기자

베푸는 삶, 그리고 곧은 절개

여기까지 와서 삶의 나침반이 될 수도 있는 역사유적을 보고 가지 않을 수 없다. 3구간 말미에서 만나는 미륵원지와 관동묘려다.

미륵원(彌勒院)은 고려 말기에 회덕황씨의 시조 황윤보가 건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여관이자 대전지역 최초의 민간사회복지시설이다. 대청댐 건설과 함께 대청호가 조성되기 전 지금의 위치보다 한참 아래쪽에 있었는데 후손들이 남루의 자재 일부만 가져다 현재의 장소에다 단층 형태로 이축했다. 발굴조사 기록에 따르면 당초 미륵원엔 3채 이상의 건물이 배치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단층을 정(亭)이라 하고 2층 이상의 정자를 루(樓)라고 했으니 아마도 남루(南樓)는 2층으로 지어졌을 것으로 짐작된다.

미륵원
미륵원
미륵원 남루
미륵원 남루

미륵원이 있었던 곳은 예전엔 영남과 호남에서 한양으로 가는 큰 길이 있었던 곳이었는데 미륵원의 역할에 대해선 여말삼은(麗末三隱)의 한 명인 목은 이색이 기록한 회덕현 미륵원남루기(彌勒院南樓記)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황윤보과 그의 아들 황연기, 그리고 황수에 이르기까지 3대에 걸쳐 지친 나그네들에게 봉사한 기록이다.

미륵원남루기는 황수의 요청에 의해 이뤄졌는데 당시 역사를 기록하던 이색은 이렇게 썼다. ‘미륵원을 세워 바람과 비를 막게 하고 누각을 세워서 화염과 같은 열기를 피하게 하며 탕을 주어서 얼어붙은 배를 따뜻하게 해주고 채소로 구미를 돋워 주니 행려자가 황씨의 혜택을 받음이 많다. 황씨 부자가 사랑하고 효도하고 우애하고 공경해 남에게 널리 베푸는 것이 이와 같으니 이는 사관(史官)이 마땅히 기록할 바다. 이 소식을 들을 때 영사사(領史事)인 내가 서둘러서 이를 기록한다.’ 그러면서 이색은 ‘好施者 仁人長者之事也(호시자 인인장자지사야)’라고 하며 선행을 칭송했다. ‘베풀기를 좋아하는 것은 어진 사람, 큰 덕이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라는 의미다. 하륜, 변계량, 정인지, 송시열 등 당대 내로라는 인물들이 남긴 제영기(題詠記)들은 미륵원의 위상을 짐작게 한다. 현재 남아 있는 미륵원 남루 안에선 이들의 다양한 제영기를 볼 수 있다.

얼마 전까지 이곳에선 회덕 황씨의 시조 황윤보의 13대손 황경식 씨와 종부 육애숙 할머니가 함께 미륵원 건물 가운데 유일하게 남은 남루를 지키며 살고 있었는데 지금은 아무도 없이 건물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미륵원 인근엔 관동묘려(寬洞墓廬·관동마을에 있는 묘를 돌보는 집)와 은진송씨의 회덕 입향시조인 송명의 선생 유허비, 은진송씨 시조부터 4세까지 위패를 봉안하고 제향을 지내는 추원사 등 은진송씨 유적이 모여 있다.

관동묘려
관동묘려
추원사
추원사
성행교
성행교

관동묘려는 쌍청당 송유가 그의 어머니인 고흥 류씨의 장례를 치른 뒤 만든 재실이다. 류씨 부인은 송극기의 아내였는데 송극기는 송명의의 아들이다. 송극기는 젊은 나이에 성균관 진사로 선발돼 개성에 살았는데 단명하고 만다. 당시 외아들이 있었는데 그의 나이 네 살 때였다. 류씨의 시부모는 관례에 따라 스물둘의 나이에 청상과부가 된 류씨를 개가시키려고 했지만 이 소식을 접한 류씨는 아들을 업고 시부모가 있는 회덕으로 오백리길을 달려왔다. 시부모는 그러나 삼종의 도(三從之道, 여자가 어려선 아버지를 따르고 혼인하면 남편을 따르고 남편이 죽으면 아들을 따르라)에 어긋난다며 류씨를 나무랐다. 류씨는 울며 말했다. “지금 저의 삼종지도는 이 아이에게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류씨는 3일을 떠나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시부모는 감명을 받았고 류씨를 받아들였다. 이후 류씨는 시부모를 극진히 모시고 아들을 훌륭히 키웠다고 한다. 류씨 부인은 1653년(효종 4)에 열녀로 정려(旌閭)됐는데 정려비와 정려각은 대덕구 중리동(동춘당 인근)에 있다.

이기준 기자

 

& 비하인드 포토

출발, 류영은 기념재단(류영은 기념관)으로 가는 길.
아스팔트 옆에 인도가 없던 구간에 안전하고 편한 무장애 데크길이 생겼다. 
류영은 기념재단(류영은 기념관) 입구.
류영은 기념재단(류영은 기념관)에서 본 명상정원과 홀로섬.
류영은 기념재단을 벗어나 명상정원으로 가는 길. 
발길마다 대청호 풍광이 눈길을 끈다.
덥긴 하지만 호수 바람이 심심찮게 불어준다.
점점 다가오는 명상정원.
명상정원 첫번째 전망데크 가는 길.
첫번째 전망데크.
첫번째 전망데크 명상정원 뷰.
명상정원 진입, 녹조마저 풍경이 된다.
명상정원 시그니처 포토존 첫번째.
포즈 한 번 취해보고.
거위들 사진도 담아보고.
참 한가로운 거위들.
명상정원 홀로섬. 우기가 아닐 때는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이다.
명상정원 홀로섬. 우기가 아닐 때는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이다.
쉬었다 갑시다. 물 한 모금 마시고.
명상정원 두번째 전망데크 그리고 포토존.
싸우셨나요? 화해하세요.
싸우셨나요? 화해하세요.
명상정원 세 번째 시그니처 포토존.
명상정원에서 나와서 더리스로.
더리스 가는 길, 평화로운 대청호.
편하고 안전한 데크길.
더리스 앞.
더리스에서, 명상정원 뷰.
더리스에서, 명상정원 뷰.
포토존은 이어진다.
더리스 지나서 3구간과 4구간 경계.
유난히 외로워 보이는... '섬'.
유난히 외로워 보이는... '섬'.
3구간과 4구간의 경계. 이곳은 3구간의 끝자락이다.
3구간과 4구간의 경계. 이곳은 3구간의 끝자락이다.
포즈 취하는 미스터리.
포즈 취하는 미스터리.
식장산과 홀로섬.
식장산과 홀로섬.
좀더 당겨서 보면, 식장산이 확 가까이 온다.
좀더 당겨서 보면, 식장산이 확 가까이 온다.
다시 와이드 앵글.
다시 와이드 앵글.
모델은 별론데 왠지 멋스럽게 나왔다.
모델은 별론데 왠지 멋스럽게 나왔다.
다시 원점 명상정원 주차장으로.
다시 원점 명상정원 주차장으로.
관동묘려 앞에서 본 가마우지(가 점령한)섬. 미스터리는, 예전에 햄버거섬이라 불렀었다.
관동묘려 앞에서 본 가마우지(가 점령한)섬. 미스터리는, 예전에 햄버거섬이라 불렀었다.
더웠지만, 시원했던 대청호오백리길 유람. 다음엔 어디로 갈까?
더웠지만, 시원했던 대청호오백리길 유람. 다음엔 어디로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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