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호오백리길 원점회귀 코스] ⑨ 5구간 방축골&백골산성
가을의 길목, 대청호가 추파를 던진다. 잔잔한 물결과 같은 미소로 어서 오라 손짓한다. 삶에 지친 그대에게 시름 잠시 내려놓고 포근한 자신의 품안에서 치유의 순간을 맞이해보라 권한다. 가을의 대청호는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빛을 머금고 힐링의 마법을 선사한다.
① 물과 뭍의 경계, 우린 여기서 신선이 된다
대청댐→비밀의숲→지명산(지락정)→대청정→로하스캠핑장→로하스해피로드→대청댐
② 모래곶의 향연… 발길마다 포토존
명상정원 주차장→전망데크→홀로섬→추동습지 전망좋은곳→억새데크→명상정원 주차장
③ 전설과 추억을 품은 대청호 히든카드
내탑동 와정삼거리→배알봉→고해산정상→탑봉→옛 내탑수영장(왕복) : 5-1구간
④ 대청호 벚꽃 로드, 벚꽃이 전부가 아니다
벚꽃한터(대전 동구 신상동)→흥진마을길→오동선벚꽃길→방축골→벚꽃한터
⑤ 깨어나는 백제 흥망의 역사
찬샘마을→노고산성→찬샘정→성치산성→찬샘마을
⑥ 금강과 대청호, 따로 또 같이 (로하스 해피로드 & 강촌·이촌마을)
대청수상레포츠센터(로하스타워1)→대청조정지댐→민평기가옥→강촌마을→이촌마을→보조여수로→로하스캠핑장→미호교→조정지댐 건너서→노산리솔밭자연유원지→대청대교→대청수상레포츠센터
⑦ 바위처럼 연꽃처럼
대청호자연수변공원 주차장(사진창고) → 황새바위 → 거북바위 → 연꽃마을 → 대청호자연수변공원 주차장
⑧ 발길마다 이국적 풍광, 돌아서니 옛이야기 들려주는
명상정원한터1→류영은 기념재단(류영은 기념관)→명상정원→더리스→3구간 도착지→동파정→더리스→명상정원 (& 미륵원·관동묘려)
⑨ 백골산성 뷰의 중독성
신촌한터(대전 동구 신촌동)→구절골→방축골→신절골→백골산성→신절골→신촌한터
[대청호오백리길 원점회귀 코스]
⑨ 5구간 방축골&백골산성
1. 에메랄드빛 호수의 향연
2023년 여름은 유난히도 더웠고 비도 많이 내렸다. 여름철 평균기온과 장마철 강수량 모두 역대급 기록을 썼다. 절기는 벌써 입추(立秋)와 처서(處暑)를 지나 새벽 찬바람에 이슬이 맺힌다는 백로(白露)에 접어들었지만 한낮 더위는 수그러들 줄 모른다. 물론 대청호의 공기는 다르다. 빌딩숲 도시와 달리 이곳에선 자연의 섭리가 여전히 작동한다. 간간이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은 영락없는 갈바람이다.
이번 여정은 대청호오백리길 5구간이다. 방축골에서 차 한잔의 여유를 즐기고 나서 백골산(해발 340m)에 올라 왜 대청호를 ‘내륙의 다도해’라 부르는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한 뒤 하산하는 코스를 잡았다. 원점회귀 구간 길이는 약 8.3㎞다. 백골산성에 오르는 길이 제법 가파르지만 대청호오백리길 5구간에서 가장 장쾌한 대청호 뷰(view)를 볼 수 있다.
대전 동구 신촌동 신촌한터에서 여정을 시작한다. 올여름 얼마나 많은 비가 내렸는지 대청호는 거의 만수위다. 에누리 하나 없이 호수 물이 꽉 차 있다. 올봄까지만 해도 가뭄 걱정이 심했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수변 길들을 모두 삼켜버렸다. 불볕더위 탓에 녹조는 여전하다. 덕분(?)에 대청호는 파란 하늘과 어우러져 신비로운 에메랄드빛을 선사한다.
한적한 데크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긴다. 파란 양철지붕이 아기자기하게 모여있는 밤실마을의 모습이 정겹다. 대청호 담수가 이뤄지면서 마을 대부분이 수몰돼 몇 가구 남지 않았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호수 주변 자투리땅을 일구며 살아간다. 당초 계획은 밤실마을 안쪽으로 들어가 수변길을 따라 방축골로 이동하는 것이었는데, 동네 어귀에서 예초기를 돌리던 동네 어르신이 물이 많이 차 갈 수 없으니 그냥 가던 길(데크길) 가란다. 시골 풍경 물씬 풍기는 소담한 버스정류소 하나 지나 방축골 입구에 도달한다. 민물새우탕이 유명한 절골식당을 지나 방축골로 접어든다. 포장길은 역시 걷는 재미가 덜하지만 방축골의 대청호 풍경을 눈에 담으려면 어쩔 수 없다.
2. 대청호 핫플레이스 1번지
신하동에서 신촌동으로 넘어가는 완만한 고개 하나 넘어 방축골로 접어든다. 이 고개 날망에 서면 두근두근 가슴 벅찬 설렘이 몰려온다. 대청호 풍경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이곳 방축골은 한 번도 못 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왔다간 사람은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빼어난 대청호 뷰를 선사한다. 최근 이곳에 베이커리·카페 하나가 새로 오픈했는데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만큼 조망 역시 끝내준다. 원래 이 카페는 ‘꽃님이’ 레스토랑 자리였다. 대청호가 관광자원으로 각광받기 전부터 뭇연인들의 소문난 데이트코스 중 하나였다. 이젠 꽃님이 레스토랑의 ‘감성’은 추억으로 남았지만 새로 오픈한 카페가 다시 ‘갬성’을 자극하는 대청호의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마을로 접어드니 코스모스며, 백일홍이며 가을꽃들이 반긴다. 백일홍은 배롱나무 꽃을 말하는데 이곳 옛 회덕이 파평 윤씨 명문가의 뿌리이다 보니 곳곳에서 많이 보인다. 배롱나무는 나무 기둥이 껍질 없이 속살만 뽀얘서 예부터 청렴함을 의미했는데 그래서 양반가엔 꼭 한 그루씩 있었다고 한다.
방축골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돌탑이 있는 섬이다. 가물었을 땐 육지와 연결되지만 물이 어느 정도 차면 섬이 되는데 이곳에 두 개의 큰 돌탑이 있다. ‘돌탑섬’의 몽환적인 자태는 눈을 떼기 어려울 정도로 신비로움 그 자체다. 사람의 힘으론 도저히 쌓을 수 없는 거대한 바위들이 사람 서너명 키 높이 만큼 탑을 이룬 것도 여전히 미스터리다.
평일인데도 이곳엔 사람들이 많다. 방축골의 터줏대감이라고 할 수 있는 카페 팡시온부터 뒤이어 문을 연 라끄블루, 신상 카페 롤라까지 저마다 전망좋은 곳에 자리잡은 카페 주차장은 항상 분주하다. 각박한 도시생활의 쉼표 하나, 삶의 여유에 대한 갈증이 그만큼 크다는 방증이겠지. 그나저나 녹조가 빨리 없어져야 할 텐데….
3. 광활한 대청호
길을 되돌아나와 백골산으로 향한다. 더 광활한 대청호의 풍경을 보기 위해서다. 백골산은 해발고도가 약 340m로 그리 높진 않지만 정상까지 줄곧 오르막이라 거친 숨을 한껏 몰아 쉬어야 한다. 절골식당이 있는 구절골에서 진고개식당이 있는 신절골까지 데크길을 따라 약 500m를 걸어 예열을 한 뒤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안내표지상으론 정상까지 약 1㎞다.
쉬엄쉬엄, 한 걸음 한 걸음 돌계단을 오른다. 숨이 차오르지만 산위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충전 역할을 한다. 약 600m 지점 쉼터를 만난다. 백골산성의 내력이 담긴 표지판이 보인다. 다시 정상을 향해 출발. 지그재그 오르막을 탄다. 8부능선 지점이다. 다시 오르막, 9부능선에 도달해 기력을 충전한 뒤 마지막 스퍼트. 이곳에 산성이 있었음을 짐작게 하는 돌무더기들이 눈에 들어온다. 차근차근 30분 만에 오른 백골산 정상, 힘들었던 순간을 순식간에 잊게 해주는 아름다운 대청호의 풍경과 마주한다.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도 감탄사가 연신 터져나온다.
정상에 우두커니 서 있는 소나무 한 그루, 그 그늘 아래서 온갖 시름 다 내려놓고 물아일체의 경지에 다가서 본다. 아무 말 없이 멍하니 그렇게 에메랄드빛 대청호 수심 깊숙이 빠져든다. 방축골 아기자기한 카페들도 손에 잡힐 듯 눈에 들어온다. 또 다른 세상과 마주한 신비로운 자연의 풍경에 심취해 발길이 차마 떨어지지 않는다. 그만큼 여운도 길게 남는다.
백골산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대청호의 모습 이면엔 아픔도 서려있다. 삼국시대, 백제와 신라가 치열하게 대립하던 7세기 중엽 이곳에서도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는데 병사들의 시체가 쌓이고 쌓여 백골산이란 이름이 지어졌다는 설이 있다. 대전지역에서 발견된 백제의 성 중 유일하게 금강 건너편에 축조된 점이 특이하다.
장쾌한 대청호의 풍경이 가져다준 가슴 벅찬 감동과 백골산의 슬픈 유래를 뒤로하고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방축골에 다시 들러 차 한 잔의 여유 속에서 긴 여운을 감미롭게 음미한다.
이기준 기자 lkj@ggilbo.com
with 박동규·김동직·차철호 기자
... 그리고 사진들. (※스크롤 압박 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