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호오백리길 원점회귀 코스] ⑪

대전둘레산길 5구간+대청호오백리길 4구간

살갗에 와 닿는 바람이 차다. 만추(晩秋)의 계절, 옷을 갈아입은 대청호의 모습이 그윽하다. 아이스아메리카노보단 온기가 피어오르는 카페모카가 이젠 더 어울린다. 분위기가 바뀌고 그래서 느낌도 달라진 대청호오백리길의 매력 속으로 또 한 걸음 내디딘다. 시름 한 스푼 덜어내고 마음 치유를 위한 평온을 가득 채운다. 뭔가 깊어진 듯한 고요함으로 마음을 정화하고 힐링을 충전한다.

대청호오백리길 원점회귀 코스

① 물과 뭍의 경계, 우린 여기서 신선이 된다
대청댐→비밀의숲→지명산(지락정)→대청정→로하스캠핑장→로하스해피로드→대청댐

② 모래곶의 향연… 발길마다 포토존
명상정원 주차장→전망데크→홀로섬→추동습지 전망좋은곳→억새데크→명상정원 주차장

③ 전설과 추억을 품은 대청호 히든카드
내탑동 와정삼거리→배알봉→고해산정상→탑봉→옛 내탑수영장(왕복) : 5-1구간 

④ 대청호 벚꽃 로드, 벚꽃이 전부가 아니다
벚꽃한터(대전 동구 신상동)→흥진마을길→오동선벚꽃길→방축골→벚꽃한터

⑤ 깨어나는 백제 흥망의 역사
찬샘마을→노고산성→찬샘정→성치산성→찬샘마을

⑥ 금강과 대청호, 따로 또 같이
대청수상레포츠센터(로하스타워1)→대청조정지댐→민평기가옥→강촌마을→이촌마을→보조여수로→로하스캠핑장→미호교→조정지댐 건너서→노산리솔밭자연유원지→대청대교→대청수상레포츠센터

⑦ 바위처럼 연꽃처럼
대청호자연수변공원 주차장(사진창고) → 황새바위 → 거북바위 → 연꽃마을 → 대청호자연수변공원 주차장

⑧ 발길마다 이국적 풍광    
명상정원한터1→류영은 기념재단(류영은 기념관)→명상정원→더리스→3구간 도착지→동파정→더리스→명상정원 (& 미륵원·관동묘려)

⑨ 백골산성 뷰의 중독성 
신촌한터(대전 동구 신촌동)→구절골→방축골→신절골→백골산성→신절골→신촌한터

⑩ 청남대 : 봉황탑 vs 제1전망대  

⑪ feat. 대전둘레산길 5구간
대청호반자연수변공원→추동임도→길치공원→질현성→조망쉼터→남도정→팔각정자→절고개→천개동 임도→대청호자연생태관→대청호반자연수변공원(추동습지보호구역)

 

  그윽한 대청호의 가을색  

초록이 무성했던 대청호의 숲이 가을색으로 물들었다. 빨갛게, 노랗게 단풍이 지고 있다. 폭염으로 신음했던 대청호도 이제야 쉼을 청한다. 올 여름 내내 대청호는 녹조로 몸살을 앓았다. 여름내 많은 비가 내려 육지에서 영양염류가 다량 유입됐고 폭염도 강하게 나타나면서 조류가 급속히, 고밀도로 번졌다. 그래서 대청호는 여름 내내 파란 하늘빛도 잡아먹을 정도로 짙은 녹색을 뗬다. 녹조 증상이 심각했던 거다. 감사하게도 자연의 자정기능은 이번에도 잘 작동해줬다. 가을, 겨우내 긴 휴식을 취하면 괜찮아지겠지, 간절히 기원해 본다.

호수와 가장 가까운 친구인 산과 숲들도 대청호의 쾌유를 기원한다. 자신을 불태워가면서 말이다. 단풍 든 나뭇잎은 겉으론 아름다워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들 역시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을 수 없듯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순 없다. 단풍은 나뭇잎이 더는 스스로 활동을 할 수 없게 되는 과정이다. 잎이 활동을 멈추면 엽록소가 파괴되고 자가분해가 진행된다. 엽록소의 자가분해과정에서 안토시안이 생성되는 종은 붉은 색 또는 갈색 계열의 단풍이 들게 되고 안토시안이 생성되지 않는 종은 엽록소의 녹색에 가려 보이지 않던 잎 자체에 함유된 노란 색소들이 나타나게 된다. 가을이 깊어지고 갑자기 기온이 떨어지면 엽록소 파괴 속도는 빨라져 단풍 색은 더 선명해진다. 단풍으로 가장 화려한 순간을 맞은 나뭇잎은 그렇게 스스로를 불태우고 낙엽이 돼 땅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가을의 대청호는 애잔한 눈빛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파란 하늘 아래 가을산행  

이번 대청호오백리길 여정은 산과 임도에서 대청호오백리길을 내려다보는 가을산행이다. 대청호를 품은 산 능선에서 깊어가는 대청호의 가을을 만끽해본다. 대청호반자연생태공원에서 숲속으로 난 신상로를 통해 길치고개에 오른 뒤 대전둘레산길 5구간 능선을 타고 절고개까지 가서 다시 천개동 방면 임도를 타고 내려오는 약 12㎞ 코스다. 대청호오백리길과 대전둘레산길의 컬래버레이션이다.

대청호오백리길 4구간에 있는 대청호반자연생태공원 앞에서 여정을 시작한다. 길가에 줄지어 서 있는 은행나무는 샛노랗게 물들었다. 파란 하늘과 선명하게 대비돼 운치를 더한다. 짓이겨진 은행나무 열매 냄새가 고약하지만 이마저도 가을의 대청호 풍경에 사그라든다. 대청호수로를 따라 남쪽으로 이동하다 약 500m 지점에서 산길로 접어든다. 신상로라는 이름의 길인데 동구 추동에서 대덕구 비래동으로 이어진다.

올 여름 비가 많이 내려서인지 아직도 계곡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정겹다. 사방댐 주변에 식재된 메타세쿼이아 숲이 이채로운데 하늘을 향해 높고 곧게 뻗어난 메타세쿼이아도 계절의 변화를 이기지 못하고 가을 색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다. 길을 따라 약 200m 고도에 이르니 비로소 대청호 조망이 터진다. 구름 잔뜩 낀 파란 하늘을 머금은 대청호가 생기를 발산하며 ‘안구정화’의 기회를 선사한다.

2.5㎞ 지점, 길치고개에 도달한다. 동서로는 신상로가 이어지고 남북으론 대전둘레산길이 이어진다. 행정구역상 대전둘레산길은 대전 대덕구와 동구의 경계를 이룬다. 또 도시와 자연의 경계이기도 하다. 이 능선을 경계로 한쪽은 빌딩숲이, 다른 한쪽은 자연의 숲이 우거져 있다. 도시의 소음과 자연의 고요함이 묘하게 어우러져 시공을 초월하는 경계에 선 느낌을 받는다.

임도에서 첫 조망. 파란 하늘을 머금은 대청호가 생기를 발산하며 ‘안구정화’의 기회를 선사한다.
임도에서 첫 조망. 파란 하늘을 머금은 대청호가 생기를 발산하며 ‘안구정화’의 기회를 선사한다.
대전둘레산길 5구간 질현성 가는 길, 왼쪽(서쪽)으로 시선을 두면 대전 도심이 눈에 들어온다.
대전둘레산길 5구간 질현성 가는 길, 왼쪽(서쪽)으로 시선을 두면 대전 도심이 눈에 들어온다.
질현성 가는 길, 발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돌아보면 한 쪽은 도심, 한 쪽은 대청호다. 
질현성 가는 길, 발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돌아보면 한 쪽은 도심, 한 쪽은 대청호다. 

  대비와 조화의 아이러니  

쌓여가는 낙엽을 즈려밟고 길치고개에서 질현성 방면으로 길을 잡는다. 대전둘레산길 5구간이다. 이 구간엔 백제시대 산성들이 유독 많이 분포하는데 그만큼 백제와 신라의 접전이 치열했음을 의미한다.

이 중 하나가 이번 여정에서 만나는 질현성이다. 기록을 보면 질현성은 백제 사비시대, 동쪽의 옥천지역을 방어하기 위해 돌로 쌓은 성으로 대전 동쪽 계족산 자락의 길치고개 북쪽에 축조됐다. 이 지역에는 계족산성을 비롯해 높은 산봉우리에 많은 산성들이 분포하고 있는데 질현성에서 계족산성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엔 100∼200m 간격으로 산봉우리에 6개의 보루가 설치돼 있는데 규모나 위치로 미뤄 계족산성을 보조하는 기능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질현성의 둘레는 약 800m로 추정되고 성 동·서·남쪽에 출입문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석축이 잘 남아있는 동벽과 북벽은 장방형의 돌을 나란히 안으로 들여쌓았는데 이런 석축 방식은 계족산성에서도 확인된다.

질현성에서 내려다 본 대청호.
질현성에서 내려다 본 대청호.

질현성에 올라서니 시야가 ‘팡’하고 터진다. 드넓은 대청호는 가을 하늘빛을 그대로 투영해 맑은 생명력을 선사한다. 벤치에 앉아 물끄러미 호수를 바라본다. 호흡은 다시 정돈되고 자연이 주는 힐링의 마법이 오감을 통해 흡수된다. 땀으로 배출된 온갖 시름들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는 금세 활력으로 충전되고 복잡했던 머릿속도 선명해진다. 이맛에 기어코 산에 오르고 또 오른다.

질현성 조망터에서 다시 1㎞ 지점. 다시 열린 대청호 조망.
질현성 조망터에서 다시 1㎞ 지점. 다시 열린 대청호 조망.

질현성 조망터에서 다시 1㎞ 지점, 또 한 번 좋은 전망을 만난다. 발걸음이 저절로 멈춰진다.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전진, 도시 소음은 줄어들고 지저귀는 새들의 소리는 선명해진다. 빨갛게 물든 단풍나무는 산을 모두 태워버릴 듯 강렬한 색을 발산한다. 숲속 나무들은 저마다의 DNA로 각기 다른 가을 색을 뽐내며 대비를 이루지만 자연의 품 안에선 모두 조화를 이룬다. 도시의 소음도 마찬가지다. 귓가에선 성가시게 울려퍼지지만 대자연 안에선 지극히 작은 삶의 한 부분일 뿐이다.

  추동, 가을 대청호의 ‘진리’  

맑은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시며 활력을 최대치로 충전한다.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계족산 절고개를 얼마 남기지 않고 숲길 한 켠, 팔각정자가 놓여있다. 남도정이라는 이름을 가진 정자다. 숨 한 번 돌리고 다시 길을 나선다. 절고개, 드디어 계족산과 만난다. 대덕구 장동에서 절고개를 접어도는 등산로엔 황토가 깔려 있는데 맨발 걷기가 유명세를 타면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찬바람이 불어 발이 약간 시릴 텐데도 아직 이곳을 찾는 등산객들은 맨발 걷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임도 따라 천개동 방면으로 가는 길.
임도 따라 천개동 방면으로 가는 길.

임도를 따라 대청호를 등지고 있는 천개동 방면으로 길을 잡는다. 늦가을에도 평균기온이 높았던 탓인지 단풍이 예년만 못하지만 그래도 가을향기는 물씬 풍긴다.

국회전시회(11월 5일 종료)가 열려 차분한 가을정취가 물씬 풍기는 대청호자연생태관에서 다시 발길을 놓는다. 이곳에선 매년 국화전시회가 열리는데 추동(秋洞)이라는 마을 지명에 걸맞게 다채롭게 펼쳐진다. 그런데 원래 추동이라는 지명은 이 마을에 추자나무(가래나무)가 많아서 붙은 건데 한자를 음차하면서 추자나무의 추(楸)가 아니라 가을 추(秋)자를 가져다 썼다. 오래 전부터 ‘가래울’이란 지명이 이어져 내려오지만 지금은 ‘가을 마을’이 됐다.

추동은 대청호오백리길 4구간의 가장 상징적인 포인트 가운데 하나다. 모래곶의 향연과 함께 억새밭 위로 난 데크길이 일품인데 잦은 수몰로 인해 억새밭이 망가지고 말았다. 언제쯤 새하얀 솜털을 뽐내는 억새밭의 고즈넉함을 다시 감상할 수 있을까.

글=이기준 기자 lkj@ggilbo.com
사진=차철호·김동직 기자

대청호오백리길 4구간의 추동습지보호구역 전망좋은 곳. 수위가 높아 잠긴 곳이 많고 억새밭이 기대 이하였지만, 명불허전 아름다움은 그대로였다.
대청호오백리길 4구간의 추동습지보호구역 전망좋은 곳. 수위가 높아 잠긴 곳이 많고 억새밭이 기대 이하였지만, 명불허전 아름다움은 그대로였다.
이날의 대청호 선수들. 이날은 추워지기 전이어서 반소매 등등 옷차람이 가볍다.
이날의 대청호 선수들. 추워지기 전이어서 반소매 등등 옷차림이 가볍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