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일보] 작은 키에 짧게 정돈된 헤어스타일, 시골 사람처럼 순박한 인상…. 손 선생님과의 첫 만남은 고등학교 1학년, 첫 수학 수업 때였다. 남학생들만 버글거리던 소란스러운 교실로 키 작은 한 선생님께서 들어오셨다. 약간은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하며, 1년간 수학 공부 열심히 해보자며 짧은 인사를 하셨던 손 선생님의 첫인상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당시의 나는, 그 어떤 학생보다 공부에 대한 열의가 뜨거운 학생이었다. 고3 수험생이었던 누나의 영향까지 더해져, 먹고 자는 시간 외에는 늘 책에서 눈을 떼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
[금강일보] 코로나19로 인해 대면수업이 원격수업으로 대체되기도 하면서 그동안 활발하게 진행되던 활동적인 학생 중심 수업이 크게 위축됐다. 교실의 좌석은 일렬로 획일화됐고, 수업은 학생 참여 중심에서 일제형 강의 중심으로 회귀했다. 그 결과 잠자는 학생들이 요즘 부쩍 늘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이에 일선 교사들은 담당 교과의 특성을 살려 수업에 활력을 불어넣는 다양한 교수학습 방법을 찾고 있다. 인문 교과에서는 고전적이기는 하지만 토론 수업이 그 대안으로 떠 오르고 있다.토론은 국가의 시민 의식과 민주주의를 평가하는 척도라 한
[금강일보] 나무의 파릇파릇한 잎사귀가 싱그러운 계절이다. 화려했던 꽃이 하나둘 지고, 꽃보다 더 예쁜 연녹색의 잎사귀가 생동감을 더해주는 4월이다.무언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듯한 활기참 때문인지 나는 어려서부터 4월이 참 좋았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딱 알맞은 기온, 적절한 타이밍에 운치 있게 내려주는 비, 만물의 소생을 돕는 따스한 햇살까지, 4월은 모든 것이 완벽한 달이다.4월 중에서도 그 한가운데에 있는 오늘, 4월 16일은 내가 태어난 날이다. 간밤에 온 생일 축하 메시지들과 나를 반겨주는 아침 식탁의 미역국 덕분에 기분
[금강일보] 벚꽃이 피는 순서대로 대학들의 위기가 온다는 속설을 아는지 모르는지, 벚꽃은 아무런 근심도 없는 듯 금년에도 만개했다.지난해 수능 지원자는 49만여 명이었고 대학 입학정원은 55만여 명이었다. 이에 따라 지방 사립대학은 물론 거점 국립대학도 미충원 사태를 비껴가지 못했다. 엎친 데 덮친다고 2023년에는 대학입학 정원에 10만여 명이 미충원 될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나아가 통계청 자료는 향후 20년간 학령인구가 263만 명이 감소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그만큼 대학의 위기는 커져만 가고 학생들은 대학가기가 수월
[금강일보] 신임교사 시절 한 설문조사에 응하게 됐다. 오래전 일이라 정확히 기억은 나질 않지만 아마도 신임교사의 학교생활과 관련된 연구의 일환이었던 것 같다. 문항이 아주 많았는데 가장 기억에 남았던 문항은, “교사 역할을 수행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이냐?”는 물음에 나는 1초도 고민하지 않고 “학부모와의 관계”라 답을 한 기억이 난다. 모든 것이 어렵고 낯설었을 신임교사 시절의 나에게 학부모와의 관계는 가장 어려운 일이었던 모양이다.나의 신임 발령 학교는 대규모 아파트가 들어서는 신도시의 중심에 있던 학교였는데 학급
희망찬 3월을 맞이했으나 학생들 만나기가 부끄럽다. 얼마 전 뉴스를 보니 중국은 김치, 한복, 갓에 이어 이제는 우리의 민족 시인 윤동주의 국적까지 왜곡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중국 옌볜 조선족자치주 룽징(龍井) 밍둥(明東)촌에 있는 윤동주 생가 앞 표지석과 '서시' 시비 및 중국 최대 포털사이트 바이두의 표기에 윤동주를 '중국 조선족'으로 표현한 것에 대해 항의하고 시정을 요구했다.윤동주 생가는 지난 2019년 8월 19일 단재 해외유적답사의 일환으로 학생들과 함께 답사했던 곳이기에 나의 부끄러움은 더욱 크다. 그 누구 못지않게 윤
[금강일보] 본교에서는 설 연휴가 끝나자마자 14명의 새내기 교사들을 위한 자체 직무연수를 한다. 교사의 꿈을 안고 어렵고도 힘든 임용고시를 거쳐 새봄에 교사로서 첫발을 내딛는 새내기 교사들에게 교직 선배로서 진심으로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주지하는 바와 같이 교사라는 직업이 그렇게 녹록하지는 않다. 많은 지표들이 교사는 새로운 시대에 매력이 별로 없는 ‘지는 직업’으로 예고하고 있고, 생활지도를 비롯한 교육계의 현 상황이 어려운 측면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사라는 직업을 천직으로 여기고 이를 실현하고자 교직에 들어선 새내기들의
지난 1일 아침, 식전부터 전화가 한통 걸려왔다.“선생님, 저 창민이예요. 잘지내시죠? 저 이제 고3 올라가요. 새해도 되고 선생님 보고싶어서 전화 드렸어요…”5년 전에 졸업시킨 창민이라는 학생으로부터 전화가 와서 반가운 마음에 한참을 통화했다. 예전 초등학교 시절 이야기부터 중학교, 고등학교 생활 이야기 등등, 나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참 많았었는지 쉴새 없이 이야기를 쏟아 부었다.초등학교 6학년 시절의 창민이는 좋은 덩치만큼이나 참 씩씩한 아이였다. 운동을 매우 좋아하고 공부도 곧잘 하였으며 성격도 유쾌해서 친구들과도 잘 어
[금강일보] 얼마 전 책상 서랍을 정리하다가 스탬프 형식의 장서표를 찾았다. 장서표는 펼쳐진 책 위에 듬직한 황소 한 마리가 서 있고 머리에는 주경야독을 상징하듯 둥근 월광으로 둘려져 있다. 그리고 황소가 서 있는 책의 하단에는 장서표를 의미하는 ‘EX-LIBRIS’라는 영문이, 책의 바깥쪽 우측에는 책의 주인 이름이 한글로 각각 새겨져 있으며 이름 밑에는 제작자 고유의 낙관이 찍혀 있다.이 장서표는 지금으로부터 11년 전, 대학 선배의 권유로 생명판화가 남궁산 장서표 초대전에 동참하면서 제작된 것이다.장서표는 본래 서적의 소장자를
[금강일보] 휴대폰 사진첩을 정리하다가 하와이에서 찍었던 신혼여행 사진들을 멍하니 보게 됐다. ‘그때가 참 좋았지’하는 생각보다 ‘이런 때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 더욱 컸다. 코로나19가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는 실감이 들었다.올해는 코로나19로 시작해서 코로나19로 끝난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 생활하는 것, 지인들과 만나서 함께 밥을 먹는 것, 휴가를 맞아서 여행을 다니는 것 등, 우리 일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이뤄졌던 모든 일들을 코로나19가 1년 만에 바꿔버린 것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 시점에
한 해가 저물고 있다. 매년 이맘 때면 입버릇처럼 다사다난한 한 해였다고 한다. 그러나 금년은 그것이 예사롭게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다. 실로 하늘이 놀라고 땅이 흔들릴 정도로 많은 일이 일어났다.새해 벽두부터 시작한 코로나19 확산은 우리 교육 현장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았다. 지난 2월 졸업식에서부터 파행의 연속이었다. 졸업식은 축하객 없이 진행됐다. 그리고 춥고 모진 겨울이 가고 3월 봄이 와도 학교의 문은 굳게 닫힌 채 열리지 않았다.급기야 대한민국 교육 역사상 최초로 4월 중순 온라인 입학식을 하고 전면적인 온라인 수업을 했
[금강일보] “여보, 수능시험 날엔 왜 그렇게 날씨가 추워지는지 알아?”“...왜 그럴까? 그냥 기분 탓이 아닐까? 아니면 우연의 일치로?”“아니야. 수능시험 잘 보게 해달라고 사람들이 하늘신, 조상신, 동물신 등등...귀신들을 그렇게 다 불러모아서 그런거래. 귀신들이 다 모이니까 날씨마저도 오싹해진거지”평소 미신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 나로서는 한 번의 파안대소 할 만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며칠째 이 대화가 머릿속에 남는 것을 보면 굉장히 인상적인 이야기였던 것 같다. 엄청 오래 전의 이야기지만 나의 수능 전날 기억은 지금도 생생
[금강일보] 7년 전부터 해마다 해오던 ’한밤에 나의 꿈 찾기, 1박 2일 별밤독서캠프‘에서 작년부터는 한밤에 책 한 권 읽고 캘리그래피 하기를 새롭게 시작했다.“하룻밤에 책을 읽으면 얼마나 읽을까? 더군다나 캠프에서는 평소 만나고 싶었던 저자도 만나고 진로 강의도 듣고 대학생 선배들도 만나는데 책이 눈에 들어 올 리가 없다.”는 생각에 책 읽기의 부담을 덜고 좀 더 창의적인 작업을 해보자는 의도였다.또 발달하는 디지털 문화 속에서도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물씬 풍기는 아름다운 손글씨 캘리그래피가 시선을 사로잡는 점을 고려했다.
[금강일보] 낙엽이 떨어지는 완연한 가을이다. 운치 있는 날씨를 핑계 삼아 나의 지나온 교직생활을 돌아본다. 학생들과 함께 즐거웠던 기억, 힘들었던 기억…. 많은 기억들이 머리를 스쳐간다. 그 중에서 최고의 기억을 하나 꼽으라면 우리 반 학생들과 함께 떠났던 졸업여행일 것이다.2015학년도를 마칠 즈음, 나는 졸업을 앞둔 우리 반 학생들과 야심찬 계획을 하나 세웠다. 바로 1박 2일로 졸업여행을 가는 것이다. 처음에는 농담처럼 던졌던 나의 얘기가 학생과 학부모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서서히 구체적인 계획으로 바뀌어 나갔다. 학
[금강일보]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우리 사회 전반이 모두 변했다. 변하지 않은 것을 찾기 힘들다. 우리 교육계도 많은 변화를 겪었고 원격 수업과 같은 새로운 형태의 교육이 이제 친숙하기까지 하다. 금년에는 예전에 듣고 보도 못 했던 AI 융합 교육과정, AI 데이터 리터리시 등 교육계에 AI가 등장했다. 그리고 이르면 연말부터 미래 교육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에듀테크 기반 스마트 교육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방부장님 독수리타법, ‘세상에 이런 일이’에 제보해야겠어요.”“저런 독수리타법으로 어떻게 그 많은 보고서를 그렇게 빨리 처
검비, 푸리, 카스, 오스, 초코... 우리 동네에 살고 있는 길고양이 이름이다. 생김새와 성격 등을 고려해 나와 아내가 심사숙고 끝에 지어준 이름이다. 코리안 숏헤어는 페르시안, 샴, 러시안블루, 아메리칸 숏헤어, 잉글리시 숏헤어와 같이 정식 품종은 아니지만 우리 주변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한국의 토종 고양이이다. 흔하게 볼 수 있다고 해서 그들을 우습게 보면 안된다. 고양이 중에서도 코리안 숏헤어는 영리하고 건강한 품종으로 잘 알려져 있다.내가 길고양이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우연히 접한 동영상 한편에서부터였다. 어미에게
[금강일보] 코로나19의 확산으로 교육 활동이 크게 위축되어 교외 활동은 계획대로 되는 것이 별로 없다. 1학기에는 “조금만 더 참으면 활동할 수 있겠지”, “2학기에는 좀 더 낫지 않을까”라는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미루다가 방학 같지 않은 방학을 보내고 2학기를 맞이했다. 그런데 2학기에도 상황은 녹록지 않아 코로나의 기승은 아직도 여전한 가운데 벌써 9월 중순이 지나가고 있다.이제 조금씩 불안해진다. 많은 고민과 숙고 끝에 동아리 학생 중에서 역사 관련된 진로를 희망하는 학생들 몇 명과 지난 토요일 돈암서원을 답사했다. 우리 지역
[금강일보] “엄마! 내일 도시락 반찬은 뭐야?” “응, 내일은 영태가 좋아하는 계란말이 싸줄께!” “우리 엄마 최고!!!”나의 ‘국민학교’시절, 잠자리에 들기 전이면 나는 늘 엄마에게 내일의 도시락 메뉴를 묻곤 했었다. 계란말이를 정말 좋아하던 어린 시절의 나에게, 도시락 반찬이 계란말이인 날은 마치 작은 축제와도 같았다. 엄마가 깨우지 않아도 일찍 일어나 세수를 하고, 등교 준비를 혼자서도 척척 해냈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아침을 먹기 위해 식탁으로 가면, 늘 그랬던 것처럼 네 개의 도시락이 일렬로 놓여 있었다. 가장 큰 두
지난주 단재해외유적답사 탐방 밴드에 이어 오늘은 2019 러시아 독립운동유적지 탐방 밴드 1주년의 날 알림이 도착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7일간의 짧은 여름방학을 보내면서도 여행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금년과 달리, 지난해 방학은 학생들과 함께 중국과 러시아를 오가며 무척 분주했었다.감사와 고마움으로 가득한 그야말로 8월의 크리스마스를 맞은 여름방학이었다. 겨우 1년밖에 되지 않은 지난해 방학이 이렇게 그립고 또 그리워지는 것은 우리가 지금 경험하지 못한 사상 초유의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작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 없는 대화다.” 학창 시절, 역사를 배우는 첫 시간에 자주 등장했던 영국의 사학자 E.H.Carr의 명언이다. 너무나 익숙한 이 말이 그때의 나에게는 시험을 대비하기 위한 암기의 대상일 뿐, 그 이상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학창시절 나는 역사를 좋아하지 않았다. 외울 것이 너무 많은 단순하고 고리타분함 그 자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나의 인식이 바뀌게 된 것은 내가 학생들에게 역사를 가르치기 시작하면서부터다.내가 학창시절 역사에 괴로움을 느꼈던 것처럼 우리 학생들도 그렇게 만들 수는 없다는 생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