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출입 음식점의 기억

대학에 부임한 학기 첫 주에 처음 들렀던 중국음식점을 그럭저럭 40년 출입하게 되었다. ‘단골’이라는 기준은 상대적이겠지만 40년 가까이 대략 한 달에 서너 번은 음식을 먹었으니 빈도와 기간 등을 감안하면 나름 단골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한번 긍정적인 판단을 하게 되면 그 인식이 오래 지속되는 편이라 40년을 다녔겠지만 이 식당에 긴 세월 발길을 디디게 된 저간의 연유를 몇 가지 꼽아본다. 아마도 장수 음식점의 기본 요건과도 연결되지 않을까 싶다.
맛이 예나 지금이나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창업주가 얼마 전 100세를 넘기시고 세상을 떠났지만 2대 사장인 큰아들이 일찍부터 요리와 경영을 담당하여 직접 주방에서 일해 와서 조리 인력 변동이 있더라도 기본적인 맛의 유지가 가능하였을 것이다. 주인이 요리를 하지 못하고 주방장을 고용하는 경우 잦은 인력 교체로 맛의 변화가 클 수 있다.
주차공간이 넓고 주차 전담 직원 몇 명이 친절하게 차를 세워주고 있어서 주차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있었다. 이른바 발레 주차서비스를 하는 업소가 많지만 대부분 요금을 지불하는 현실에 비해 여유로운 주차 환경은 이 업소로 발길을 이끈다.
공간이 다양한 점도 경쟁력이 될 수 있었다. 여러 규모의 공간은 참석 인원에 맞추어 자유로운 회식과 행사 진행이 가능했는데 부임 직후 학과에서 환영회식을 마련해준 업소에서 제자들이 정년퇴임 기념연을 열어 주었으니 감회가 나름 깊은 곳이다.
40여 년간 이 식당에서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먹었다. 고가의 희귀한 메뉴를 내는 곳은 아니어서 이런저런 중국음식 전반을 맛보았는데 개인적으로 선호한 메뉴는 짜장면을 비롯하여 특히 백짬뽕과 중국 냉면 그리고 잡탕밥을 꼽아본다. 특히 중국 냉면은 5월초에 시작하여 추석 즈음에 끝나는 한시적 메뉴로 이 음식을 먹을 때마다 계절이 바뀌고 있음을 실감하곤 했다.
이 식당 대표는 맛집, 별미에 소개되는 것을 극구 마다하여 오랜 세월 매스컴이나 SNS에 특별하게 소개된 적이 거의 없어서 소위 웨이팅 대열이 길었던 적은 별로 없었다. 점심시간이면 입구에 얼마 정도 대기 손님이 서 있다가 테이블 회전율이 신속한 편이라 이내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러던 것이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인기 연예인이 다녀가고 리뷰가 올라간 뒤부터는 그렇지 않아도 북적이던 식당에 길게 줄을 늘어선 모습이 계속되었다. 대체로 ‘단짠’을 선호하는 젊은 세대들 취향에 그리 딱 들어맞는 풍미가 아닐 법도 한데 연예인의 영향력은 대단히 컸다. 당초 은둔 맛집은 아니었다고 하지만 막상 전국적인 지명도를 얻고 나서부터는 긴 대기행렬에 끼어 서있자니 단골의 자부심이며 40년 드나들던 기억이 바래는듯 하여 다소 발길이 뜸하게 되었다.
2대 주인도 이제 연로하여 언제까지 주방을 진두지휘할지 알 수 없다. 3대 사장이 맡아 운영하게 되면 전통적으로 이어 내려온 맛이 어떻게 변화할지 모를 일이다. 70년이 되어가는 이 노포의 연륜은 우리나라 식당 문화에서는 상당히 긴 편에 속한다. 부디 100년, 200년 창업 당시 전통의 맛을 잘 보존하기 바란다.
40여 년 출입하던 식당을 지나가거나 생각이 날 때면 거기서 함께 음식을 먹었던 지인들과의 추억이며 그 당시 상황, 그때 나의 모습을 이내 떠올리게 된다. 음식이 환기하는 지난 시간 회상의 속도와 힘은 강렬하다. 팍팍한 일상에서 잊히기 쉬운 기억의 편린과 삶의 추억을 미각이라는 감각을 환기하면서 되살려 보곤 한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 문화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