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동구 원동 대전역과 역전시장을 걸으면 대전의 옛모습과 날것 그대로의 감성을 담은 골목길이 펼쳐져 있다. 여기에 오늘날 보기 드문 여인숙과 판잣집을 지나치다 보면 대전 청년들의 거점 아닌 거점이 숨어있다. 대전 청년마을 철부지 이야기다. 마을답게 기계업부터 메타버스 , 메이커스페이스, 사진, 디자인, 음식 등 갖가지 일을 하는 청년들만 20명에 달한다. 그 중 청년과 로컬을 날카롭지만 한편으로는 따뜻하게 바라보고 있는 조영래(36)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대전 원동 일대를 소개하고 있는 조영래 대표.
대전 원동 일대를 소개하고 있는 조영래 대표.

◆어느덧 ‘대표’

대전토박이로 살아온 조영래 씨는 작가. 그러나 작업을 하는 데 있어서 분야나 콘셉트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예술도 결국 큰 틀에서는 하나라는 지론을 통해 어제는 그림을 그리고 오늘은 조각을 한단다. 그의 말처럼 작가이지만 큰 틀에서는 자칭 타칭 예술가인 셈이다.
그런 조 씨가 대전 청년마을을 총괄하는 자리에 이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일반 참여자로 시작했지만 어느덧 중간 관리자를 거쳐 이제는 3년차가 되는 청년마을을 관리하는 대표이지만 그도 처음부터 청년마을만을 꿈꾼 건 아니었다. 여러 사업을 운영하는 가운데 비영리단체는 물론 ESG, 로컬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을 진행했다. 또 관광지 관련 예술프로젝트는 물론 벽화마을 조성에도 뛰어드는 등 애당초 지역과 청년에 관심이 많았단다.

“원래도 젠트리피케이션 등을 느끼면서 고민이 있었죠. 그런데 올해 청년마을 대표 직책을 일임받게 되면서 청년마을을 작년과는 다르게 운영해보기로 했습니다. 대전 원동과 철공소거리 일대가 기술도 낙후되고 어쩔 수 없이 시대의 흐름에 뒤처지면서 쇠퇴하고 있죠. 그러나 다양한 청년들이 청년마을에 들어와 지역의 스토리텔링을 더해서 다양한 로컬 활동을 하는 등 청년들이 정착하고 협업과 상생가능한, 말 그대로 지속가능한 모델을 찾아보자는 취지에서 청년마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민만 수만 가지

청년은 푸르고 아름답다. 지역사회도 공동체라는 긍정적인 의미로 다가온다. 그러나 두 단어를 합치는 순간 고민덩어리(?)가 된다. 조 씨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생각들도 이러한 맥락이다. 청년과 지역사회라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청년들이 각자 분야에서부터 로컬을 풀어내기 어려워 해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이면 때때로 어긋나는 경우가 많은데 서로를 이해하고 변화하는 과정에서 단편적인 ‘윈-윈’이 아닌, 그리고 물질적인 교환에 그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청년마을을 운영하고 있는 것도 있죠. 그래서 철공소거리를 딱딱하기보다 사람들이 부드럽게 느끼고자 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청년들이 철 관련된 것들을 철없게 풀어보자는 의미에서 철부지라는 이름으로 공동체를 만들고 있습니다.”

조영래 대표의 작품.
조영래 대표의 작품.

청년마을을 통해 누구보다 청년을 이해하는 조 씨의 입장에서 청년이 느끼는 고충은 다각도에서 오는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과거라고 별반 다르지는 않겠지만 오늘날 행복의 기준이 점점 다양화되고 있는 것이 그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단다. 다양성이 존중받는 시대가 된 만큼 행복의 기준도 더더욱 개인화되고 다양화되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 보니 그는 청년들이 느끼는 고충이 아픔과 허무감으로 이어지진 않을까 걱정하기도 한다.

“최근 청년 고독사가 문제가 되고 있는 만큼 청년들이 고립돼 있는 느낌입니다. 다들 개인 안에 갇혀 있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품앗이도 하고 그랬지만 요즘은 본인이 손해를 보면 너무 손해를 보나, 혹은 이용 당하나 스스로 계산을 하면서 불행하게 만드는 것처럼 말이죠. 개인이 사회 분위기를 만들고 그 개인이 사회 분위기에 악영향을 주면서 악순환이 되는 것 같아서 아쉬울 따름입니다.”

이외에도 현장에서 부딪쳐가며 예술을 접하고 있는 조 씨는 늘 예술과 문화의 지속가능성을 강조한다. 이름난 예술 작품이 오랫동안 살아 숨쉬는 걸 고려하면 단편적이고 일시적인 지원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아쉬울 수밖에 없다는 거다.

“지역주민하고 기존의 사람들이 무조건 만족하는 방향으로 갈 수는 없겠지만 지속 가능한 모델, 즉 유지보수관리도 해야되고 그런 것들을 절충하는 방향으로 가는 등 다양한 의견들이 녹아 있어야하는데 단편적인 지원에 그치는 게 아쉽죠. 특히 예술가로서 프로젝트를 많이 해봤는데 예술가가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심도있는 아카이빙이 안 일어난다는 문제점이 큽니다. 곧이 곧대로 아무 의미없이 진행되는 결과물, 즉 지속 가능성이 부족한 모델들이 많아서 안타깝죠.”

◆어쩔 수 없는 고향사랑

지역 토박이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내가 나고 자란 고향이 조금이라도 사람들 기억 속에서 잊히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없잖아 있는 것 같다. 이제는 대전도 청년들 사이에서 빈번히 나오는 노잼도시라는 오명을 벗고 예술과 문화는 물론 청년과 지역사회의 이야기를 담은 곳으로 성장했으면 하는 희망도 적잖다. 조 씨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청년들이 자기 목표를 이루는 것도 당연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역과 마을이 쇠퇴하면 로컬 주민들도 똑같이 쇠퇴하기 때문에 청년들이 일종의 브레이크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대신 무조건적인 정착을 강요하기보단 제2의 고향, 제3의 고향이라고 느낄 수 있게 주민들과 청년들이 상생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드는 게 제 목표죠.”

이재영 기자 now@ggilbo.com

조영래 대표.
조영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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