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는 몽골의 평균 고도보다 낮은 1350m 정도이고,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여서 여름에는 매우 무덥고, 겨울에는 몹시 춥다. 울란바토르 시내의 칭기즈칸박물관에서 북서쪽으로 약 30분 거리에는 몽골 라마 불교의 총본산이자 가장 큰 간단사원(甘丹寺)이 있다. 정식 명칭은 간단테그치늘렌 사원(Gandantegchinlen Monastery)으로서 간덴은 미륵보살이 사는 정토인 도솔천(兜率天)을 의미하며, '완벽한 기쁨을 지닌 위대한 장소'라는 뜻이라고 한다.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티베트로 들어온 불교는 전래의 토속 종교와 융합하여 티베트 특유의 불교를 형성하여 밀교(密敎) 혹은 라마교(Lama)라고 했는데, 1368년 명 태조 주원장에게 쫓겨 만리장성 북쪽으로 간 몽골은 북원(北元:1368~1388)이라고 했다. 알탄 칸(順義王:1507~1582)은 몽골족의 결속을 강화하기 위하여 1578년 티베트불교의 겔루파 수장인 ‘소남갸초’에게 ‘달라이 라마’라는 이름을 하사하고 라마교를 국교로 삼았다. 이후 티베트불교의 최대지도자를 달라이 라마(Dalai Lama)라고 하여 대대로 이어오고 있는데, 라마교가 국교가 된 이후 달라이 라마는 왕보다 더 큰 권력을 갖게 되면서 종교와 정치를 관장하는 티베트 최고지도자가 되었다.(자세히는 2024. 3. 28. 복드칸 겨울궁전 참조)

라마 불교가 몽골의 국교가 된 이래 19세기 초까지도 울란바토르 시내에만 100여 개의 라마 사원이 있었으나, 1930년대 구소련의 스탈린 치하에서 모두 폐쇄됐다. 1838년 4대 달라이 라마 복드 게겐이 착공하고, 5대 복드 칸이 완공한 간단사원은 스탈린의 라마교 탄압에서도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수도 울란바토르의 원래 이름은 ‘이흐후레’인데, 이것은 ‘큰 울타리’라는 뜻으로서 간단사원의 담장 주위로 많은 사람이 몰려들어 살기 시작하면서 붙여진 지명이라고 한다.(자세히는 2024. 3. 21. 울란바토르 수흐바타르 광장 참조)

몽골 최대의 라마 사원인 간단사원은 라마 불교의 집합체로서 경내에는 크고 작은 여러 개의 사원과 승려들의 기숙사인 요사채, 불교대학도 있다. 한때는 5000명의 승려가 머물렀다고 하지만, 현재는 승려 150여 명, 승가대학생이 300여 명이 있다고 한다. 몽골인에게 간단사원은 불교뿐만 아니라 몽골의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간단사원은 입장료가 4000투그릭(한화 1600원)이고, 사원 내부를 촬영하려면 따로 7000투그릭을 내고 허가를 받아야 한다. 만일 허가 없이 촬영하다가 적발되면 벌금을 내야 한다. 몽골 통화 투그릭과 원화와의 비율은 2.5: 1이어서 1000원이 2500투그릭이다.

첫째, 간단사원의 여러 사원 중 가장 큰 대불전(大佛殿)은 ‘관음 대불전’이라고도 하는데, 이곳에는 높이 27m에 이르는 불상이 있다. 관음 대불은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큰 불상이라고 한다.

둘째, 간단사원의 본전 주변에는 라마교 형식의 불탑인 스투파(stupa)가 사방에 있다. 스투파는 본래 인도에서 부처와 고승들이 열반 후 유골 즉, 사리를 묻는 일종의 묘지로서 고대 인도에서는 열반한 이를 기념할 만한 장소에 세웠으나, 불당을 짓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예배의 중심이 되는 불당 앞에 세웠다. 스투파는 4세기 초 불교가 중국에 전래하면서 단층인 스투파와 여러 층의 건물 형태인 탑(塔; pagoda)으로 분리되었다.

셋째, 간단사원에는 우리네 사찰과 달리 황금색 원통(經筒: 마니차)이 많이 설치되어 있다. 티베트불교의 특징은 주술을 많이 믿고 ‘주문(만트라)’을 많이 외우는데, 본래 불교의 경문이나 경전을 넣어서 보관하는 용기였던 경통 속에 불경을 새겨서 글을 모르는 대중이 경통을 돌리면 불경을 읽는 것과 같은 공덕을 쌓는다고 했다. 몽골인들이 가장 많이 외우는 주문 ‘옴마니 파드메 흠(唵麽抳鉢銘吽)’은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것으로서 우리말로 ‘오! 연꽃 속의 보석이여!’라는 뜻이다. 관세음보살에게 자비를 빌면 번뇌와 죄악이 소멸하고, 나라의 안녕과 후손들의 건강, 행운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삼국시대에 한반도에 불교가 전래된 이후 초기에는 왕과 귀족의 전유물이었다가 서민들에게 전파된 것은 통일신라 말이었는데, 서민들은 대웅전이나 극락전에서 불상에 기도하기보다 본전 밖에 세워진 탑을 돌면서 소원을 빌어서 ‘탑돌이’가 더 유행했다. 또, 고려 말 몽골의 침략을 받고 부마국이 된 이래 전국의 사찰도 몽골의 영향을 받은 라마교 양식이 많아졌다. 라마 양식으로 새로 지은 사찰도 있었지만, 기존 사찰이 라마 양식으로 개편한 것도 있는데, 오대산 월정사의 8각 9층 탑(국보 제47호)이나 하동 쌍계사의 8각 9층 탑은 라마교의 불탑 양식이다. 또, 경북 예천의 용문사 대웅전 왼편 대장전에도 라마 불교의 경통과 비슷한 '윤장대(輪藏臺: 국보 제328호)'가 있다. 강화도 전등사에도 남을 지나 대조루로 올라가는 숲길에 윤장대 한 개가 있는데, 자세한 설명문도 없어서 어린이들은 장난감처럼 매달리고, 어른들도 로또 복권에 당첨시켜달라는 식으로 가볍게 여기고 있다. 참고로 티베트불교 최고 라마를 달라이 라마라고 하는데, 달라이 라마가 죽으면 다시 환생한다고 믿으면서 그 환생한 아이를 찾는 작업이 대대적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환생했다고 믿어지는 아이를 찾아서 여러 가지 절차를 거쳐서 달라이 라마의 환생으로 판단되면, 오랜 기간 철저히 훈련을 시킨 후 지도자로 삼는다. <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