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소득이 대체로 1만 1000달러 정도에 이르면 ‘감성사회’로 진입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그 정도의 GDP를 기록했던 시기는 대체로 1990년대 중반 이후였을텐데 얼마 뒤 IMF사태로 꽤 오래 시련을 겪었고 월드컵 열기 그리고 미국발 금융위기 등 잇따르는 여러 현안으로 감성사회로 접어들었음을 명료하게 체감하지 못하지 않았을까.

감성사회로 들어서는 변곡점을 지나면 여러 징후가 나타난다. 피부로 느끼는 일상의 변화의 하나는 상품이나 서비스 구매에서 드러나는데 가격이나 품질 위주로 고르던 관습이 디자인과 감성소구를 중시하면서 무언가 ‘필(feel)’이 꽂히는 쪽으로 선택의 가중치가 쏠리게 되었다.

디자인 등 감성요소들이 구매행위의 중요 판별요인으로 자리 잡았고 여성이 독자 소비 집단으로 위상을 굳히게 되었다. 주택과 자동차로부터 소소한 생활용품에 이르기까지 여성의 선택이 결정적인 주도권을 행사하면서 감성사회는 무르익어 갔다. 주5일 근무에 따른 여가, 여행, 취미활동과 레저 그리고 외식문화의 급속한 성장도 그렇고 미디어 특히 인터넷의 급속한 확산으로 일시적 ‘유행’을 넘어서는 ‘트렌드’가 깊숙하게 자리 잡으며 광고, 유통과 소비과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런 여건 속에서 자아발견과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투자에 보다 적극적이 되었고 이른바 ‘프리미엄 서비스’를 선호하는 ‘상위욕구’, 자신의 소득보다 더 높은 지출을 마다않는 이른바 ‘업 트레이딩’ 현상 역시 본격화되었다.

소비를 통한 자기표현 욕구는 우리가 살고 있는 감성사회의 두드러진 현상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과거 내구성 강하고 저렴한 것을 선호하는 소비지출 행태에서 감성을 자극하고 타인과의 차별성, 개성표출을 우선하는 심리성향을 누군가는 튼튼함의 상징 ‘아톰’형 인간에서 섬세한 감성의 ‘캔디’형 인간으로 옮아갔다고 요약하였다.

논리적인 합리성과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는 당위에 기초했던 오랜 사회인식이 바뀌면서 감성에 이끌리는 선택, 다소의 이론적인 모순과 충돌이 있더라도 감성이 이끌리는 범위 안에서는 너그러운 이해와 수용의 자세로 삶을 즐기자는 의식구조는 앞으로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감성이 허용하는 폭넓은 현실수용과 향유 자세는 이즈음 활성화되고 있는 전국 곳곳의 지역축제에서 독특한 발상과 아이디어, 과감한 추진 그리고 소비자들의 열린 수용태도에서 구체화되고 있다. 그동안 축제의 교과서적 논리는 지역 명승지와 자연환경, 별미와 특산품, 역사적 연대기와 인물 그리고 설화 전설 같은 연결고리를 매개로 조직, 향유되어 왔다. 감성문화 사회가 성숙해지는 이즈음 이런 전통적인 개념의 축제문화와 달라지고 있다. 익숙하지 않은, 나아가 생경한 요소의 이러저런 결합이 이루는 신박함과 호기심으로 새로운 축제취향이 펼쳐진다.

​▲ 2024 대덕거리 맥주페스티벌. 대덕구 제공
​▲ 2024 대덕거리 맥주페스티벌. 대덕구 제공

지난 5월 대전 대덕구에서 열린 ‘대덕거리 맥주페스티벌’은 그런 의미에서 발상의 전환이 가져온 기발함, 생소함의 조합이 큰 호응을 얻었다. 대덕구 중요거점지역에서 주말에 열린 이 행사는 대전에 사는 프랑스인이 만드는 맥주를, 맥주와는 별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지역에서 즐기는 생활밀착형 이벤트로 흥미로웠다. 그러고 보니 20여 년 전 ‘나비’와 이렇다할 연관이 없었던 전남 함평에서 ‘나비축제’를 시작하여 세계적인 행사로 자리 잡게 된 사례는 그즈음 우리사회가 이미 감성사회로 접어들고 있었다는 신호탄이 아니었던가 싶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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