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렬왕, 김신의 고향 진예현 군으로 승격

'금의환향 했다'는 뜻으로 '금주'라 명명

충렬왕은 그 이듬해(1305년)에 김신의 고향 진예현을 금주군으로 승격시키고, 가까이 있는 다섯 고을을 소속시켰다.

‘금의환향’했다는 뜻으로 그의 고향을 ‘금주’라고 이름지은 것이다.

충남 금산을 ‘금산’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때부터 시작됐으며, 첫번째 군수가 바로 김신이라고 한다. 당시에는 금산군수를 지금주사라고 했다.

그가 고향으로 돌아올 무렵에 왜구들이 금산에 쳐들어와,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집들을 불태웠으며 재산을 약탈해갔다. 김신의 어머니도 함께 죽었는데, 시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사방은 온통 흰 눈으로 뒤덮여, 찾을 수가 없었다. 시신이라도 찾아서 편히 장사지내야 해마다 제사도 드릴 수 있을텐데, 시신을 찾아내는 것이 가장 큰 일이었다. 그래서 단을 쌓고, 하늘에 기도드렸다. 이레 동안 꼬박 밤마다 기도를 드렸더니, 이튿날 아침에 한 줄기 눈이 녹으면서 좁은 길이 나타났다. 그 길을 따라 가보았더니, 과연 수많은 해골이 쌓여 있었다.

그러나 시신이 불타 버려, 과연 어느 것이 어머니의 시신인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하늘을 우러러 기도드렸다. “하느님! 이것이 만약 내 어머니의 시신이라면 이 뼈가 곧 변색되게 하소서.”

그러자 맑은 하늘에 구름과 안개가 덮히더니, 천둥 벼락이 쳤다. 기도를 마치고 눈을 뜨자, 과연 흰 뼈가 푸른색으로 변하였다. 그래서 이것이 정말 어머니의 시신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김신은 곧 그 뼈를 거두어 정성껏 장사 지냈다.

<일본 정벌에 앞장서다>
김신은 왜구들에게 어머니의 원수를 갚겠다고 다짐하였다.
그런데 몇 년 뒤에 고려 조정에서 원나라와 함께 일본을 정벌하기로 했다.
그 소식을 들은 김신은 어머니의 원수를 갚을 날이 왔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전쟁에 나가겠다고 자원했다. 도원수는 김방경 장군(선 안동김씨 중시조)이었다. 그는 좌군 병마사가 되어, 일본땅 이끼시마에 남보다 먼저 도착했다. 그러나 풍랑이 크게 일어나, 배가 위험하게 되었다. 그러자 부하들을 살리기 위해서, 그는 뱃머리에 서서 하늘에 빌었다. “하느님! 오늘 풍랑이 크게 이는 것은 제가 사람을 많이 죽였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찌 제 한 몸을 아끼느라고 수많은 군사를 죽이겠습니까? 제 스스로 목숨을 바치겠으니, 이 부하들을 살려 주소서.”

그리고는 곧바로 바닷물에 몸을 던져서 죽었다. 그러자 풍랑이 멎었다. 그는 충성과 효성으로 한 평생을 살았으며, 충효를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 나라에서도 그의 충효를 기려, 충간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전북 무주군 안성면 공진리에 그의 묘소가 있고, 재실 덕진재에서 향사한다.

시조 김신의 큰아들 김세유(金世宥)는 부원수(副元帥:부원수는 전시(戰時)에 임명된 임시벼슬로 도원수. 상원수. 원수 다음가는 군의 통솔자)를 지냈으며, 차남 김광유(金光宥)는 호조전서(戶曹典書;정3품 장관)를 역임했다.

김광유의 증손자 김지(金摯)는 1370년(공민왕19) 문과(文科:대과)에 급제하고 한림원 학사(翰林院學士:고려 때 왕의 명령을 받아 문서를 꾸미는 일을 맡아보던 관청이며 1362년(공민왕11)에 예문관으로 바뀜, 학사는 고려때는 뛰어난 학자중에 뽑아 왕에게 시종하던 문관으로 종3품~4품관이었고 한림원, 홍문관, 밀직사 등에 뒀으며, 조선전기에는 중추원의 종2품관), 좌사간(左司諫:고려때 중서문하성에 속한 정6품 낭사)을 거쳐, 사의대부(司義大夫:고려때 문하부의 관직으로 간의대부라고함, 원래는 고려 목종때부터 좌우간의대부가 있었고, 문종때 정4품관을 좌우 각 1명씩 보직했다가 여러 차례의 개칭을 거쳐 1356년(공민왕5) 통합해 간의대부로 하여 종3품으로 승격함, 1372년에 좌우사의대부로 개정했고 사의대부의 직능은 보궐(補闕), 습유(拾遺)등과 함께 낭사(郎舍)로서 봉박(封駁)과 간쟁(諫爭)을 담당함)를 지냈으며,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하자, 태종이 가선대부(嘉善大夫:종2품 품계)로 예조참판(禮曹參判:종2품 차관)을 제수(除授:추천을 받지 않고 왕이 직접 임명함)해 그를 불렀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충절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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