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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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미래를 걱정했으며, 일본의 침략에 맞선 면암(勉菴) 최익현(1833∼1907)의 옷과 신발이 국가유산이 됐다.

지난달 28일 국가유산청은 '면암 최익현 관복 일괄'을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유물은 단령(團領), 사모(紗帽), 삽금대(鈒金帶), 호패(號牌), 목화(木靴) 등 5건으로 구성된다.

단령은 관직에 임명된 사람이 입던 옷으로, 최익현이 당하관을 지냈던 1855~1870년에 착용한 것으로 추정된며, 사모는 1870년 이후의 것으로 판단된다.

삽금대는 허리띠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며, 개항기 조선에 소개된 합성 소재로 추정되는 재료로 바다거북의 등껍질 문양을 본떠 만든 점이 눈에 띈다.

16세 이상 남성에게 발급했던 호패에는 '을묘'(1855년을 뜻함)라는 글자와 최익현의 이름이 새겨져 있으며, 관복을 착용할 때 신던 목화는 당대 제작 기술을 엿볼 수 있는 자료로 평가받는다.

사진=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제공
사진=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제공

그는 흥선대원군과 대립해 서원 철폐, 경복궁 재건, 당백전 발행 등의 정책을 비판하는 상소를 하고 흥선대원군의 퇴진을 논했다. 이후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74세의 고령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전북 태인(현재의 정음)에서 항일의병을 일으켰고 서울진공작전을 계획했지만 실패로 돌아갔다.

최익현은 대마도로 유배를 갔지만 유배지에서 지급되는 음식은 일본이 주는 것이라 여겨 단식을 진행하셨으며, 1907년 순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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