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할머니가 칼국수를 만드는 장면은 참 재미난 구경거리였다. 투박한 손으로 반죽을 치대고 홍두깨로 밀어 납작하게 펴서 접고, 칼로 숭떡숭떡 썰어 면을 술술 풀어내면 어느새 김이 모락모락나는 칼국수가 완성됐다.살짝 데친 애호박을 듬뿍 얹어 후루룩 입 안으로 넘기면 칼국수란 음식은 할머니의 마음처럼 담백하고 따뜻하게 느껴졌다.모두에게 친근한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이 칼국수를 파는 집이 대전엔 유난히 많다.그래서인지 적당히 한끼를 때우고 싶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메뉴가 칼국수다. 격의 없는 친구나 선후배와 점심식사를 하러갈 때 부담 없이 던지는 말도 “칼국수나 한그릇 먹으러 가자”다.칼국수 파는 집이 대전에 많은 이유는 뭘까. 언제부터 칼국수가 대전 사람들의 단골메뉴가 된 걸까.▲대전의 대표음식이 ‘칼국수’인 이유?= 대전에서 길을 걷다 가장 흔히 마주치는 음식점 간판은 단연 ‘칼국수 전문점’이다. 최근엔 칼국수 체인점도 늘고, 소규모로 창업을 하거나 기존 메뉴에 칼국수만 추가하는 식당도 늘어나는 추세다.대전에 칼국수집이 많은 것은 그만큼 지역민들이 칼국수를 즐겨 먹기 때문이다.대전시민들은 칼국수처럼 싸고도 맛난 음식을 찾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또 넣는 재료에 따라 다양한 맛을 낼 수 있어 자신의 기호에 맞는 맛집을 찾아갈 수 있다는 점도 인기를 누리는 이유다.저렴한 가격에 부담없이 누구나 좋아하는 음식이 대전의 칼국수다. 이렇듯 시민 모두에게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지난 2000년 대전시가 선정한 대전의 육미(설렁탕, 돌솥밥, 삼계탕, 구즉도토리묵, 숯골냉면, 대청호 민물고기매운탕)에는 칼국수가 빠졌다.그러나 시민들은 특정 식당이나 지역에 한정돼 있지 않고 대전 어느 곳을 가든지 맛볼 수 있다는 점에서 칼국수를 대전의 대표음식으로 꼽고 있다.이 때문에 시가 올해 지역 음식산업 육성을 위해 추진 중인 ‘대전 대표음식 브랜드화 사업’ 최종 용역 보고회에선 특색음식으로 발굴된 두부두루치기와 함께 칼국수가 올랐다.▲칼국수를 ‘칼’국수라 부르는 이유?= 칼국수란 이름은 밀가루를 반죽, 칼로 잘라 만들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금방 삶아낸 면 위에 잘 익은 김치를 처억 얹어서 먹는 칼국수는 뜨거운 음식이어서 겨울용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오히려 땀을 뻘뻘 흘리는 여름에 더 즐겨먹는 음식이다.칼국수는 닭고기 육수나 멸치?바지락?해물?사골 등으로 국물을 만드는데, 고기나 뼈로 우려낸 국물은 구수한 맛을 내고, 해물로 우려낸 국물은 시원한 맛을 낸다. 건더기로 감자?호박?김?파 등을 사용하며, 닭고기를 채썰어 넣기도 한다.끈기가 많고 좋은 밀가루에 달걀 1개를 잘 풀어서 섞은 물로 되직하게 반죽, 오래 치댄 다음 촉촉한 보에 싸서 20분쯤 재운다. 이 때 날콩가루를 섞어서 반죽하면 더욱 차지고 맛이 좋다.재워 두었던 반죽을 국수 도마에서 얇고 고르게 밀어서 날밀가루를 조금씩 뿌리면서 말아 가늘게 썬다.육수가 팔팔 끓을 때 국수를 넣고 애호박과 파를 채로 썰어 넣어 뚜껑을 닫고 끓인다. 삶은 닭고기를 곱게 찢어서 국수와 함께 넣고 끓여도 좋고 나중에 꾸미로 얹어도 좋다. 국수가 위로 뜨고 애호박이 파랗게 익었으면 그릇에 떠서 대접하면 든든한 한끼 식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