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격리 불구 쌀값 불안정 반복
구조적인 쌀 공급과잉 해소 필요
정부, 재배면적 감축·품질 고급화
수요창출, 산지유통경쟁력 강화도

정부가 고품질 쌀 적정생산체계 마련을 통한 쌀 산업 구조개혁에 나선다. 현재 우리 쌀 산업은 생산보다 소비량 감소율이 더 큰 구조적 공급과잉 상태에 있고 2005년 이후 12차례에 걸친 시장격리에도 불구하고 쌀값 불안정이 반복되고 있는 만큼 구조적인 쌀 공급과잉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구조적 공급 과잉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1인당 쌀 소비량은 2018년 61㎏에서 지난해 56.4㎏으로 7.5% 감소했지만 재배면적은 같은 기간 73만 8000㏊에서 70만 8000㏊로 4.1% 감소하는 데 그쳤다. 또 밥쌀 소비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상황에서 무게 중심의 생산구조가 지속되고 쌀가공식품 시장은 성장하고 있지만 저렴한 정부양곡에 의존하는 양상도 유지되고 있다. 이 같은 구조적 공급 과잉 상황에서 시작격리를 통한 쌀값 안정 효과는 제한적이고 전략작물직불제 등 기존 방식만으론 문제 해결에 한계가 있다고 농식품부는 진단하고 있다. 올해 벼 회귀면적은 1만 9000㏊로 추정되며 쌀 수급안정 예산은 2조 8000억 원으로 전체 농림예산의 15.1%를 차지한다.

◆벼 재배면적 감축
농림축산식품부는 12일 이 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쌀 산업 구조개혁 대책(2025~2029년)을 내놨다. 쌀 산업이 더 이상 시장격리에 의존하지 않고도 수급 안정을 유지하고 소비자 수요에 기반한 고품질 중심 생산체계로 전환할 수 있도록 벼 재배면적 감축, 품질 고급화 등 5대 주요 과제를 추진하는 게 골자다.

우선 벼 재배면적 8만㏊ 감축을 목표로 내년부터 ‘벼 재배면적 조정제’를 시행한다. 감축 면적 8만㏊를 시·도별로 배정하고 농가는 타작물 전환, 친환경 전환 등 다양한 방식으로 면적 감축을 이행하도록 한다. 감축을 이행한 농가 중심으로 공공비축미 매입 등 정부 지원 인센티브를 제공할 계획이다. 감축 목표인 8만㏊는 올해 벼 재배면적(69만 8000㏊)의 11%에 해당하고 여의도(290㏊)의 276배와 맞먹는다. 재배 면적 감축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정부는 시도별 현장지원단을 운영하는 한편 위성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 농가 간 감축 면적 거래 등의 방식을 발굴하기로 했다.

정부는 또 벼 재배에서 타 작물로 전환하는 농가를 지원하기 위해 전략작물직불제를 확대(2024년 1865억→2025년 2440억 원)하고 하계 조사료와 밀의 경우 지급단가를 인상해 지원한다. 식품기업과 연계해 콩 등 전략작물의 제품개발·판촉 등 소비 기반 확대를 지원하는 한편 논에 타 작물을 재배하기 위한 배수 개선(2025년 신규 10지구), 논 범용화 등 지원도 확대한다. 신규 임대 또는 계약 갱신 간척지에 대해서는 일반 벼 재배를 제한할 방침이다. 현재 간척지 내 일반벼 재배면적은 6800㏊ 수준인데 내년엔 5500㏊로 1300㏊ 줄이고 단계적으로 제한 폭을 늘려 2029년엔 500㏊까지만 허용할 예정이다.

◆품질 고급화
쌀 산업 생산과 소비 구조를 고품질 품종 중심으로 전환하는 작업에도 속도를 낸다. 먼저 고품질 쌀 전문생산단지(50~100㏊)를 지정·운영한다. 생산자단체 주도로 비료 저감, 고품질 쌀 생산을 담당하도록 한다. 시·도별로 2025년 1곳씩 시범운영하고 단계적으로 확대한다. 정부 보급종 공급체계도 소비자 선호 품종 중심으로 개편한다.

맛과 향이 뛰어난 최우수 품종(15개 내외)을 새롭게 선정해 정부 보급종으로 집중 보급(2029년까지 90%)한다. 지역보다는 품종 중심으로 소비자 인식을 전환하기 위해 단일품종·인증쌀(친환경 등) 등 품종별 특성을 부각한 홍보에도 주력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단수가 낮고 품질이 좋은 친환경 벼 재배를 2029년 6만 8000㏊까지 확대한다. 친환경 벼의 경우 공공비축미 매입 시 인상된 가격으로 우선 매입하고 일반 벼에서 친환경 벼로 전환 시 공공비축미로 전량 매입(최대 15만톤)한다. 친환경직불 논 단가도 올해 70만 원/㏊에서 내년엔 25년 95만 원으로 인상한다.

고품질 쌀 생산·유통 확산을 위해 양곡표시제도 개편한다. 현재 임의 사항인 단백질 함량 표시를 의무사항으로 변경(2027년)하고 내년부터 쌀 등급 중 ‘상’, ‘보통’을 대상으로 싸라기 최고 혼입 한도를 하향한다. 현행 상 등급 싸라기 함량은 7%, 보통 등급은 12%인데 이를 상 6%, 보통 10%로 낮춘다.

◆신규 수요 창출
농식품부는 식품기업의 민간 신곡 쌀 활용을 확대하기 위한 제도 개선에도 나선다. 정부양곡에서 민간 신곡으로 전환하는 식품기업에 대해 식품·외식 정책자금 우대를 제공한다. 식품기업·RPC와 연계한 수출·가공용 생산단지를 시범 구축하고 가공밥류 정부양곡 공급은 단계적으로 제한한다.

전통주 산업 육성을 위한 세제 혜택과 규제 완화도 추진한다. 제조업체 부담 완화를 위해 내년부터 주세 감면 구간을 확대(30% 감면구간 신설)하고 지역특산주 주원료 기준을 완화한다. 우수 전통주에 대한 대형 유통채널 입점 및 건배주 활용 등 판로도 적극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쌀가공식품과 쌀 수출도 확대한다. 쌀가공식품 수출 확대(올해 10만→2029년 18만톤)를 위해 쌀가공식품 수출 현지 홍보관을 신설(싱가폴·중국 등)하고 온라인 B2B 판매관 확대 등 판로를 지원한다. 밥쌀용 쌀은 싱가폴 등 유망한 신규 시장을 중심으로 단계적으로 수출을 확대한다. UN 기구인 WFP(유엔세계식량계획) 등과 협력해 아프리카·아시아 중심으로 식량 원조도 확대(올해 11만톤→내년 16만톤)한다.

쌀에 대한 소비자 인식을 개선하는 작업에도 역량을 모으기로 했다. 탄수화물·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전환하기 위해 과학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소비자 체험(백화점 등), 전문가 포럼, 방송 등을 통해 쌀 소비를 홍보한다. 또 초등학생 대상 ‘곡물체험학교’를 영유아 대상으로 시범적으로 확대한다.

◆산지유통 경쟁력 강화
산지유통 구조를 고품질·단일품종 중심으로 전환한다. 고품질 쌀 유통 RPC를 지정하고 생산부터 가공까지 이력을 관리하는 생산이력제를 시범적으로 추진한다. 혼합미 비율을 지난해 기준 42%에서 2029년 10% 수준으로 낮추기 위해 정부 지원 RPC의 단일품종·고품질 쌀 매입을 유도한다.

산지유통 산업 체질을 개선하기 위해 시장 거래질서 확립과 RPC 수익구조 개편을 추진한다. 경영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해 회계정보 공시, 경영계획서 제출 의무화 등을 추진하고 저가판매 등 시장교란 행위를 제재한다. RPC 이익의 농가 환원을 유도하는 한편 생산자와 RPC 상호 합의에 의한 수탁거래도 활성화(2023년 0.3%→2028년 20%)한다. RPC 수익구조 개선을 위해선 단순 도정에서 벗어나 제분, 쌀가공식품 생산 등 사업 다각화 촉진 방안을 마련한다.

◆R&D 기반 확충
정부는 고품질 쌀 생산과 전략작물 전환을 위한 생산기술 R&D(연구개발)를 추진한다. 쌀 적정생산을 위한 비료 저감 기술을 개발하고 지역별로 전략작물 이모작 모델을 개발한다. 논 재배에 적합하도록 논 콩, 유지작물(깨)을 대상으로 품종·재배기술을 개발·보급한다.

장립종·헬스케어 등 유망 식품 분야 맞춤형 R&D를 지원한다. 외국인 수요가 높은 장립종은 품종개발 신규 R&D를 추진하고 헬스케어 식품은 혈당 저감 기능성 품종 등을 활용한 소재화, 제품개발을 지원한다. 현장에 기반한 R&D 수요 발굴을 위해 ‘쌀가공식품 R&D 협의회’를 운영한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의 대안
정부가 이날 내놓은 쌀 산업 구조개혁 대책은 남는 쌀을 정부가 사들이도록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의 대안이기도 하다. 야당이 추진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미곡 가격이 양곡수급관리위원회 심의를 거쳐 정하는 기준 이상으로 폭락(폭등)하거나 폭락(폭등) 우려가 있을 경우 미곡 매입·판매 대책을 수립·시행 하도록 하고 당해연도 미곡의 예상 생산량을 추정해 미곡의 공급량을 선제적으로 조절하기 위해 농협 등에 당해연도 생산된 미곡을 매입·판매하게 한 뒤 손실을 보전하는 등 필요 사업을 지원하도록 하는 안을 담고 있다.

정부는 그러나 쌀 공급 과잉 구조가 심화돼 있고 쌀 의무매입제 시행 시 수요량 이상의 쌀이 계속 생산돼 소비 감소 추세를 감안할 때 쌀값 하락 또는 쌀값 상승 요인이 없어 특정 가격대에서 하방정체할 가능성이 크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물가 상승을 감안하면 실질적으로는 지속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또 쌀 의무매입에 따른 과잉 생산 유발과 이에 따른 가격 하락으로 재정소요액은 증가할 뿐만 아니라 쌀에 대한 과도한 재정 지원은 청년농·스마트팜 등 미래 농업을 위한 투자 확대를 어렵게 해 장기적인 농업 발전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만큼 법 개정안을 수용할 순 없다는 입장이다.

농식품부 최명철 식량정책관은 “쌀 산업 구조개혁 대책 추진으로 구조적인 쌀 공급과잉을 해소하고, 관행적 생산체계를 소비자가 원하는 고품질 ·친환경 체계로 전환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쌀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쌀값 안정에도 기여할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도록 정책 과제를 차질없이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기준 기자 lkj@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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