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엘의집 대전역 무료급식소의 열기]

“하루 한 끼라도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해요.”

설이라고 변하는 건 없다. 어려운 이웃을 위한 무료급식소가 연휴에도 변함 없이 문을 열었다. 한파에 몸 녹일 곳조차 없는 이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베풀기 위해서다.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무료급식소는 고물가와 자원봉사자 감소로 운영이 녹록지 않은 상황이지만 누군가에게 온정을 나눌 수 있다는 보람에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후원금으로 떡국·꼬치전 등 조리 제공
청소년 등 자원봉사자들 힘 보태지만 
고물가·봉사자 감소로 운영 쉽지 않아

▲ 지난달 29일 대전역 광장에서 봉사자들이 무료급식을 배식하고 있다.

설날이었던 지난달 29일 오후 7시경 대전 벧엘의집(대전시 쪽방상담소). 음식 조리를 마친 자원봉사자들이 배식에 앞서 테이블에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조리실 한 편에는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꼬치전과 떡국, 꿀떡 등이 먹음직스럽게 준비돼 있었다. 설에 맞춰 평소보다 특별함을 한 술 더한 것이다. 봉사자들과 인사를 나누는데 몇몇 얼굴이 눈에 띄었다. 한눈에 봐도 어려보여서다. 아니나 다를까, 최연소 봉사자 나이가 14살, 예비 중학생이다. 봉사에 참여하기 위해 혼자 도시철도를 타고 왔단다.

A 양은 “엄마가 자원봉사를 다닐 때 많이 데리고 다니셨다. 지금은 일하고 계셔서 같이 봉사하기가 어려워졌다. 혼자라도 해보고 싶어 왔다. 2~3개월째인데 매주 수요일마다 함께하려 노력 중이다”라며 미소지었다.

지적장애가 있지만 봉사 1044시간을 기록하며 대전시의회 의장상과 동구청장상까지 받은 고등학교 3년생과 한국봉사활동 문화를 체험하고 싶어 처음 방문한 30대 베트남 청년도 있었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배식 시간이 다가왔다. 벧엘의집 입구에 트럭 한 대가 들어섰고 봉사자와 함께 음식을 날랐다. 약 200인분이 주는 무게는 그 의미만큼이나 무거웠다.

지난달 29일 대전역 광장에 무료급식을 기다리는 사람들과 물병, 돌 등의 짐이 대신 일렬로 세워져 있다.
지난달 29일 대전역 광장에 무료급식을 기다리는 사람들과 물병, 돌 등의 짐이 대신 일렬로 세워져 있다.

길 곳곳에는 녹지 않는 눈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가만히 서 있기 힘들 정도로 추운 날씨였다. 대전역 광장에는 어림잡아 160명 정도의 이웃이 흩어져 있었다. 바닥에는 동그라미와 X자가 희미하게 그려져 있었고 그 위에는 물병, 돌 등이 대신 서 있었다. 먼저왔음을 알리는 표식이었다. 배식 시간이 다가오자 표식의 주인들이 나타났고 맨 앞에 선 한 이웃은 ‘새벽 5시 30분부터 기다렸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배식 준비가 끝나자 봉사자에게 음식이 배정됐다. 비닐장갑을 끼고 1인당 음식 2개씩 배식을 시작했다. 한파에 식은 전이 양손의 온기를 빼앗았다. 옆 봉사자는 깻잎지를, A 양은 김치를 비닐장갑만 낀 채 배식했다. 손이 시리다는 말이 계속해서 들렸지만 그 누구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견뎠다.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덕이었다.

노숙인 B(58) 씨는 “메뉴를 보고 ‘설이라 떡국도 먹는구나’ 싶었다. 끼니 챙기기 어려워 하루 한 끼만 먹어도 괜찮은데 고마운 일이다. 아직 사회가 어려운 사람을 돕고 인정이 있음을 느꼈다”라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대전역 광장에서 기자(오른쪽)와 봉사자들이 노숙인에게 음식을 배식하고 있다. 권용준 벧엘의집 목사 제공
지난달 29일 대전역 광장에서 기자(오른쪽)와 봉사자들이 노숙인에게 음식을 배식하고 있다. 권용준 벧엘의집 목사 제공
기자가 배정받은 꼬치전.
기자가 배정받은 꼬치전.
지난달 29일 대전역 광장에서 봉사자들이 노숙인에게 음식을 배식하고 있다. 권용준 벧엘의집 목사 제공
지난달 29일 대전역 광장에서 봉사자들이 노숙인에게 음식을 배식하고 있다. 권용준 벧엘의집 목사 제공
지난달 29일 대전역 광장에서 봉사자들이 노숙인에게 음식을 배식하고 있다. 권용준 벧엘의집 목사 제공
지난달 29일 대전역 광장에서 봉사자들이 노숙인에게 음식을 배식하고 있다. 권용준 벧엘의집 목사 제공

배식받은 이들은 길 곳곳에 자리를 잡고 식사했다. 계단 또는 찬 바닥에 앉아 먹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서서 급히 먹는 이도 많았다. 춥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 노숙인은 “감수해야죠”라고 답했다. 잔반은 봉사자들이 한 데 모았고 정리가 끝난 뒤에는 다시 벧엘의집으로 향했다. 설거지 등 뒷정리를 위해서다. 이들의 노고는 오후 9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다.

벧엘의집이 운영하는 무료급식소는 매주 수요일과 일요일 오후 8시에 대전역 광장에서 열린다. 지자체 지원 없이 후원금으로만 운영돼 사정이 녹록지 않다. 경기침체와 고물가로 저렴한 식재료를 수급하기 어려운 데다 코로나19 이후 자원봉사자 수가 줄어서다.

권용준 목사는 “무료급식 봉사는 정부 보조금 사업이 아니다. 후원금으로만 운영하다 보니 고물가로 인해 어려움이 많다. 자치단체에 노숙인 무료급식소를 설치·운영해 달라 몇 번 요청했지만 예산 편성, 장소 선정 등의 이유로 되지 않았다. 코로나19 이후 자원봉사자도 3분 1 정도 줄었다. 행정의 적극적인 지원과 시민 관심이 잇따랐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말했다.

글·사진=김세영 기자 ksy@ggilbo.com

지난달 29일 대전역 광장에서 봉사자들이 잔반을 치우고 있다.
지난달 29일 대전역 광장에서 봉사자들이 잔반을 치우고 있다.
지난달 29일 대전 벧엘의집에서 봉사자들이 뒷정리를 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대전 벧엘의집에서 봉사자들이 뒷정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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