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전 대전문인협회장

어느 한적한 전원주택 마당 옆 계곡 바위 위에 작은 꽃 몇 피어 있습니다. 이름도 모릅니다. 주위에는 여러 종류의 풀들이 함께 자라고 있습니다. 물 한 방울,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곳입니다. 그런데도 용케 생명을 유지하며 꽃까지 피워 올렸습니다.

도저히 꽃이라고는 피워낼 수 없는 척박한 땅인데도 꽃을 피웠습니다. 그 꽃이 어떻게 거기에 피어났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 꽃 바로 옆에는 허리가 굽은 키가 좀 큰 꽃도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는 늘 그 작은 꽃을 바라보며 신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곳에서 어떻게 피어날 수 있었는지 늘 궁금했던 키 큰 꽃이 물었습니다.

“작은 꽃아, 너의 이름은 무엇이니? 어떻게 그런 곳에서 꽃을 피우며 살고 있니?”

그 조그만 꽃은 밝은 목소리로 대답합니다.

“저는 여기가 좋아요. 제 이름은 ‘기쁨이’에요. 아무 걱정 없는 이곳에서 저는 맘껏 자라요. 물이 없을 땐 참아요. 하늘에서 자우(慈雨)를 내려주시면 그때 실컷 먹어요. 이 집 주인은 나 같은 건 신경도 안 써요. 그러다가도 가끔 내 곁으로 다가와 예쁘다는 말을 할 때도 있어요.”

긍정의 힘은 대단합니다. 긍정의 힘은 촛농처럼 굳은 마음도 녹여줍니다. 행복이란 돈도 명예도 지위도 변변치 못한 곳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생명체입니다. 부정의 생각은 주인을 움츠러들게 하고, 바깥 활동도 못 하게 합니다. 부정의 생각은 주인을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기뻐합니다. 시궁창이지만 냄새도 맡지 못합니다.

감각 없는 물건은 부정도 긍정도 모릅니다. 사람이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래도 그가 삶을 향유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실패가 성공을 견인하듯이 부정적 생각이 긍정의 생각을 생산해냅니다. 별은 사람이 바라보지 않으면 빛나지 않습니다. 함께 보면 더욱 빛납니다. 촛불이 다른 많은 촛불에 불을 붙여 준다고 해서 그 촛불의 불빛이 흐려지지 않습니다.

‘기쁨이’가 자라는 곳에 가끔 소쩍새가 찾아옵니다. 태양이 따뜻한 햇볕을 선물로 주고 갑니다. ‘기쁨이’는 그들이 준 꽃가마를 타며 기뻐합니다. 지고지순한 사랑은 화사한 안개꽃처럼 그에게 아름다운 옷을 입힙니다. 어떤 날은 벌과 나비가 날아와 꽃술을 더듬으며 사랑하고 싶다 유혹합니다. 아마도 그가 품고 있는 우아한 향을 탐내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사랑이 사랑을 낳습니다.

오동나무는 천 년을 묵어도 그 속에 노래를 품고 있습니다. 매화는 평생 추위와 싸우면서 살아도 향기를 잃지 않습니다. 달은 천 번 만 번 모양을 바꾸지만 원래 근본은 남아 있습니다. 버드나무는 백 번을 찍어내도 또 새로운 가지를 내보냅니다. 원래 긍정의 품성을 타고났기에 그럴 것입니다. 감각 없는 것들은 우울을 모릅니다. 우울을 느낀다는 건 건강한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긍정의 품성을 소유해야만 기쁨이 생성됩니다. 오늘 밤 물바가지로 매화 향을 퍼담고, 오동나무의 노래도 퍼담고 싶습니다.

내 가슴의 자명종이 유년 시절 보이스카우트 선서처럼 아침 점호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나도 ‘기쁨이’처럼 긍정의 마음으로 오늘 하루 멋지게 보내려 합니다. 텃밭에서 가꾼 행복 뜯어다 반찬 만들고, 새벽 별에게 쌀을 얻어다 아침상 차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먹고, 선물로 받은 오늘 열심히 살고 싶습니다. 종소리가 푸르게 울려 퍼지는 오늘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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