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우리에게 일부 특권층만 누리는 것으로 인식되던 외국 여행이 자유화된 것은 86서울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을 치른 뒤인 1989년부터다. 누구라도 여권만 있으면 자유롭게 해외여행을 할 수 있게 되면서 보고 듣고 체험하는 국민이 늘어나 진정한 지구촌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실감하게 되었다. 물론, 초기에는 1960년대 경제성장에 힘입은 일본인들이 가까운 한국 등 동남아 관광을 시작하면서 가이드가 높이 쳐든 삼각 깃발 아래 유치원생처럼 줄을 지어 경복궁이나 박물관 등 고궁과 관광지를 찾던 패키지 모습을 우리가 보여주었지만, 지금은 친구나 연인 혹은 가족끼리 떠나는 자유여행이 많다. 또, 초기에는 여행 국가 숫자를 하나라도 더 늘리려고 허리 펼 틈도 없이 돌아다니고, 대상지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유명 역사 유적지를 찾는 것이 대부분이었으나, 지금은 등산, 트레킹, 혹은 소문난 현지 맛집을 찾아 나서는 마니아들도 많아졌다. 우리 가족은 역사 유적을 좋아하는 내 탓에 유적지를 찾는 것이 최우선이지만, 숙박업소며 현지 맛집을 찾는 것은 전적으로 자녀들의 몫이다. 이렇게 유적지, 숙박과 맛집을 조율하여 여행코스를 상의하는 것도 쏠쏠한 즐거움인데, 외국은 한번 방문으로 끝난 곳도 있지만, 대부분 서너 차례 이상 찾아갔다, 많게는 일고여덟 번째 여행한 나라도 있다.
대만 여행에서도 공항에서 숙소를 찾은 뒤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이 ‘타이베이의 명동’이라고 하는 MRT 시먼역(西門驛) 부근에 있는 ‘타카오 1972’(Takao 1972)였다. 시먼역 일대는 시내 번화가여서 크고 작은 호텔 등 숙박업소와 레스토랑이 많고 야시장도 있지만, 미드타운리처드슨 호텔 1층에 있는 타카오 1972는 샤부샤부 훠궈 맛집으로 소문났다.
우리 가족은 장제스 총통의 관저였던 쓰린 관저 공원(西林官邸)과 순익 대만원주민박물관을 관람한 뒤 택시를 타고 시내로 들어오면서 쓰린 야시장(士林夜市) 입구에서 내렸다. 타이베이에는 용산사 옆의 화시제 야시장(華西街夜市), 주머니가 가벼운 대학생과 젊은 직장인이 많이 찾는 사대 야시장(師大夜市), 규모는 비교적 작지만 로컬 음식과 현지인의 생활 모습을 생생하게 느껴 볼 수 있는 닝샤 야시장(寧夏夜市) 등 야시장이 10여 군데 있지만, 쓰린 야시장은 타이베이에서 가장 큰 야시장이다. 본래 야시장은 밤에만 문을 여는 시장을 뜻하지만, 지금은 대부분 낮에도 장사하고 밤이 되면 더 성황이다. 타이베이 시내에서 곧장 스린 야시장을 찾아간다면, 지하철 단수이신이선 젠탄역(捷運劍潭站)에서 내리면 도보로 약 6분 거리다. 참고로 쓰린 야시장은 ‘쓰린 구에 있는 야시장’이지만, 단수이신이선 쓰린역(捷運士林站)에서 내리면 약 9분 정도 걸리므로 젠탄역에서 내리는 것이 훨씬 가깝다.
대만의 야시장은 흉측한 전갈, 지네 같은 몬도가네식인 북경의 왕푸징 거리(王府井大街)의 포장마차와 큰 차이가 있고, 베트남 호인의 투본강 넘어 넓은 포장마차촌과도 구별된다(자세히는 2020. 2. 19. 북경 왕푸징 거리 참조).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서울시는 외국인들에게 혐오감을 준다고, 리어커 행상이며 포장마차 등을 모두 쫓아내고, 보신탕집도 큰길에서 보이지 않는 뒷골목으로 옮기도록 강요했는데, 번듯한 빌딩의 백화점보다 이렇게 서민들이 붐비는 재래시장이 진짜로 사람이 사는 모습이다. 요즘은 우리도 서울 번화가인 명동거리에서 길거리음식을 즐비하게 볼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시야가 넓어졌다는 방증일 것이다.
쓰린 야시장 골목에 들어서면 값싼 옷가지며 형형색색의 휴대전화 고리 등 잡화점들이 빽빽하고, 행인이 붐비는 것은 우리네 여느 시골 장터 모습과 비슷하다. 쓰린 야시장 골목에는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도교 사원인 자성궁(慈誠宮)이 마치 점포처럼 울긋불긋한 단장을 하고 문을 활짝 열고 있어서 얼핏 시장 속의 여느 잡화점 가게와 비슷하다. 대만에서 사원이 이렇게 시민들 곁에 가까이 있는 것이 고고한 우리네 전통 사찰과 크게 다르다.
쓰린 야시장은 약간은 노후화된 지하 1층, 지상 3층인 상가건물인데. 큼지막한 네온 간판이 멀리서도 눈에 띄어서 찾아가는 것은 어렵지 않다. 1층은 잡화류, 채소류, 과일류 등을 파는 시장이고, 2~3층은 주차장이다. 지하 1층 전부가 야시장인데, 시장 건물 양쪽에 야시장 입구임을 알려주는 화살 표시와 함께 안내판이 걸려있고, 지하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도 세 군데나 있어서 크게 혼잡스럽지 않다, 쓰린 야시장에는 어느 나라에서 온 여행자이건 그 입맛을 모두 만족시켜 줄 수 있을 만큼 다양하고 풍성한 먹거리가 가득하지만, 우리나라 동대문시장처럼 24시간 열리지 않고 오후 5시부터 11시 사이에만 문을 연다는 점도 알아두면 좋다.
야시장의 점포는 약 380개라고 하는데, 점포마다 점포의 일련번호가 적혀있고, 상호와 메뉴, 가격을 적은 안내판이 어지럽다. 하지만, 이런 메뉴판이 없더라도 무엇을 얼마에 파는지 직접 눈으로 보고 알 수 있다. 점포들은 가운데에 서로 등을 맞대다시피 한채 길게 늘어서 있고, 또 사면의 벽을 등진 가게들이 삥 둘러 있어서 여행객은 통로를 따라 한 바퀴 삥 돌아보면서 음식 메뉴들을 눈요기한 뒤, 음식을 고른다. 점포마다 형형색색의 먹거리를 눈요기한 뒤 고르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더러는 먼저 다녀간 친구들로부터 전해 받은 음식 메뉴와 점포의 번호까지 알고 곧장 그 점포로 직행하는 이들도 많다. 야시장에서 파는 음식은 티본스테이크, 우육면 등 보통 1인당 한화 5000 원에서 1만 원이면 괜찮은 음식을 먹을 수 있다. 또, 지상의 점포들과 달리 긴 장의자에 앉아서 먹을 수 있고, 대부분 식사 메뉴라는 점도 특징이다. 쓰린 야시장은 관광객은 물론 현지인들도 퇴근길에 잠깐 들러서 저녁을 해결하기도 하고, 또 주머니가 가벼운 젊은 연인들이 부담 없이 찾아오는 데이트 코스라고 하는데, 놀라운 것은 쓰린 야시장의 점포는 개인 소유가 아니라 타이베이시에서 직접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몰려드는 시장 바닥이다 보니, 소매치기, 소지품 분실 사고가 잦아서 외국 관광객에게 각국어로 소매치기 위험을 알리는 경고판이 곳곳에 붙어 있고, 상인과 외국인 여행객과 의사소통이 잘되지 않아서 보디랭귀지로 권하는 음식을 시식 음식인 줄 알고 냉큼 받아먹은 것이 사실 판매하는 것이었다고 해서 분쟁도 자주 벌어진다고 한다. 타이베이시 당국에서는 이런 마찰을 없애려고 정찰제 가격 표시, 저울을 이용한 측정 등을 의무화하고 위반자를 단속한다고 했지만, 공무원이나 경찰관들이 순찰하는 모습은 눈에 띄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