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대만 북부 신베이시에서 여행의 필수코스라고 하는 예스진지 4곳 중 마지막 코스인 지우펀(九份)은 황금박물관으로 유명한 진과스(金瓜石)에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몇 개 넘은 산간마을이다. 지우펀이란 지명은 9가구 주민이 사는 두메산골로서 먼발치로 바라보이는 바다를 통해서만 다른 지역과 왕래할 수 있을 만큼 험준해서 누군가가 외지에 나가서 물건을 사 올 때면 9가구가 나눠서 쓰던 관습으로 생긴 지명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다른 설은 1893년 청의 광서제 때 이곳에서 금광이 발견되어 대만의 토속어로 ‘금이 있는 지역(goubenna)’이라고 불렀지만, 광둥성에서 건너온 대륙인들이 ‘지우펀’으로 잘못 들으면서 생긴 지명이라고도 한다.
첩첩산중 지우펀은 가까운 진과스에 금광이 개발되어 지우펀으로 가는 도로가 뚫리면서 광부들의 광산촌이 생겨났다. 도로 아래 길가에는 대만 어디서건 흔하게 볼 수 있는 도교 사원도 술집만큼이나 화려하게 꾸며졌고, 금광이 한창일 때는 밀려든 외지인들로 밤이면 등불이 휘황찬란하고 술집으로 흥청거린다고 해서 ‘작은 홍콩’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렇지만, 진과스 금광이 시들해지면서 폐광촌으로 변하자, 지우펀도 직격탄을 맞았다. 암울했던 지우펀의 역사는 1989년 후효현 감독이 제작하고 양조위, 신수분, 진송용 등이 출연한 영화 ‘비정성시(非情城市)’를 통해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지우펀에 사는 임씨(林氏) 일가의 네 아들을 통해서 대만 현대사의 격동과 혼란을 그린 영화는 1989년 제46회 베니스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하였을 뿐만 아니라 ‘세계 100대 영화’ 중 하나로 선정되었는데, 이후 세계 각국에서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면서 관광명소가 되었다. 최근에는 일본의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배경지로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치렀고, SBS-TV 드라마 ‘온에어’, ‘꽃보다 할배’ 등의 촬영지로도 알려졌다(영화 ‘비정성시’에 관하여는 2025년 2월 5일, 28일 평화기념공원 참조).
1991년 대만 정부가 진과스와 지우펀을 관광지로 개발했다(예스진지에 관해서는 2025년 3월 12일 예류 지질공원 참조). 타이베이에서 지우펀까지는 기차와 버스 편이 있지만, 기차는 타이베이 중앙역에서 루이팡(瑞芳)행 기차를 타고 40분쯤 간 뒤 루이팡 역에서 내려서 역 광장 길 건너에서 ‘지우펀/진과스 방면’ 시외버스로 갈아타고 약 15~20분 정도 간다. 이렇게 갈아타는 번거로움 때문에 버스를 타고 직접 가는 것이 훨씬 편리한데, 시외버스는 타이베이 MRT 중소야 푸싱 역(忠孝 復興 站)의 소고 백화점 맞은편 버스정류장에서 ‘지우펀/진과스’행 1062번 시외버스를 타면 약 1시간쯤 걸린다. 버스 전면 유리창에 ‘지우/진과스’란 전광판 안내가 큼지막해서 멀리서도 금방 알아볼 수 있다. 버스는 매 20~30분마다 출발하고, 지우펀을 거쳐서 진과스가 종점이다. 버스요금은 타이베이 교통카드인 EZ-카드(悠游卡)로 낼 수도 있다. 우리 가족은 택시투어로 진과스를 거쳐서 지우펀에 도착했다.
사실 지우펀은 산 중턱에 형성된 광산촌 마을이지만, 지우펀 관광은 광산촌이 아니라 지우펀 파출소와 관광객 센터(九份遊客中心)가 있는 가파른 골목길에 형성된 가게들이다. 이곳은 폐광촌을 개발한 곳이어서 젊은이들의 취향에 맞도록 골목마다 독특한 분위기의 100여 개의 상점과 음식점, 찻집들이 특성화되어 있다. 이 골목길을 ‘험한 산길’이라고 하여 슈치루(堅崎路)라고 하며, 지우펀 파출소 옆에는 슈치루를 정비했다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 산 위로 이어지는 가파른 돌계단을 따라서 벌집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는 수많은 가게에서는 온갖 먹거리와 기념품을 팔고 있는데, 계단 양쪽뿐만 아니라 한 계단을 올라가면 다시 양쪽으로 뚫린 골목들에 가게가 무한히 펼쳐져서 마치 개미굴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지우펀에서 랜드 마크라고 할 만큼 가장 유명한 곳은 영화 ‘비정성시’의 촬영 장소로 알려진 ‘찻집 비정성시’인데, 찻집은 지우펀 파출소에서 골목길을 올라간 첫 골목의 오른쪽에 있는 2층짜리 점포다. 또, 비정성시 찻집에서 골목을 따라 올라간 두 번째 계단의 왼편에는 일본식 아메이 찻집(咖啡茶樓)이 있고, 오른쪽에는 중국식 찻집인 해열루다방(海悅樓茶坊)이 있다. 이 가게들은 비좁은 골목길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단층 건물 속에서 우뚝 솟은 5층 건물이어서 지우펀에서 조망이 가장 좋은 장소로 소문이 났다. 어떻게 이 좁은 골목에 건축자재를 운반해서 높은 건물을 지었는지 놀랍기만 하다. 우리 가족은 두 찻집을 각각 들어가서 눈요기한 뒤에 아메이 찻집에 자리를 잡았다. 아메이 찻집에서는 송홧가루로 만든 떡과 뜨거운 녹차를 무한 리필 서비스를 해주었다. 두 찻집 모두 매우 비좁은 계단과 홀이었지만, 이곳에서 멀리 내려다보이는 지룽항(基隆港)의 전망은 아주 멋있었다.
지우펀에서는 해가 질 무렵부터 하나둘 밝혀지기 시작하는 울긋불긋한 홍등(紅燈)으로 유명하다. 홍등은 광산이 흥청거릴 때 힘든 하루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광부들을 유혹하던 술집들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하는데, 지우펀의 홍등은 북경의 왕푸징 거리나 베트남의 호이안(會安) 등 화교들이 만든 동남아 어느 도시의 거리보다 화려해서 외국인에게 이국적인 정취를 느낄 수 있었다. 지우펀은 낮에는 밀려든 관광객들로 시장바닥처럼 발 디딜 틈도 없이 붐비다가 밤이 되면 썰물처럼 빠져나가서 일부러 밤에 이곳을 찾거나 아예 민박하면서 야경과 맛집을 즐기는 여행객이 많다. 민박 2인실은 1500대만 달라(한화 6만원), 4인실은 2500대 만 달러(한화 10만 원) 정도로 만만치 않지만, 주말에는 그나마 예약이 힘들다고 한다. 그러나 난무하는 한자와 일본어로 쓰인 가게의 간판들과 먹거리 메뉴들을 바라보자면, 마치 일본의 어느 관광지에 온 것 같은 착각조차 들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