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대행, 국무회의서 ‘재의’ 요구
자본시장법 개정 통한 해법 고수
민주, ‘억측…즉각 철회하라’ 촉구
“정부, 재벌 민원창구 전락” 비난

‘대통령 탄핵’ 정국 속에서도 ‘입법권’과 ‘거부권’의 무한 반복이 되풀이되고 있다. 한덕구 대통령 권한대행 총리가 직에 복귀하자마자 국회에 ‘재의요구권’을 행사했다. 대상은 상법 개정안이다.
한 대행은 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최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에 대해 재의를 요구했다. 이 법안은 주식회사 이사의 충실 의무를 강화한 게 골자로 민주당은 거센 비난을 무릅쓰고 개미투자자의 어려움을 감안,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에 동의하면서 개미투자자 보호를 위한 첫 조치로 이 법안을 마련했는데 결국 거부권에 가로막혔다.
한 대행은 “기업의 다양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혼란이 일어날 우려가 있다. 입법과정에서 입법 취지를 명확히 하고 부작용을 최소화 하기 위한 충분한 협의 과정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번 재의요구권 행사는 국회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의 기본 취지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대안을 제시했다.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부작용을 최소화 하면서 상장기업의 합병·분할 등 일반주주 이익 침해 가능성이 큰 자본거래에서 보다 실효성 있게 일반주주를 보호할 수 있도록 하자는 거다.
야당은 즉각 “정부가 재벌의 민원창구로 전락했다”고 반발하면서 거부권 행사 철회를 촉구했다.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사회민주당은 이날 공동 논평을 통해 “(상법 개정안은) 기업 경영진이 주주의 이익을 고려한 의사결정을 하도록 유도하는 최소한의 장치였다. 대한민국의 자본시장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며 이를 바로잡기 위해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한 명제였다”며 거부권 행사 이유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이들은 우선 “경영 위축을 초래할 것이라는 주장은 근거 없는 억측이다. 이사의 충실의무가 확대된다고 해서 정당한 경영활동이 위축되는 것이 아니다. 경영진이 주주의 이익을 무시한 채 전횡을 휘두를 때 비로소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라고 했고 소송 남발 우려와 관련해선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국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는 이미 보편화된 원칙이다. 증권관계 집단소송법 도입 당시에도 같은 우려가 있었으나 실제로 제기된 소송은 극히 적었다. 법이 문제가 아니라 지배주주의 전횡을 방치하는 것이 문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배임죄 강화로 인한 경영 위축 주장도 사실 왜곡”이라고 했다. “경영상 판단의 원칙은 이미 대법원에서 인정되고 있으며 정상적인 경영 판단을 배임죄로 처벌하지 않는다. 배임죄 적용을 배제하려는 것은 대주주의 사익을 정당화하기 위한 시도에 불과하다”라고 반박했다.
무엇보다 ‘자본시장법 개정’이라는 대안에 대해선 “시대를 역행하는 주장이다. 전체 법인 100만여 개에 적용될 수 있는 상법 개정안을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대체하자는 것은 결국 대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면피책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금융감독원장조차 인정했던 문제이며 해외 투자 기관들도 경영 투명성과 주주 권리 보호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시대착오적 대응일 뿐이다”라고 지적했다.
이기준 기자 lkj@gg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