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노조, 건보 재정 국가책임 확대 필요성 제기
국민 의료비 부담완화로 민생경제 활력 제고해야

건강보험 재정에 경고등이 켜졌다. 지역가입자 재산보험료 축소 등에 의한 수입 감소와 고령화로 인한 노인 의료비 증가 등이 압박요인으로 지목된 가운데 제자리걸음인 정부의 법정 지원이 기름을 붓고 있다는 핀잔이 나온다. 역대 정부의 건강보험 무임승차로 인한 재정손실이 연간 6조 4500억 원에 달한다는 주장이 이를 뒷받침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 노동조합은 14일 이런 내용의 민생경제 성장도모를 위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방안을 발표하고 조기 대선으로 출범할 차기 정부는 건보 재정에 대한 국가책임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급여보장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 수준을 상기하며 국가 책임론은 재생한 것이다.
◆신뢰 부응 못하는 보장률
건강보험 국민 만족도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꾸준히 80% 이상일 정도로 매우 높다. 대다수 국민이 건강보험제도를 지지하는 이유는 건강보험제도가 일상생활에서 직접 체감되는 사회안전망이기 때문이다. 진영논리가 비교적 개입되지 않는 상대적으로 갈등이 덜한 제도로 자리매김하며 모든 대선과 총선에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나 지속가능 제고 등의 정책공약이 빠진 적이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건강보험 보장률은 아직도 OECD 회원국 중 최하위 수준인 64.9%에 불과하다. OECD 평균은 76.3%와는 10%p 이상 차이가 난다.
◆정부 무임승차 논란
건보 재정은 가계·기업·정부의 경제 3주체가 보험료와 지원금 형태로 분담하는 구조다. 현행 국민건강보험법(제108조의 2)은 정부가 가계와 기업이 부담하는 건강보험 재정의 20%를 국고 등에서 지원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부 지원은 헌법상 국민의 기본권보장을 위한 국가의 사회보장 증진 의무를 이행하기 위한 조치다.
그러나 건보노조는 역대 정부가 가계와 기업의 동의 없이 정부 책임 법정 지원금을 과소납하고 국가책임 의료급여 재원 등을 건강보험으로 전가하는 무임승차 행정을 반복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건보노조에 따르면 역대 정부의 법정 지원 미준수 등의 6가지 사례에서 확인된 건강보험 재정손실과 누수 금액은 건강보험 정부 지원 미준수 3조 5270억 원, 공무원 복지포인트 미 부과 640억 원, 코로나19 건보경감 정부 부담금 미납 2307억 원, 차상위수급자 건강보험 전환 1조 1038억 원, 의료공백 비상 진료체계 지원 1조 3490억 원, 사무장병원 재정 누수 1789억 원 등 연평균 6조 4534억 원에 달한다. 이는 간병비의 급여 확대나 전 국민 임플란트 건강보험 적용도 가능한 막대한 규모다.
◆저출생·고령화의 역습
우리 사회는 저출생·고령화라는 심각한 인구사회구조의 변화를 관통하고 있다. 2023년 ‘건강보험통계연보’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진료비는 48조 9011억 원으로 전체 진료비의 44.1%를 차지했다. 전체 건강보험 적용 인구의 17.9%가 진료비의 절반 가까이 사용한 것이다. 인구 고령화는 정해진 미래이고 이에 따른 지출 증가분을 억제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전문가들은 가계와 기업에 집중된 현행 건강보험 부담구조와 민간 의료 중심의 보건의료 체계로는 생산연령 인구감소와 인구 고령화 심화로 인한 사회경제적 부담을 감당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한계는 이미 목전에 와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지역가입자 재산보험료 축소 등에 의한 수입 감소, 노인 의료비 증가, 의정 갈등으로 야기된 의료공백 대응 비용, 필수 의료 수가인상분 20조 원+α 등이 맞물려 건강보험 적자 전환은 2026년, 누적 준비금 소진 시점은 2030년으로 내다봤다.
◆국가책임 준수의 공
건보노조는 6월 새 정부 출범과 함께 가계와 기업에 집중된 건강보험 재정 부담구조를 정부 책임으로 균형 있게 안분하는 정립형 분담구조(각 경제주체당 1/3씩 부담)를 정착시킬 건강보험법 개정을 제안했다. 이를 위해 정부의 긴급한 재정수요로 건강보험 재정 차입 시 다음 회계연도(최소 1년)까지 반드시 정산 반납하도록 하는 국민건강보험법상 ‘건강보험 재정정산조항’신설을 최우선 과제로 삼을 것과 현행 건강보험법상 5년 단위의 정부 지원 일몰 규정을 삭제해 건강보험 재정에 대한 국가책임을 항구 법정화할 것을 요구했다. 또 정부 지원 기준과 규모를 현행 ‘예상 보험료 수입의 20%에 상당하는 재정’에서 ‘전전년도 65세 이상 노인 급여비의 50%’로 변경해 노인 의료비에 대한 국가책임 강화를 법정화할 것도 요청했다.
이를 적용하면 2025년 기준 건강보험 정부지원금은 18조 6821억 원으로 가계·기업부담 보험료의 21.3% 수준이 된다. 사회보험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대만은 정부 지원 비율을 최소 36%로 법제화했고 일본도 75세 이상 노인 진료비의 50%를 포함해 약 28%를 국가가 부담하고 있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건보 보장률이 OECD 회원국 중 가장 낮다는 것은 국민의 가계지출 중 의료비 직접 지출 비중(우리나라 6.1%, OECD평균 3.3%)이 가장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건보노조가 OECD 통계와 보건복지부 발표 국민보건계정보고서를 비교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 건강보험 보장률이 OECD 회원국 평균 보장률로 확대되면 가계 최종소비지출에서 의료비 본인 부담 지출 비중이 절반으로 줄어들어 연간 약 30조 원의 가계 실질소득 증가 효과가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건강보험 보장률이 1% 증가할 때마다 약 2조 6300억 원의 소비 활성화 효과가 발생하는 셈이다.
노조 관계자는 “이번 대선을 계기로 건강보험제도에 대한 정부의 법적 책임이 준수돼 국민의 건강보험료와 의료비 부담이 가중되지 않기를 바란다”면서 “오는 20일로 예정된 전국의사총궐기대회에서도 비급여 억제를 위한 적정진료 준칙이 논의돼 국민 의료비 부담이 적어지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박동규 기자 admin@gg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