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 베이터우 노선

대만은 청일전쟁 때 일본에 패한 뒤 일본의 식민 통치를 받다가 2차대전 이후 해방됐는데, 평소 온천욕을 좋아하는 일본인들이 대만에 온천을 많이 개발했다. 특히 타이베이 북쪽의 베이타우(北投) 온천은 원래 원주민 마을인 '팟타오'를 대만어로 음차해서 베이타우(北投)'라고 하는데, 주민 25만 명이 살고 있는 교통의 중심지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동안 유황이 채굴되었고, 또 일본군 부상병의 요양을 위하여 온천이 개발되었다. 일본이 물러간 후에도 대만 정부는 이곳을 ‘베이타우 온천공원’이라는 관광특구로 지정하여 온천욕뿐만 아니라 베이타우 공원, 타이베이시립도서관 베이타우 분관, 온천 박물관 등 다양한 온천 관련 문화를 엿볼 수 있다.

베이터우 온천공원 지열곡 유황가스
베이터우 온천공원 지열곡 유황가스

타이베이에서 지하철 단수이선(붉은색)을 타고 약 40분쯤 가면 교통의 중심지인 베이타우 역인데, 이곳에서 내린 뒤 신베이타우 열차로 갈아타야 한다. 즉, 베이타우 역에서 베이타우 온천공원까지 겨우 한 정거장인데, 관광지역이라 하여 신베이타우 역을 개설한 것이다. 택시로 양명산 국립공원을 돌아본 우리 가족은 곧장 신베이타우에 도착했다.

신베이타우 역에서 왼쪽 길로 약 10분 정도 걸어가면 베이타우 온천공원인데, 온천 수원지 중 하나인 계곡 상류의 지열곡(地熱谷)에서 흘러나오는 유황 온천수가 공원을 관통하여 흘러서 공원 안에서는 진한 유황 냄새로 코를 막아야 할 정도다. 지열곡이란 80~100°C의 뜨거운 온천수와 숲에서 나오는 차가운 공기가 만나 자욱한 유황 연기를 내뿜는 모습이 마치 지옥의 연옥(煉獄)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물론, 국내에는 이런 천연 유황온천이 없지만, 화산지대가 많은 인도네시아 반둥을 비롯하여 일본 규슈의 시마바라 운젠온천, 벳푸의 지옥온천 등지에서 많이 보았다.(자세히는 2021. 5. 26. 반둥 땅꾸반뿌라우 화산 참조)

베이터우 도서관
베이터우 도서관

이곳은 물빛이 매우 맑은 옥색이고 항상 신비로운 연기에 휩싸여 있는 모습이 신기하다고 일제강점기에는 대만 8승 12경(八勝十二景) 중 하나로 꼽기도 했고, 이곳에서 출토되는 라듐 성분이 포함된 돌은 베이타우석(北投石)이라 하여 세계에서 유일하게 대만의 지명이 붙여진 희귀한 광물이기도 하다.

지열곡으로 가는 길 오른쪽은 고목이 울창한 숲인데, 일본인들에 의해서 온천이 개발된 후 100년 이상의 역사를 말해준다. 고목들 사이에 맑은 시냇물이 느릿느릿 흐르고 있는 숲속 풍경이 이곳을 힐링 여행지로 손꼽는 것 같다. 숲속에는 커다란 통나무집처럼 보이는 타이베이 시립 도서관 베이타우 분관이 있는데, 도서관 분관은 대만 최초의 목조 도서관으로서 지붕에는 태양열 집열판을 설치해서 태양열로 전력을 이용하고, 도서관은 입장료도 없다.

베이터우 도서관 내부
베이터우 도서관 내부

잠시 도서관에 들어가 보니 현지인은 물론 외국인도 많았는데, 책을 읽는 것뿐만 아니라 베이타우에 온 여행객들이 신문이나 PC로 인터넷 서핑을 하는 모습도 보았다. 내부는 칸막이가 없이 책을 전시하고 누구든지, 언제든지 찾아와서 읽을 수 있게 꾸몄다. 2층 발코니의 난간도 친환경적으로 꾸며서 사람들은 도서관 내부는 물론 이곳 나무 의자에 앉아서 새소리를 듣고 숲의 공기를 마시며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했고, 지붕 위에 심은 잔디는 특수 배수 설계로 자연의 수분을 재활용해 물을 주며, 그 물은 화장실에도 사용한다고 한다. 이런 숲속의 도서관에서 책을 읽거나 공부하면서 자연과 어우러진 삼림욕도 할 수 있는 자연 친화적인 모습이 매우 부러웠다.

온천공원 주변에는 온천욕을 하거나 온천공원 주변의 풍광을 감상하며 즐기는 여행객을 위한 호텔과 온천탕이 즐비한데, 약간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면 베이타우 노천온천이 있다. 우리에겐 약간 어색한 풍경이지만, 노천온천의 입욕료는 1인당 한화 약 1500~2000원에 불과하다. 물론, 수영복과 간단한 세면도구를 준비해야 하지만, 수영복이 없으면 대여도 가능하다. 야외온천은 모두 5개의 계단식 탕이 있는데, 아래층으로 내려갈수록 온도가 낮다. 이런 형식은 인도네시아 반둥에서도 몇 차례 이용한 적이 있다. 그렇지만, 우리 가족은 호텔 온천탕에 들어가서 가족탕에 들어갔다, 가족탕 이용 시간은 90분인데, 첫째랑은 여탕으로 들어가고, 아들과 내가 들어갔다. 가족탕은 두 평정도 될까 싶은데, 욕조는 타일을 붙이지 않은 콘크리트 상태였지만 빈틈 하나 없는 욕조며 오밀조밀한 앉음판 등은 매우 야무졌다. 게다가 냉천, 온천, 열천 등 세 개의 온천수 꼭지와 향나무로 만든 물통과 바가지 등은 아득한 향수를 불러주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이런 온천을 찾아볼 수 없고, 규슈의 벳푸 온천에서 이용해 본 적이 있다.(자세히는 2022. 4. 13. 벳푸 효탄 온천 참조)

호텔 가족탕
호텔 가족탕

베이타우 온천 박물관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 시즈오카현 이즈반도의 온천을 모방하여 당시 동아시아에서 가장 큰 공중목욕탕을 지었는데, 해방 후 오랫동안 방치되었다가 1998년 ‘온천 박물관’으로 만들었다. 1층은 붉은 벽돌, 2층은 목조에 기와지붕인 박물관은 기울어진 지형에 따라서 지었기 때문에 입구에 들어서면 2층이다. 이곳에서는 대만의 온천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관이 있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남녀 탈의실과 대 욕탕이 있다. 대 욕탕은 마치 고대 로마의 공중목욕탕을 보는 듯하다. 또, 베이타우 공원 안에 있는 매정(梅庭)은 초서체의 대가인 위유런(于右任) 선생의 별장으로서 문기둥 위에 그가 쓴 ‘매정(梅庭)’이라는 글자가 걸려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건물 면적은 약 250㎡이고, 정원 면적은 800㎡인데, 일본식과 서양식이 절충한 독특한 건축 양식으로 현재는 위유런 선생의 서예 작품과 매정의 역사에 관한 자료 등이 전시되어 있다.

베이타우 공원은 대만의 유명한 삽화가인 지미 리아오(幾米)의 작품 ‘왼쪽으로 가는 여자, 오른쪽으로 가는 남자(向左走 向右走)’를 2003년 위가휘(杜琪峰) 감독이 영화화한 ’턴 레프트, 턴 라이트(Turn Left, Turn Light)‘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특별한 연인을 만나기를 바라는 남녀 주인공은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여주인공은 항상 왼쪽으로만 걷고, 싸구려 소설을 번역하며 사는 남자는 항상 오른쪽으로만 걷는다. 두 사람은 우연히 공원에서 만나 사랑하게 된다는 내용으로서 국내에서도 상영되었다고 했지만, 감상하지는 못했다. 숨 가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베이타우 온천공원에서 머문 시간은 잠깐이었지만, 진정한 슬로시티는 이런 곳이 아닐까 싶다.

베이터우 온천박물관
베이터우 온천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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