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토의 새로운 심장, 충남 연기군.그러나 이곳에선 힘찬 맥박을 느낄 수가 없다.국가균형발전의 요체로 대접받던 때를 그리워하며 이제는 존재 자체를 걱정해야 하는 위기감에 사로잡혀 있다.대신 행정도시 예정지를 관통하는 금강 주변만이 활기를 띨 뿐이다. 대통령이 바뀌었음을 실감하게 하는 대목이다.행정도시 예정지 가운데선 나성리와 양화리, 진의리 등에 소수의 원주민이 아직 남아 있다고 해서 지난달 29일 이들을 찾아가 ‘세종시’라는 화두를 꺼냈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양화1리 건강관리실. 마을 할머니들이 모여 앉아 건강관리도 받고 농담과 웃음을 나누는 유일한 곳이다.이날 건강관리실은 할머니와 아주머니 5명이 지키고 있었다. 지난해 11월 한 차례 만남이 있었던 터라 자연스럽게 본론으로 들어가 ‘세종시 문제로 시끄러운데 요즘 어떠시냐’고 물었다. “몰라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세종시 문제걸랑 인제 그만 물어봐. 마을 남정내들도 세종시라면 손을 흔드는디 뭐라고 전해듣는 소리가 있어야 말이지.”전월산 아래 펼쳐진 황량한 장곡평야 만큼이나 답변은 싸늘했다. “세종시 얘기라믄 더 이상 할 말 없어”라며 더 이상의 질문을 허락하지 않았다. 발걸음을 건강관리실 앞 노인정으로 옮겼다. 이곳에서도 마찬가지로 ‘취재왔다’는 말 한마디에 분위기가 가라앉았다.여기서 싸늘한 답변의 이유를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보나마나 세종시 물어볼거지? 근데 여기서 우리가 한 얘기 써줄 수 있으면 들어오고 아니면 그냥 돌아가. 인터뷰는 인터뷰대로 다 해놓고 신문이나 방송에는 잠깐 비추니까 기자들 얼굴도 보기 싫어.”요즘 들어 세종시 수정 반대 의견은 언론에서 제대로 다뤄주지 않는다는 불만의 목소리였는데 끝내 속에 쌓아두었던 불만을 털어놓았다.노인정에 모인 10여 명의 주민들은 파는 달라도 모두 부안 임(林)씨의 자손들인데 이들은 이날 문중 행사에도 참석하지 않았다.“오늘 행사에 국무총리실에서 높은 양반이 왔다길래 들러리 서기 싫어서 안 갔어.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세종시 수정안 나오고 나서는 동네에도 역적의 간신들이 많이 생겨서 마을 행사에도 잘 안나가. 이게 뭐냐고.”마을 주민의 성토에서 이웃간 갈등이 얼마나 심화되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었다.여기저기서 불만을 토로하자 모인 사람들 가운데 가장 젊다는 70세의 임 모 할아버지가 거들고 나섰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중앙행정기관은 기둥이야. 기둥이 서야 집을 짓고 울타리도 치지. 정부가 기업 유치한다고 하는데 행정기관이 내려오고 거기에 따라 기업들이 내려와야 오래가는거지. 특혜줘서 기업만 갖다놓으면 다 끝나나? 몇 년 하다가 중국이 낫겠다고 해서 다 나가면 그때는 또 어떻게 할 건데. 나중에 무슨 욕을 얻어먹을려고 그러는지 원.”옆마을 진의리에서도 같은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임 모 할어버지는 “약속을 못 지키는 대통령도 문제고 세종시 이용해 먹는 정치인들도 문제고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어. 아무튼 우리는 세종시를 원안대로 하라는 거야. 우리가 기업한테 줄라고 땅 내줬나?”말을 이어받은 또 다른 임 모 할아버지는 “세종시가 원안대로 되든 기업도시로 되든 보상 받았으니까 우린 어차피 떠나야할 사람들이지만 억울한 게 너무 많어. 자손들이 나중에 우릴 보고 무슨 소릴 할지 생각하면 해답은 원안대로 가게 해야 한다는 거여. 만약 여기가 기업도시로 되면 보상에 눈이 어두워 기업한테 조상땅 팔어먹은 놈 밖에 않되는거 아니냐고.” 이기준 기자 lkj@ggilbo.com[행정도시 인터뷰](사진=행정도시인터뷰임재긍)“지역여론은 요지부동…정부가 고집 버려야”행정도시주민보상대책위 위원장 임재긍- 행정도시 수정안에 대한 대책위의 공식적인 입장은.“행정도시주민보상대책위는 예정지 주민을 대표하는 단체로 지역주민들의 이해와 요구에 따라 움직여 왔고 이미 널리 알려진 것처럼 우리 주민들 대다수가 압도적으로 원안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에 원안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지난 4월 대책위총회 때 여론을 수렴한 결과 참석 대의원 전원이 원안으로 가야 한다고 의결했습니다.”- 정부의 수정안 찬반 여론 홍보 어떻게 보나.“글쎄요. 이미 지역 여론이야 여러 차례 확인됐고 발표 시점에 타 언론사에서도 원안이 높다고 결과를 발표했는데 근거나 출처도 밝히지 않는 것은 믿을 수가 없습니다. 국민 여론이 그렇게 쉽게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연기군 분위기는 어떤가.“마침 지방선거를 앞두고 연기군의 모든 출마자들이 일관되게 원안추진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것처럼 지역 민심을 명확하게 보여 주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건설 지연으로 주민의 고통이 더욱 커지고 있어 여론은 고착화될 것입니다.” - 행정도시 수정안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우선 원안이 최상의 계획이기 때문입니다. 정부기관 온다고 할 때는 기업들도 비싼 땅값이라도 오려고 경쟁을 했는데 지금은 특혜를 주지 않으면 안 오려고 하고 원안대로 가야만 주민들의 재정착도 더 이상 지체되지 않고 계획에 근접해 할 수 있습니다.”- 찬반여론에 따른 주민 갈등은 어느정도 인가.“민주주의 사회에서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기에 찬반은 있을 수 있지만 반반으로 양분된 것도 아닌데 마치 팽팽한 것처럼 호도하는 것은 문제입니다. 극소수의 주민들만 수정안 찬성입장을 보이고 있어 주민들은 직접 부딪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오히려 정부가 갈등을 부추기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 이번 지방선거에서 행정도시 문제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최소한 연기·공주나 충남, 더 나가 충청권은 행정도시 선거가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주민들이 가뜩이나 여론몰이다, 여론조작이다 해서 진저리를 치고 있어 선거결과를 지역 민심으로 정부에서 이해해 주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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